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웅-! 쿠아앙!
남 대표의 '진드기 흡입기'가 맹수처럼 포효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살상 무기가 아니다. 하지만 흡입력 300W의 모터가 최준호의 명품 실크 넥타이를 빨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그 어떤 무기보다 위협적으로 변했다.
"으, 으악! 이거 놔! 목 졸려!"
최준호가 켁켁거리며 딸려왔다. 남 대표는 당황해서 전원을 꺼야 했는데, 흥분한 나머지 오히려 '터보 모드' 버튼을 눌러버렸다.
위이이잉-!
"이노무 자식이! 어디 하늘 같은 선배한테 꼰대? 야, 내가 너희 같은 놈들 입봉시켜주려고 접대한 술만 한강을 채워!" "야야야! 남 대표! 그러다 사람 죽어!"
"형! 꺼요! 기계 끄라고!"
내가 달려들어 남 대표의 팔을 꺾고서야 기계가 멈췄다. 최준호는 넥타이가 쭈글쭈글해진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그다음이었다.
"야! 찍어! 다 찍어!"
최준호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같이 있던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일제히 최신형 스마트폰과 액션캠을 꺼내 들었다.
"제목 뽑아! '장례식장 깽판 치는 틀딱 영화인들'. 이거 지금 라이브 켜면 바로 실검 1위야!" "경찰 부를 필요도 없어. 그냥 박제해버려!"
수많은 카메라 렌즈가 우리를 겨눴다. 총구보다 더 무서운 '빨간 녹화 버튼'.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우리는 평생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피사체가 아니라, 세상을 찍는 주체였다고. 그런 우리가 지금, 저들의 '조회수 먹잇감'이 되려 하고 있다.
"카메라 치워라. 좋은 말로 할 때"
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 박 감독님, 쫄리시나봐요? 감독이면 앵글 잘 아시겠네. 이런 컷 얻기 쉽지 않아요."
노란 머리 녀석이 내 코앞에 렌즈를 들이댔다. 2초 간의 정적. 이들이 나를 모욕하고 있다. 8년 동안 배달 오토바이를 몰며 다져진 민첩성, 동네 골목 골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최적의 코스를 판단하는 실행력, 폰에 뜬 배달콜을 잡아야 할지 버려야 할지를 1초 만에 선택해야만 하는 동물같은 상황 판단으로 이날까지 버틴 몸이다. 내가 그런 놈이다. 이 새끼들아.
나는 녀석의 스마트폰을 쳐서 날려버렸다.
와장창! 스마트폰이 육개장 그릇에 처박혔다.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악! 내 폰!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레디~ 액션!"
누가 외쳤는지 모를(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구호와 함께, 장례식장은 다찌마와리(단체 액션) 씬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내 멱살을 잡고, 누군가는 남 대표를 다리 걸어 넘어뜨렸다.
"이것들이 똥오줌을 못 가리네!"
구석에서 조용히 소주를 마시던 그레이톤 머릿결의 남성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왕년에 날리던 무술감독, 정홍걸 감독이었다. 그는 조용히 다가오더니 전광석화와 같이 젊은 PD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악! 나 뼈 맞았어!"
"왜? 니네들 키보드로 액션씬 죽이게 만든대매? 리얼 액션은 처음이지? 이게 진짜 로우킥이다!"
내가 기세 등등하게 외쳤다.
"뭐? 숏폼? 우린 롱테이크로 니들 10분 동안 팰 수 있어!“
막 자리에 들어왔던 덩치 좋은 남자 무리들이 일어났다. 카메라 그립팀이었다.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육개장 그릇이 UFO처럼 날아다니고, 편육 접시가 흉기처럼 춤을 췄다.
젊은 놈들은 싸움은 못했지만 날쌨다. 그들은 도망 다니면서도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대박! 이 구도 미쳤다!"
"형, 저 아저씨 날아차기 하는 거 짤방으로 만들면 100만 뷰 각이야!"
그들은 맞으면서도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놈들.
"으아아아!"
남 대표는 다시 진드기 청소기를 가동해 전장을 누볐다. 그의 청소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젊은 놈들의 잘 세팅한 헤어스타일이 박살나고, 비비크림 처바른 볼따구가 빨려 들어갔다.
나는 뒹구는 놈들 사이에서 김 작가를 발견했다. 김 작가는 테이블 밑에 숨어서도 직업병을 버리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오... 느낌 좋아... 역시 대사가 살아있어. 여기서 슬로우 걸고... 정감독이 테이블을 박차고 올라 플라잉 니킥을."
"아이 작가님! 뭐해요. 지금”
퍼억-
누군가 던진 수육 접시가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눈앞이 번쩍했다.
"경찰이다! 경찰 왔어!"
누군가의 외침.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튀어! 니들 잡히면 합의금 낼 돈 있냐?"
남 대표가 소리쳤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비상구를 향해 달렸다. 육개장 국물을 뒤집어쓴 채, 찢어진 양복을 휘날리며. 마치 좀비 떼에게 쫒기는 생존자들처럼,
“아저씨들 잡어~!!”
뒤에서는 여전히 젊은 놈들의 스마트폰의 렌즈가 따라 붙고 있었다.
우리의 비굴한 도주가 라이브로 전송되고 있었다. 제목은 아마 이렇겠지. <영화판 꼰대들의 최후>, 혹은 <육개장 배틀 - 틀딱의 참교육 현장>.
그렇게 우리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완벽한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