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들의 분노
미국의 서부지역인 애리조나, 유타, 뉴 멕시코를 여행 다니다 보면 웅장한 자연경관을 만나게 되고
그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거의 사라진 이 땅에 원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뉴 멕시코를 지나다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호텔에 투숙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띄었다.깎아지른 절벽 위에 성당이 있는 사진이었다.
원주민으로 보이는 식당 종업원에게 저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여기서 30분만 가면 있어요, 우리 엄마가 그곳 사람이랍니다."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리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그곳 문화관에 등록하고 안내자를 따라서만 올라갈 수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고 허가증을 받아 카메라에 매달아야 하며 개인이나 개인의 주택을 찍으려면 반드시 그 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좀 까다로워 왜 이리 유난스러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마을을 돌아보고 난 후 이해가 되었다.
에코마족은 푸에블로의 한 종족으로 12지파가 있다. 그 지파에 따라 직업도 정해진다.
그 들은 800년 동안 지켜온 이 언덕 위를 성스러운 곳이라고 믿고 있다.미국에 여러 원주민 종족이 있는데 그들은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쉽게 다른 곳으로 이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에코마족이 800년을 살아온 이 곳은 미국의 원주민 중 가장 오래 연속적으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들의 오랜 보금자리에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은 디딘 지 48년 후 멕시코를 통해 스페인 군대 가 들어온다. 처음 한 동안 충돌 없이 지내는 듯했으나 1598년 여기서 황금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온 오냐테 장군과 서로 충돌해 에코마 사람들이 오냐테의 조카를 포함한 스페인 사람 11명을 죽이자 오냐테 부대는 대포를 가지고 쳐 들어와 에코마인 800명을 죽이고 살아 있는 24세가 넘는 모든 성인 남자들의 오른발을 잘랐다. 12세에서 24세 되는 미성년자는 선교단의 노예로 데려갔다.
역사적인 이 사건을 "에코마 학살사건(Acoma Massacre)"이라 부른다.
1629년-1641년 스페인에서 온 후안 라미레즈 신부는 이 높은 언덕에 성당을 짓기로 한다.
40마일 떨어진 테일러산에서 키 큰 소나무를 에코마족의 어깨에 메고 와 20000톤의 진흙과 함께 에코마의 손으로 성당을 짓게 한다. 그들은 그들의 아픔이 배어있는 이 성당도 성스러운 곳이라며 가까이서는 사진도 못 찍게 한다. 지금도 이 성당에서 일 년에 두 번, 미사를 본다고 한다.
그들의 전통 모임 장소 "키바"로 올라가는 사다리.
보통 다른 종족은 키바를 사다리 타고 땅속으로 내려간다.
언덕 위 마을의 유일한 나무. 지금도 30가구가 살고 있다.
여자만이 이 집의 소유자가 된다. 그 들은 대부분 관광객에게 도자기를 판다.
도자기는 색이 선명하고 얇고, 기하학적 무늬가 정교하기로 유명하다.
자기 딸이 만든 항아리를 팔고 있는 할머니.
마을에 몇 안 되는 오븐이 있다. 오븐이 없는 집에서는 음식재료를 가져와 구워낸 후 음식의 절반을 오븐 주인에게 주어야 한다.오븐 사용료가 좀 비싼 편이다.
여긴 집에 들어가는데 사다리가 필수다.
출입 가 출입 불가
마을에 올라갈 때는 셔틀버스로 갔는데 내려올 때는 원래 있던 비밀통로로 내려가도 된다는 말에
그 들의 발자취를 느껴 보려고 걸어 내려왔다.
스페인 군대가 마을 아래 와서도 찾지 못했다는 비밀 계단이다.
지금은 위험한 부분은 시멘트로 보강시켜서 내려오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2010년 미국 정부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에코마족이 5000명이 좀 안된다.그들은 학교에서 영어와 그들 자신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성스러운 곳이라 믿으며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고있다.
1998년 뉴 멕시코의 북쪽 뉴 에스파뇰이라는 마을에 뉴 멕시코의 건립 자라며 오냐테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다.그는 에코마에 쳐들어와 학살을 행하고 살아남은 성인 남자들의 오른발을 자른 바로 그 사람이다.
어느 날 그 동상의 오른발이 잘라져 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그곳에는
"Fair is Fair"라는 글이 발견되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대충 누가 했는지 짐작은 가는 일이었다.
그 후 발을 다시 붙여 놓기는 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잘린 자국이 있다.
2007년 뉴 멕시코의 남쪽 끝, 멕시코와의 국경도시 엘패소에서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John Houser라는 조각가에 의해 오냐테의 거대한 동상이 만들어졌다.
에코마족의 항의로 인해 오랜 협상 끝에 동상의 이름이
"The Last Conquestator(마지막 정복자 오냐테)"에서 "The Equestrian(말 탄사람)"으로 변경되었다.
스페인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 오냐테에게 침략을 받은 건 멕시코나 에코마나 같은 처지인데
멕시코인들은 오냐테를 영웅이라하고 에코마인들은 잔인한 침략자라고한다.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이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동상 건립에 찬성한 엘파소 시민 한 사람은
"역사는 늘 깨끗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야만적이라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공부는 왜 하는가?"라고 말했다.
에코마 사람은,
"역사라고 히틀러의 동상을 영웅처럼 세워 놓아도 된다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박하였다.
비록 작은 기념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5000명도 안 되는 에코마 사람들의 분노가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