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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Jan 13. 2021

다크 스토어 라이즈

매대 없는 매장의 시대가 온다

 "우리나라 유통업의 본질은 부동산업이야" 학부시절, 유통전략론 수업 첫날에 교수님이 던진 한 마디는 강렬했다. 왜 유통의 본질이 부동산일까? 불과 수년 전까지 좋은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곧 경쟁력 그 자체를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도심 번화가에 번듯한 건물 하나 짓고, 백화점이라 간판을 달면, 입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던 좋은 시절. 그래서 당시만 해도 오프라인 유통사는 갑 오브 갑이었다. 재고 부담도 지지 않으면서 30%에 가까운 수수료를 가져간 것은 물론 가만히만 있어도 부동산 값은 올라 자산 가치도 상승했다.


 하지만 이제 호시절은 끝났다. 시대의 종말을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 작년 2월 발표된 롯데의 대규모 매장 폐쇄 계획 발표였다. 롯데는 700여 개의 매장 중 30%에 달하는 200여 곳의 문을 닫는다고 선언하였다. 이미 유통업계는 매장을 '세일즈 앤 리스백' 방식으로 현금화시켜오고 있었는데, 아예 가치 보전이 안될 듯 하자,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통적인 갑-을 관계도 역전되었다. 예전 온라인 기반 소호 브랜드의 꿈은 백화점 입점이었다. 스타일난다, 조군샵 등의 브랜드가 백화점 입점을 통해 성공의 마침표를 찍었었다. 하지만 이제 오프라인 업체가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하려 줄을 선다. 작년 론칭된 네이버 장보기에 홈플러스가 공식 입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한 때의 플랫폼이 이젠 일개 상품 공급업체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유통기업의 수명은 정녕 끝난 것일까? 이미 수많은 유통업체들이 이커머스에 밀려 파산의 길로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월마트만 해도, 한 때 헤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마존을 맹추격하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부동산만 잘 사도 회사가 굴러가는 유통의 좋은 시절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반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결국 매장이다. 근데 신기한 것은 매장이 경쟁력의 원천인 것은 동일하지만, 그 역할은 과거와 정말 달라졌다는 것이다. 매장은 이제 판매가 일어나는 장소가 아닌, 물류 거점 기지로써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매대가 없어진 매장을 다크 스토어라고 부른다. 다크 스토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전자 상거래와 배달 인프라를 활용하여, 기존의 매장이나 홀의 불을 끈 채 최소한의 인력과 투자로 운영하는 방식. 아니 비싸게 건물을 사거나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정작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얼핏 보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실제로 다크 스토어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적용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작년 세상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이한다. 모든 종류의 변화를 가속화시킨 코로나 19는 여기서도 마법을 부린다. 팬데믹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가 오프라인 매장 기반의 비즈니스에 매우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던 것. 이러한 상황에 다크 스토어는 거의 완벽한 해답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크 스토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시작되고, 미국에서 확 뜬 다크 스토어

 물론 다크 스토어는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개념은 아니다. 그 시초는 2013년 영국 테스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테스코가 4세대 닷컴 스토어라고 명명한 매장이 원조인데,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면 피커가 대신 담아와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한 픽업 서비스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픽업 서비스와 다른 점은, 픽업은 실제 현장 구매가 가능한 매장에서 결제만 미리하고 상품을 받아가는 구조이지만, 다크 스토어는 매장에서 판매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다크 스토어는 픽업 서비스보다 조금 더 극단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유통 업체들은 우선 픽업 서비스 활성화를 택한다. 메이시스도 집중한 모델은 주차장 픽업 서비스이다. 하지만 매대가 있는 매장은 창고로써의 효율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판매 응대를 위한 직원도 있어야 하고 DP공간이나 휴게공간도 별도로 배정해야 한다. 어차피 직접 판매보다 픽업 판매 비중이 높아진다면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공간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와 같은 생각에서 메이시스는 작년 10월 델라웨어주와 콜로라도주의 매장을 다크 스토어로 아예 전환했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메이시스의 픽업 매출은 무려 전체 실적의 30%를 차지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 만든 매장을 창고로 바꾼다면 얼마나 아까운가. 하지만 코로나 확산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강제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미국의 스포츠/아웃도어 카테고리 킬러 업체인 아카데미 스포츠 앤 아웃도어. 이들은 코로나 19 확산 초기 250여 개의 매장을 폐쇄해야 했다. 문제는 봉쇄조치가 풀린 이후에도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찾은 해법은 매장의 역할을 판매거점이 아닌 배송 거점으로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그 덕에 아카데미 스포츠 앤 아웃도어는 코로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작년 3분기까지 전자상거래 주문은 무려 전년대비 96%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출의 95%는 매장을 통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다크 스토어는 단지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매장의 새로운 활용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맹렬히 온라인 매출을 늘리며 아마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월마트의 가장 큰 무기도 전국 각지에 있는 4,800여 개의 매장을 물류기지화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가장 핵심적인 경쟁력은 입지이기에 기본적으로 매장들은 소비자들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거기에 이미 재고들도 쌓여 있고, 기존 상품 공급을 위한 기본적인 물류망도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피킹 인력만 배치된다면 바로 전환이 가능하다. 코로나는 단지 관성을 벗어나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트리거 역할만 수행했을 뿐,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도 다크 스토어로 변하는 중

 영원한 교과서, 월마트가 이미 훌륭한 시범조교의 역할을 수행한 덕에 국내 대형마트들은 다크 스토어까진 아니더라도 매장의 물류거점화는 예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곳은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이미 전국 100여 개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 출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올해 내 140개에 달하는 전체 매장으로 이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비록 자체 플랫폼의 경쟁력은 상실했지만, 온라인 매출만큼은 붙잡겠다는 의지이다. 특히 기존 점포 물류의 기능과 규모를 더욱 확대한 점포 풀필먼트 센터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를 보유한 이마트도, 전용센터는 새벽 배송을 전담하고, 매장에서 당일 배송을 맡는 이원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들은 이미 근거리 배송을 서비스 성격으로 제공해왔기 때문에 더욱 물류기지로의 변경이 용이한 상황이다.



