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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r 21. 2022

백 년의 더께를 벗기며



 애틀랜타 시내에서 가까운  오래된 동네에 100년 된  빨간 벽돌집이 한 채 있다. 애틀랜타 시내에서 일하는 딸이 살 집이다.  집을 처음 보던 날 집안으로 들어서니 마룻장이 몇 줄 썩어 부러져 있었고 앞마당의 아름드리 참나무 뿌리가 하수도관을 파고들어가 하수도를 쓸 수가 없었다 잔금을 치르는 날 집주인을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집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할머니였다. 양로원에서 휠체어에 실려 온 할머니는 자기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어했다. 서류에 서명해야 할 곳이 많아 힘들다고 울먹거렸다. 이 집이 이렇게 망가지도록 방치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서류에 서명을 마치자 보호자가 휠체어를 밀고 나가버려 듣지 못했다.

 

손볼곳이 많았다. 경험이 많은 의사 같은 목수가 필요했다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20년 전 우리 집을 수리해준 형제 목수다. 일하다 손가락을 다쳐 언제나 주먹을 꾹 쥐고 일하는 형과 오래된 집의 나무 만지는 것이 행복하다는 동생이다. 집 고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천천히 꼼꼼하게 일 해주던 기억이 남아있어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100년 된 집이 있는데 고쳐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틀 뒤, 6시간을 운전해 그 형제가 왔다. 전화 한 통화에 먼 길을 와준 목수 형제의 얼굴에서도 세월이 느껴졌다.

공사가 시작되었다.  썩은 마룻장은 떼어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손으로 하나하나 붙인  옛 스러운 타일은 깨진 부분이 많아  뜯어 내고 새 타일을 붙였다. 부드러운 곡선이 정답게 느껴지는 무쇠 욕조도 녹이 슬어 아쉽지만 떼어내야 했다. 골동품 느낌이 나는 문손잡이는 잠그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관 손잡이는 새것으로 갈고 잠그지 않아도 되는 집안의 문 손잡이는 오래된 것을 그냥 두기로 했다.

 지하실에는 가림막도 없이 변기와 빨랫장, 다림질 판이 있었다. 하인이 살았던 것 같다. 지하실에서 석탄을 때서 스팀으로 난방을 했던 집이다. 지하실 벽, 화덕이 있던 자리에  커다랗게 뚫려있던 구멍도 메꾸었다.

 이 집에서 썩은 부분이나 갈라진 부분보다 더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이 집을 온통 덮고 있는 페인트의 두께였다. 금이 간 곳도 페인트로 메꾸었고 썩은 부분도 페인트로 두껍게 덮어 놓았다. 문에 있는 장식 조각이 두꺼운 페인트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목수는 문을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했다. 문을 바꾸면 백 년 된 집의 분위기는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새 문의 값과 오래된 페인트를 벗겨내고 상한 부분을 고치는 값이 같다고 했다.  고치는 쪽을 택했다. 그 대신 페인트를 벗기는 노동은 우리 부부가 하기로 했다. 목수 형제가 천장과 부엌, 목욕탕 등을 고치는 동안 남편과 나는 유리창과 문에 겹겹이 쌓인 페인트를 벗겨 내기 시작했다.

  페인트를 녹이는 화학제품을 써 보았다. 친환경 화학약품을 뿌려 놓고 몇 시간 후 긁어내는 것이다.. 제일 윗부분부터 페인트가 녹았다. 몇 겹의 흰색, 그 아래는 베이지색, 붉은색도 있었고, 연한 갈색, 마지막에 녹두 색이 나왔다.  잠시 녹두색 대문이 달려있는 빨간 벽돌집을 상상해보았다.  맨 아래 아기 피부처럼 깨끗한 나무가 드러났다.  동생 목수가 나무를 만져 보더니 요즘은 이렇게 좋은 나무를 구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화학제품으로 녹은 페인트가 다시 나무에 엉겨 붙어 완전하게 제거하기도 힘들고 화학제품의 값도 만만치 않아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면도칼과 끌을 사용 해 긁어내고 파내기 시작했다. 문 하나를 떼어내어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두 사람이 긁어내고 파내는데 사나흘이 걸렸다. 집 한 채에 문과 유리창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참을성이 필요했다. 살살 긁으면 안 벗겨지고 세게 긁으면 속살이 상했다. 

 

  어느 날, 계단을 고치던 동생 목수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고 나를 불렀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널빤지가 썩어있어 고치려고 떼어냈더니 그 안에서 나왔다며 누런 신문지 몇 장을 보여주었다. 타임캡슐을 보는 듯했다. 손을 대면  부스러졌다. 조심스럽게  퍼즐을 맞추듯 읽어 보았다. 신문의 내용도 신기했다. 흑인 강도가 들어 집주인의 총을 빼앗아 쏘았는데 총이 불발해서 집주인이 무사했다는 기사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라는 단어가 그대로 나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 목욕탕 공사를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기사도 있었다. 광고를 보니 멋진 여자 모직 정장이 18불, 면으로 만든 원피스 드레스는 1불 97 전이다. 고장 난 라디오 고쳐준다는 광고도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식량을 아끼자는 발표를 한 기사가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100년 전 신문이 아니다. 날짜를 찾아보니 1947년 10월 8일 자 애틀랜타 저널이다. 시에 등록된 건축 일은 1920년인데 1947년에 집수리를 한 것 같다.

  

 100년 전, 이 집을 지을 당시는 일차 대전이 끝나고 경제가 살아나며 미국에 주택 붐이 일어났다. 금주령이 있어 술을 팔거나 사지 못했다.  스페인 독감이 2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쓸어 일차 대전에서 전사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색인종과  여자들은 투표도 하지 못했다. 이 집이 완공되고 몇 년 후  이 집에서 서쪽으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한 집에서는 펜데믹으로 어머니를 잃은 마가렛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집에서 남쪽으로 걸어갈 만한 한 집에서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 색깔이 아닌 성품으로 인정 받는 날이 오기를...'  이런 유명한 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이 태어났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훗날 불우한 미국의 청소년들을 변호해주는  자그마한 체격의  한국 여자가 이 집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하다 보니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 집안은 딸이 원하는 연한 회색으로 칠했다. 집안이 환하게 살아났다. 표면을 살짝 갈아낸 원목마루에는 갈색 니스를 칠했다. 오랜 세월 상처가 많아 연한 색은 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벽과 마루 색이 잘 어울렸다.  나이가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참나무는 수명을 다 한것같아 시청의 허가를 받고 잘라내었다. 

 

 앞으로 오는 백 년 동안 이 집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개발업자가 하루아침에 밀어버리고 새집을 지을지도 모른다.  살살 긁으면 안 벗겨지고 세게 긁으면 속살이 상하는 100년의 더께는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쌓여갈지 궁금하다. 새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오래된 멋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화로운 집으로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백 년의 더께를 파낸 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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