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에 대한 자동반사적 부정

옹졸함의 함정에 빠지다

누군가의 의견을 인정하는 것, 특히 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동등한 존재의 의견과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상대 의견에 수긍하고 동의하면서도 우선 지엽적인 부분이라도 반론의 여지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문회나 토론장에서 가깝게는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이 같은 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 부끄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중요하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여 어떻게든 반박하고 부정하여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 깨끗이 인정하지 못하면 절대 치유되지 않는다

‘관련 임원들이 참석한 중요한 미팅 중 유관부서에서 내가 챙기지 못한 또는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포착하고 비수를 날린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다들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불리한 상황을 타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내 이미지와 평판의 손상과 창피함이 아닌 미팅의 목적에 집중하는 것이다. “제가 그 부분을 챙기지 못하였습니다.” 또는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임원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후배들은? 어떻게 이것도 모를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 아냐? 승진 심사가 코앞인데......' 같은 생각에 얼굴은 상기되고 상황은 점점 낯 뜨겁게 느껴진다. 코너에 몰린 나는 생존의 위협까지 느낀다. 절박해진 것이다. 스스로의 무덤을 파듯이, 나는 무리수를 선택한다. 보통 이권이 깊이 연관된 만큼 우리는 더 객관적이지 못하고 무모해지기 마련이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가리기 위해 반박할 거리들을 총동원한다.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선 것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참함과 비굴함 그리고 더 깊은 낙인 분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과 당신의 친구 의견이 다르다. 당신은 누구의 의견을 더 신뢰할 것 같은가? 전문가의 의견은 거짓이고 당신과 친구가 말하는 것은 사실이어도 거의 대부분이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하고 수긍할 것이다. 이 현상은 당신이 모르는 분야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


편리함에 놀아나 실리/기회를 잃다

우리가 Brand라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무엇보다 그것이 편리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다수가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을 쉽고 강렬하게 설명하고 인식시켜 주기에 누구나 그것을 가지를 열망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거나 또는 자신을 과시하거나 들어내기 위해 브랜드는 최고의 수단인 것이다. 바로 이 같은 Brand의 힘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절대적 다수의 사람들은 Brand가 형성되지 않은 것을 쉽게 신뢰하지도 더 나아가서는 눈길 조차 주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정보 홍수 속에서 또는 판단의 기준과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편리한 수단은 권위자, 즉 Brand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 같은 Brand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봤을 때 비전문가 또는 자신과 동일한 위치의 존재들에게 갖는 낮은 신뢰와 반감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하루를 들여다봐라. 편리함에 의지한 나머지 너무나 좋은 정보와 기회를 걸러내 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이 친구, 동료, 후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인정하고 수긍할 줄 아는 성숙함과 그들이 누리는 실리가 눈에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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