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에너지 바 광고에 대하여...
나에겐 평소에 영화나 시뿐 아니라 광고를 볼때 심지어 어떤 사물을 볼 때도 모든 것을 내 삶과 연결 짓는 습성이 있다.
패션 디렉터의 시말서 각서 남발에 퇴사를 지른 나에게 문득 꽂힌 것은 바로 한 에너지 바 브랜드의 광고였다.
어떤 직원이 땡톡 단톡방에 친구에게 보낼 문구를 잘못보냈고,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고민을 하던 찰나 김동현 선수가 등장해 에너지바를 책상에 꽂는다.
이거 먹고 힘내서 철판 깔고 회사 계속 다니란 메시지인데... 과연 그녀는 철판을 깔고 계속 회사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을까? 그 뒤의 이야기가 참 궁금해지는 광고다.
땡톡방에 뭐라고 변명을 했을까? 그 변명은 통했을까? 그냥 한번 크게 혼나고 말았을까? 그 소문이 커져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까? 아니면 용기있는 사람으로 추앙 받았을까?
나는 어땠을까? 이미 퇴사 선언을 하고 난 나는 저 친구에 비하면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갔으면 잘 지냈을 수도 있는 일이었을텐데...
내가 참을성이 없었던 걸까? 지금 내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난 어떤 상태일까? 그때 저 에너지바를 책상에 꽂아줄 김동현 선수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제는 별 의미 없는 질문들이 빠르게 내 머리를 스쳐갔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벌써 마지막 출근을 한지 3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만 두기로 하고 한달 간을 더 일하면서 사실은 후회가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저 광고를 보고 이런 생각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그 순간의 감정을 좀만 참고 넘어갔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을텐데,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일년을 채우면 그래도 내 커리어에 스크레치는 안났을텐데,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후회들.
마지막 출근 한 뒤에도 그 감정은 여전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3일째가 되니 조금은 기분이 괜찮아진듯하다. 뭐랄까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달까?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어떤 조직에 갇혀 있으면 내 세상이 그 조직이 전부가 되어 버린다.
그 속에 있는 것이 때론 자랑스럽고 때론 너무 괴롭고 그 조직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해방감이나 더 넓고 객관적인 시야란 없다.
백수라는 당장 다음달 월급이 없다는 불안감과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다시 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순수해지는 느낌은
무계획 퇴사를 해본 자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 불안감으로 가득 물들어 버릴 수 있겠지.
아직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
말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 한 켠에 걱정하는 어두운 기운들을 애써 누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뭘 할지,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를 이제야 고민하기 시작한 34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