 여기에 롯데는 진정한 의미의 다크 스토어까지 선보였다. 잠실점과 구리점의 매장 일부를 아예 다크 스토어 형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기존 판매 공간을 아예 없애지는 않았지만, 축소시켜 확보한 공간을 피킹/패킹 공간으로 변경한 형태인데 향후 더욱 늘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형태를 판매 기능도 병행한다는 점에서 세미 다크 스토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단지 기존 점포 물류 공간을 재설계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 판매 공간을 줄이는 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전체 매장을 모두 물류기지로 바꾸는 다크 스토어의 등장도 멀지 않아 보인다.


모두의 해답이 다크 스토어일 순 없다

 이처럼 다크 스토어는 국내에서도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코로나 19로 변해버린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다크 스토어의 길을 택할 수는 없다. 특히 미국과 달리 국내 백화점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다크 스토어를 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적 요인? 다 같은 백화점 아닌가? 엄격히 말하자면 미국의 백화점들과 국내 백화점들은 다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미국 백화점들은 보통 직매입 방식으로 상품을 확보하여 판매한다. 직매입이란, 상품을 구매하여 재고를 모두 책임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들은 대부분 특정매입 방식을 택하고 있다. 특정매입은 상품을 판매한 후 남은 재고는 책임지지 않고 입점업체에게 다시 반품을 하는 방식이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재고 부담이 적어, 운영 리스크는 덜하지만 상품에 대한 통제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은 상품 판매 데이터를 관리할 필요도, 고객을 디테일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다, 입점 브랜드가 메인 경쟁력이고, 그조차 입지에서 이미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두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부동산업이라는 표현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입점 업체는 백화점이 판매 공간이 아닌 순간, 재고를 묶어 놓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온라인 판매를 할 거라면 차라리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이 나으니 말이다. 물론 온-오프 채널에서 동시 판매하는 옴니 방식은 이미 국내에서도 일상화되기는 했다. 하지만 높은 수수료를 받은 오프라인 매장 기반의 판매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결품 관리가 어렵다는 결정적인 단점까지 존재한다.


 그래서 백화점들은 다크 스토어로의 전환은 아예 고려도 하지 않고 있고, 옴니 판매에도 그리 적극적이진 않다. 오히려 또 다른 대안이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에 집중하는 모양새이다. 매장을 창고가 아닌 스튜디오로 활용하여 방송을 촬영하는 방식인데,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은 물론 사전적 의미의 다크 스토어는 아닐 수 있지만, 매장의 역할이 판매 공간에서 확장된다는 개념은 비슷하지 않은가? 이제 판매 공간의 역할만 수행하는 매장의 수명은 곧 끝날지도 모른다.


준비하는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

 이렇듯 매장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물론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이 있긴 하지만,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생존할 기업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통 그러한 기업들은 일이 터지기 전에 준비를 해왔던 곳들이다.

 

 앞서 다크 스토어의 대표 사례로 언급했던 아카데미 스포츠 앤 아웃도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들이 코로나 시대에, 오프라인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사실에만 주목하지 이들이 수년 전부터 여러 준비를 해왔다는 건 간과하고 만다. 올해 매장 픽업 기반 이커머스 실적을 늘리며 반등에 성공한 이들이지만, 2019년만 해도 온라인 비중이 5%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약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던 그들은 최근 3년 동안 옴니 채널 기능에 무려 5천만 달러를 선제적으로 투자한다.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왔기에 갑작스레 닥친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침착히 대처하여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월마트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최근 엄청나게 성장하는 그들의 온라인 실적은 부러워하지만, 그동안 그들이 낸 수업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월마트는 아마존과 경쟁하기 위해 2016년 3조 원을 들여 인수했던 제트닷컴의 서비스를 지난 5월 종료시켰다. 결론만 보면 실패였지만, 그들은 온라인 역량 확보를 위한 수업료라 생각하며 꾸준히 투자를 지속했다. 그리고 결국 작년에 폭발적인 이커머스 성장을 경험하며, 많은 오프라인 기업들이 파산하는 가운데 나 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떻게 될지 앞다투어 여러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작년 한 해 코로나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사회의 변화 속도가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커머스 분야에서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급속화되고 있다. 이렇게 온라인이 뜨면서 아무래도 오프라인은 질 수밖에 없고, 오프라인 매장의 가치도 점차 하락하고 있다.


 다크 스토어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대안 중 하나이다. 매대 없는 매장 다크 스토어뿐 아니라,  홀 없이 주방만 있는 다크 키친 등 다양한 유사품(?)들까지 나올 정도로 그 효과성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를 묶어 다크 이코노미라고 칭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다크 스토어가 고사되어 가는 오프라인 유통업체, 특히 대형마트를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더욱이 대형마트를 2번 죽이고 있는 규제의 칼날이 이번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오프라인 유통기업에게는 고난의 시기가 계속될 것이다. 다만 다크 스토어라는 새로운 매장 유형이 이들의 생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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