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끓다가 무섭게 터져버린

하와이 볼케노스(Hawaii Volcanoes) 국립공원

by 질경이

몇 천년 전,

먼 섬나라에서 배를 타고 새 땅을 찾던 사람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더 좋은 세상을 찾아 별을 보고, 달을 보고, 해를 보고, 파도와 새들의 움직임을 보며 도착한 곳이 하와이 섬이다. 그들은 땅에서 솟아 나오는 불덩어리를 보며 그 안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날씨가 따듯하고 습기가 많아 농사가 잘 되었다. 화산이 터지면 새 땅이 생겼다.

그들은 펠레(Pele) 여신을 믿고 섬겼다. 펠레는 땅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은 크루즈로 가서 힐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가 내려주는 곳만 볼 수 있었다.

IMG_5084.JPG


킬라우에아 분화구,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여기가 화산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국립공원 레인저의 말에 의하면 자기 숙소에서 밤에 보면 어느 날은 불꽃이 더 높게 올라와 정말 무서울 때가 있다고 했다. 한가운데 솟아오르는 불이 조금 보인다. 사람들은 불길이 올라오면 환호했다.

IMG_5032.JPG

킬라우에아 분화구가 보이는 곳에 있는 토마스 재가 박물관은 이 공원뿐만 아니라 지구와 화산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어 꼭 보아야 할 곳이다.

IMG_5053.JPG


땅속에 불 덩어리가 있다는 건 옛날에 배웠지만 현실적으로 느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 발밑 60~170 킬로미터 아래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있다. 하와이 섬들은 이렇게 용암이 오랫동안 조금씩 솟아 나와 생긴 땅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500 에이커의 땅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IMG_5073.JPG


태평양을 뺑 둘러 화산지역에 빨간 점으로 표시를 했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 내가 갔던 알래스카, 일본, 지금 이 여행의 도착지 뉴질랜드..

그리고 그 중심 바로 여기 하와이.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진대에 있다. 군데군데 김이 올라오는 것 말고는 참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열대우림 속을 걸어갔다.


2769AA43587961861D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2645FC435879619012

용암동굴(Thurston Lava Tube)이다.

묽은 상태의 용암이 빠르게 흘러 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공원 안에는 길이 있다가 용암이 흘러내려 길이 막힌 곳도 있다.

23271E43587961971B

1969년 흘러내린 용암



231562435879619B1A

1971,1972년 흘러내린 곳..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바위에서도 꽃이 피었다.

좀 더 돌아다녔으면 좋겠는데 배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음에 한번 더 올 수 있다면 차를 렌트해서 더 자세히 돌아보고 밤에 흘러내리는 용암도 보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섰다.


23384F43587961C22D

배가 기다리고 있다.



2658C843587961C41C

화산과 용암을 보느라 덥고 지치고 배가 고팠는데

이 잘 생기고 친절한 친구가 배 입구에서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얼음 물수건을 건네준다.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오후 5시 30분, 배는 천천히 힐로 항을 빠져나갔다.

일찍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방 담당 루리와 마주쳤다.

"오늘 저녁 이 배가 화산 국립공원을 지나가는 거 알죠?" 한다.

아니 몰랐는데.. 일정에도 없고 방송도 듣지 못했다. 낮에 시간에 쫓겨 충분히 볼 수 없어 섭섭했는데 잘 되었다. 저녁에는 두꺼운 커튼을 쳐 놓아 일부러 나가기 전에는 밖에 무엇이 지나가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알려 준 루리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야 하는 항로를 잠시 서쪽으로 돌아 화산의 야경을 보여 준 선장도 고마웠다. 배가 가는 방향으로 보아 우리 방 베란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베란다에 나가 기다렸다.


233DEC3C587989E71C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온 용암이 바닷속으로 흘러들어 가며 불바다를 만드는 광경이다.

내가 살아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땅속에 불덩어리가 있다는 걸 확실하게 믿는다.

260E7F3358798A0117

한참 서있다가 선장이 배를 돌렸다.



23654D3658798A1E19

배의 뒷 갑판으로 나가 보았다. 사람들은 멀어지는 화산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다녀온 1년 반 후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8년 5월부터 8월 사이에 6만 번의 지진이 일어나고 62번의 붕괴가 생기더니 분화구가 폭발했다.

50년 동안 조금씩 흘러나오던 용암이 어느 날 어마어마한 용암을 토해내고 잠잠해졌다. 700채의 집을 파괴하고 토마스 재가 박물관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지 못하고 있다. 용암 속에 있던 펠레 여신이 분노했을까?


Fullscreen capture 10182020 82334 PM.bmp.jpg
Fullscreen capture 10182020 82330 PM.bmp.jpg

깊이 85미터였던 분화구가 깊이 488미터가 되고 직경이 두배로 커졌다. 그리고 더 이상 용암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언제 다시 터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쉬고 있는 상태다. 내가 본 것들을 다음에는 볼 수 없게 되었다.

'Now you see it, now you don't'라는 말이 있다. 마술사의 이야기다. 2016년 내가 갔을 때 보았던 것이 지금은 없다. 2020년 봄, 하늘에서 찍은 사진에 분화구 바닥에 물이 조금 고인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있는 것을 파괴하고 새것을 만들어 내는 펠레가 다음에 갔을 때 크레이터 레이크처럼 맑은 호수를 만들어 놓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keyword
이전 08화'높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