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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31. 2021

반고흐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

The Van Gogh Immersive

몇 달 전부터  딸아이가 표를 사놓고 기다렸던 날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애틀랜타 시내의 공장 안으로 고흐를 만나러 들어갔다. 


입구에서 수백 송이의 해바라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그의 작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수(Harvest)" 안에서


모델을 쓸 돈이 없어 자신을 그렸다.

"내 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려내기보다는 나를 더욱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내가 쓰고 싶은 색을 사용했다."

마을은 어둡고 별은 빛난다.

"나는 그림 그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을 그린다." -고흐-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단 멕클레인의 빈센트 가사 중-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지 그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편이 되어 준건 그의 동생 테오뿐이었다. 


 동생 테오가 결혼해 아이를 낳아 이름을 빈센트로 지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 화사한 일본풍의  '아몬드 꽃'


 그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기 몇 시간 전에 그린 나무뿌리다.


"Life goes on, it goes on without me."

그의 작별인사다.



거대한 방에서 그의 작품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 다음 방으로 갔다. 

아를에 있는 노란 집(Yellow house) 초록색 창틀이 있는 방이다.



의자에 앉아 안내자가 주는 안경을 끼니 내가 아를에 있는 고흐의 방 안에 앉아있다.


방문이 열리고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계단을 내려간다. 



집 밖에 남프랑스의 농가가 내 앞에 펼쳐진다. 

붉은 벼슬의 하얀 닭이 뛰어다니고 수선화가 피어있다. 그의 고향에나 있을 것 같은 풍차도 하나 서있다. 

밀밭을 지났다. 

하루 종일 일하고 고단한 몸을 짚 더미 옆 땅에 누워 쉬고 있는 한쌍의 남녀도 보인다. 


수레를 끌고 가는 농부들도 보인다. 

그가 걸어 다녔을 숲을 지난다.

해가 지고 마을은 어둠이 깔린다. 


그가 살던 노란 집 앞의 카페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의 밤은 낮 보다 화려하다.

집집마다 유리창에 불빛이 빛나고 

그가 그렸던 별들은 어두운 마을과 나무 뒤로  더 크게 빛났다.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번 더 보고 싶어 그대로 앉아있으니 다시 문이 열리고 나는 한번 더 그 계단을 내려갔다.







 1998년  12월 어느 날 새벽 다섯 시, 워싱턴 디씨의 내셔날 아트 갤러리 앞에 서있었다.

암스테르담의 고호 전시관이 내부 수리를 하는 동안 그곳에 있는 고호의 그림들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하나인 이 전시실로 가져와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특별한 기회였다. 그림들에 대한 보험료만 해도 엄청났고 그림이 오는 경로나 교통수단도 철통 같은 비밀이었다. 암스테르담까지 가지 않고 고호 박물관의  그림 70점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일생의 기회였다.

 나는 그린즈버러에 살고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겨울방학이라 집에 와 있었다. 다섯 시간을 운전 해 전날 워싱턴 근처 모텔에서 자고 새벽 다섯 시에 박물관 앞에 가서 줄을 섰다. 보려는 사람이 많아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의 줄이 박물관 빌딩을 한 바퀴 돈 상태였다. 날은 추웠고 들어 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직원이 나와 사람 수를 센 후 우리보다 100명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거기서부터는 아마도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 후에 입장권을 받았다. 11시 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맥도널드에 가서 아침을 먹고 몸을 녹인 후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감자 먹는 사람들", "한 켤레의 신발"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가 광산촌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내며 그린 초기 작품이다. 머리끝에서 전기에 오른 듯 찡한 것이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나 연주를 들으며 소름이 돋거나 눈물을 흘린 적은 있었지만 그림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림과 함께 그가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되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목사의 아들로 그도 한때 목회를 시도했었다. 보통사람들이 하는 목회의 방법에 실패한 그는 그림으로 신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사람들은 그를 거부했다.

'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밀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사랑했다. 씨 뿌리는 사람, 쟁기질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감사했다.

연도별로 전시된  작품 거의 모두를 보고 끝으로 출구 바로 앞에 전시된   '밀밭의 까마귀'를 보고 나니 출구였다.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뒤로 돌아가 한번 더 돌아보면 안 돼요?'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나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입구로 돌아가 처음부터 한번 더 보았다.


나오는 길에 그의 그림 중 가장 내 맘에 들었던 ' The Harvest '복사본을  한 장 사 왔다.




이사할 때 박스에 말아 넣어 두었던 것을 다시 내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보니 오랜만에 보아도 역시  좋다.




"사람들은 수확을 위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일한다.

우리 일생은 씨 뿌리는 과정 일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는 35세였다. 먹을 것을 아껴 물감을 사야 했던 그는 영양실조, 간질, 정신착란으로 노란 집에서 쫓겨나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37세로 생을 마감했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그의 나라 암스테르담에 가서 한번 더 보고 싶다.

그리고 그가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아를에도 가서 가상현실이 아닌 내 발로 걸어 다니며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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