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캐이브국립공원
공원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갔다. 비지터센터에서 건너다 보이는 우드랜드 카티지(Woodland Cottage) 다. 웹사이트에는 이런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방값이 공원 밖의 모텔보다 싸서 좀 의아했다.
실제의 모습은 이랬다.
국립공원이 예산이 부족해 집 관리를 잘하지 못해 페인트가 벗겨지고 유리창도 잘 닫히지 않고 냉방, 난방, 인터넷, 휴대전화 다 안된다.
침구는 깨끗했다.
그리고 단독 건물에 방이 두 개. 침대 두 개. 화장실,샤워실.
캠핑하는 것에 비하면 궁궐이다.
오래되었지만 쓰기에 불편 없는 욕실.
창밖은 참나무 숲.
내 집처럼 편안하게 저녁밥도 만들어 먹었다.
창을 열어 둔 채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새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잘 보냈다.
매머드 케이브 국립공원은 켄터키주에 있다.
전장 600마일은 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긴 동굴이다. 지금까지 400마일 정도는 탐험되었고 나머지는 미지로 남아 있다.
방문객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12마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여러 개로 나누어 가이드를 따라서만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Historic Tour인데 시간이 맞지 않고 예약이 끝나 이번에는 Dome and Dripstone이라는 두 시간짜리를 보았다.
동굴의 입구까지 버스로 간다.
400개의 계단이 있다. 들어가자마자 280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120개를 올라와 다른 출구로 나온다.
동부에 있는 국립공원들은 서부에 있는 국립공원들보다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금은 국립공원이라서 연방 정부가 소유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다.
공원의 역사를 읽어 보니 참 재미있다. 일확천금을 노려 온 사람.
노예에서 해방되어 보려고 목숨을 걸고 동굴을 탐험하고 관광객들을 안내 해준 사람들.
영혼을 담보로 장사하는 사람,
매머드 국립공원의 역사는 개척시대의 미국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6000년 전에 이 땅의 원주민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그들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고 1800년 초 유럽인들이 들어왔다.
1811년 큰 지진이 났다. 미시시피 강이 3일 동안 거꾸로 흘렀다. 그 물이 지금의 릴풋 호수를 만들었다. 동부에 있는 교회의 종들이 저절로 울려댔다. 리히터 계기가 없던 때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8.9 정도의 지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났다. 영국은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미국이 화약(Gun Powder)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을 알고 화약 수입만 막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매머드 동굴에서 화약의 원료가 발견되었다. 흑인 노예들을 동원해 화약의 원료를 캐내어 우마차에 싣고 델라웨어의 뒤퐁 화학공장으로 보내 졌다. 게이트와 윌킨스는 불과 한 달 전에 이 일대를 160 불에 매입했다. 게이트는 자기 지분인 절반을 10000불에 팔았다. 한 달 만에 25배가 오른 거다. 전쟁이 끝나고 부동산의 가치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일했던 흑인 노예들이 동굴 탐험에 투입되었다.
비숍, 브랜스포드 같은 죽을 때까지 일한 전설적인 흑인들이 몇 사람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 덕분에 많은 사람이 편히 산다.
1830년 한 젊은 목사는 동굴 안에 교회를 차렸다.
교인들을 모아 등불을 들고 들어가 나무벤치에 앉게 하고 등불을 모두 거둔다. 목사는 한 단계 높은 곳에 자기만 조명을 받으며 설교했다.
동굴 안은 어둡다. 목사의 설교는 동굴 안에 퍼져나갔다. 불빛에 목사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교인들은 신과 악마를 동시에 보는 경험을 해야 했다. 종교를 빙자한 협박과 회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1839년 크로한이라는 폐결핵 전문 의사가 동굴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오래된 인디언의 시체가 썩지 않고 미라처럼 발견된 것, 화약 원료를 나르던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썩지 않는 것, 죽은 박쥐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과학지를 읽고 동굴을 사들였다. 노예들을 시켜 동굴 안에 방을 만들고 폐결핵 환자들을 입원시켰다. 처음에는 좀 나아지는 것 같던 환자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가겠다는 환자들을 의사가 못 나가게 했다. 5명이 죽은 후 문을 닫았다. 의사 자신도 폐결핵에 걸려 이 동굴을 조카들에게 유산으로 남기도 6년 후 사망했다.
계획돤 사기도 그때나 지금이나..
1859년 기차가 들어왔다. 동굴은 빠른 속도로 상업화가 되며 망가지기 시작했다. 모든 입구는 개인이 소유하여 입장료를 받고 호객행위를 했다. 심지어 입구를 만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기도 했다.
1917년 플로이드 콜린스는 새로운 코스를 찾아 큰돈을 벌어 보려고 동굴 탐험을 램프 하나 들고 단신으로 들어갔다. 몸이 작은 구멍에 빠지고 다리가 바위에 끼어 나올 수가 없었다. 구조대원들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윌리엄 밀러라는 지방 신문 기자가 단독으로 들어가 그와 인터뷰를 했다. 오직 그 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가 모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집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이 차있는 좁은 통로로 뱀처럼 기어 들어가 콜린스에게 물도 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같이 기도도 했다. 그리고 날마다 언론에 그 소식을 내놓았다. 구조는 생각보다 더뎠다. 사람은 죽어 가는데 하늘에는 린드버그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떠서 실 시간 상태를 미국 전역에 알리고 주변에는 새로 텐트 마을이 생길 정도로 취재 열기가 가득했다.
17일 만에 그는 바위에 낀 채 사망했다.
취재기자 윌리엄 밀러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특종경쟁도 그때나 지금이다.
1926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194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가가 이 주변의 땅들을 사들여 농사짓던 사람들 장사하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다른 건물들은 거의 다 철거했지만 이 1827년에 창립된 오래된 교회는 기념으로 남겨 놓았다.
아직도 한 달에 두 번 예배를 본다는 이 교회도 한때는 이 마을 사람들이 태어나 세례 받고 자라서 결혼하고 죽어서 장례 지내던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누워있는 곳..
17일 동안 뉴스의 중심이었던 플로이드 콜린스 씨도 여기 묻혔다.
자금 동굴 안에는 투명하고 눈이 없는 새우와 물고기,
그리고 한번 외출해서 자기 몸무게의 두배를 먹고 동굴 안으로 돌아오는 귀뚜라미들이 살고 있다.
한 시간에 모기 600마리를 먹어 치운다는 박쥐는 흰 코 전염병(White Nose Syndrome)으로 수백만 마리가 죽어 멸종 위기에 있다.
매머드 동굴은 국립공원인 동시에 유네스코 자연 유산이고 세계 생태보호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