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몇 달 전 파주 아웃렛에서 고가의 캐시미어 츄리닝 바지와 조우한 적이 있다.(**모나코, 정상가 약 56만 원, 아웃렛 가격 약 28만 원) 당시 그놈의 부드러움과 고급스러운 자태에 매료되어 입이 벌어지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찰나나 고민하다 내려놓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오늘, 20% 추가 세일의 상대적 가격 경쟁력과 여전히 위풍당당한 자태로 뽐내며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22만 4천 원, 추가 20프로 할인을 해도 아직도 사정권 밖이다. 고민의 영역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놈은 추가 20프로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나는 다시 고민의 영역에 빠진 것이다.
"이래도 날 안 데려갈 건가?"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타협점을 찾고 우선 입어 보기로 했다.
'막상 입어 봤는데 별로 면 고민할 필요 없잖아?’
나는 더 이상 이 싸움을 지속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피팅룸으로 향했다. 잠시 후,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피부에 전해지는 보드라움에 감탄하였고 거울 앞에 서자 보드라움 보다 더 강력한 멋스러움이 나를 강타하였다. 순간 패배의 암울함이 나를 짓눌러오는 것을 느꼈다.
'아 거부할 수 없다.'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카드가 주머니 밖으로 뛰쳐나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를 영입해야겠다고 거의 결정했을 때, 이 친구와 함께 할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 친구의 활용도는이 놈이 캐시미어이든 알파카든 '츄리닝'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멋스럽고 고급 져도 이 놈을 입고 출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잠 옷 대용 또는 동네 마실 다닐 때 외 특별히 다른 활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집 근처가 아니라 회사 근처에서 살았다면, 주택가가 아닌 멋들어진 주상복합에 혼자 사는 독신 남이었다면, 이 옷을 가치 있게 입을 수 있었을 텐데, 이 옷 입고 동네 마실 다니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자기 합리화인지, 구차한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나를 살려냈다. 결국, 정신을 다잡은 결과 나는 빈손으로 매장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왜 나는 고가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포기한 것일까? 고가의 제품을 소비할 때 나의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과연 무엇이 얼마나 나의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구매를 결정하고 소비를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추위나 더위와 같은 설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있는가 하면 너무나 다르고 복잡하여 규정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부 분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소비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이유에는 상당히 미묘하고 감성적이며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지불하는 대가보다 더 큰 효용과 가치 있다는 생각이 구매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비용 VS 실질적 가치 VS 명목가치의 변화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 (비용과 가치(효용)의 관계)
* 명목가치는 감정적, 잠재적, 사회적 가치로 이해할 수 있다.
가격 22만 8천 원 캐시미어 츄리닝 가치(효용)
= 실질가치 5만 원 이하(기모 츄리닝도 상당히 부드럽다) + 명목가치?
가정 1
실질가치 5만 원 + 명목가치 약 22만 원
캐시미어 츄리닝 장착함으로 얻게 되는 상대적 우월감과 만족감의 가치 22만 원으로 인식
결과: 구매 <= 총 가치 > 가격
가정 2
실질가치 5만 원 + 명목가치 약 18만 원
캐시미어 츄리닝 장착함으로 얻게 되는 상대적 우월감과 만족감의 가치 약18만 원 이상으로 인식
결과: 갈등 (갈등 <= 총 가치 >=<가격)
가정 3
실질가치 5만 원 + 명목가치 약 10만 원 이하
캐시미어 츄리닝 장착함으로 얻게 되는 상대적 우월감과 만족감의 현실적인 한계 직시 -> 명목가치 하락
결과: 구입 포기 (구매 포기 <= 총 가치 < 가격)
캐시미어 츄리닝에 대한 나의 욕망, 그것은 이것의 보드라움도 멋스러움도 아닌 좀 달라 보이고 있어 보이기를 원한 것이었다. (결국 영입을 포기한 이유도 츄리닝이란 한계와 한정적인 활용도가 내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통해 얻게 될 명목가치의 효용을 한정시켜 버린 것이다) 그것도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내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무리의 인정과 관심을 바랐던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이 바지 뭐야?" "소재가 뭐야?" "엄청 부드럽다." "얼마야?"란 관심의 표현을 듣고 싶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초/중/고 시절 메이커 병에 걸렸을 때 이 증세가 가장 극에 달했었다.)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로 나를 나타내고 포시셔닝 시키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명품/외제차에 소유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아직도 여물지 않았지만 실질가치보다 병적으로 브랜드에 집착하던 어린 시절(과거) 보다는 좀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음에 자신을 위로해 본다.
사회적 동물로써,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주목받고 관심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지 알아가고 더 만족스럽고 충만해지기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