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레이크 시에서 점심을 먹고 I-80 동쪽을 향했다.
인터스테이트 80번(I-80) 고속도로는 링컨 하이웨이라고도 부르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저지까지 동서로 달린다.
1956년에 계획되어 1986년에 완성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첫 고속도로이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이다.
대륙횡단을 여러 번 하였지만 80번은 처음이다.
북쪽을 가로 지르기 때문에 겨울에는 하기가 힘들다.
솔트레이크시를 남북으로 지나는 I-15번을 만나 3마일을 남쪽으로 가면 80번 동쪽이 갈라진다.
솔트레이크시의 남쪽만 살짝 지난다.
와사치 산맥을 지나야 한다.
길의 느낌이 캘리포니아나 유타와는 좀 다르다.
80번 길은 1880년대 동부 사람들이 서부로 밀려올 때 주로 왔던 마차 길인 오레곤 트레일과 거의 일치한다.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반겨주는 "영원한 서부" 와이오밍주를 넘는다.
고속도로 첫 휴게소는 안내소이기도 하다.
와이오밍주는 넓이가 97814 평방 마일로 38691평방 마일인 남한보다 2.5배 크다.
인구는 달랑 58만 명.
우리나라 5130만 명.
와이오밍주는 미국에서 알래스카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소는 130만 마리.
10년 전 엘로스톤에 왔을 때 사람 수가 소보다 적다며 이사오라는 간판을 보고 놀랐었다.
영원한 서부답게 꾸며놓은 안내소에서 여행에 필요한 자료들을 얻는다.
사람이 귀해서인지 대단히 친절하다.
서부개척시대에 사람들은 금이 나오지 않는 여기를 지나 콜로라도나 캘리포니아로 가 버렸다.
와이모밍주를 지나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사람들이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다.
와이오밍을 지나는 80번 길에서는
2633미터 높이의 록키산맥을 넘고 붉은 사막(Red Desert)이라는 대 평원을 지난다
해가 지기 전에 물이 좋기로 유명한 라우린스에서 호텔을 찾아들었다.
와이오밍의 주도 샤이앤에서
와이오밍주의 주도인 이 도시의 이름은 150년 전까지 이 근처의 대 평원에서 들소를 잡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샤이앤 인디언들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유니온 패시픽 철도가 지나게 되며 한때 크게 성장했던 이 도시는 현재 인구 5만 9천 명으로 그리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화물열차만 다녀 별로 붐비지 않는 역사 앞에는 카우보이의 상징인 부츠가 서있다.
동부에서 백인들이 서쪽으로 이동할 때를 상징하는 듯 정장을 한 여인이 역에서 나오고 있다
부츠 뒤에 Sand Creek Massacre Trail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샌드 크릭 학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웠던 일이다.
1864년 11월, 치빙턴 대령의 지휘 아래 675명의 군인이 인디언들의 마을을 습격해
남자 53명,여자와 아이 110명, 합해서 163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일이다.
그날 젊고 싸울 수 있는 인디언들은 사냥을 나가고 나이 든 인디언 남자들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몇 년 전 이루어진 평화 조약에 따라 그 인디언 마을입구에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미국 국기와 흰 깃발을 세워 놓았다고한다.
여러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군인들은 인디언을 죽여 머리를 벗기고 신체 부위들, 코, 귀, 팔다리 심지어 여성과 남성의 성기까지 잘라 전리품으로 덴버까지 가져가 전시까지 하였다고 한다.
군인들 중 일부는 이 전투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고
이 끔찍했던 현장을 의회에서 증언한 살리나스 술 대위는 일주일 만에 살해당했다.
미국 의회는 이 사건을 지휘한 치빙 턴 대령을 징계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그를 영웅화시켜 학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이름으로 마을을 만들었다.
그 후 인디언들은 싸워도 보고 평화 조약도 해 보지만 결국은 설 곳을 잃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머나먼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쫓겨난다.
지금 150주년을 맞아 이 역사의 현장을 국립 역사지구로 만들며 피해자들의 자손들과 미국 정부가 함께 자료를 모아 준비하고 있다. 잘못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부츠를 신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온 백인들에게 쫓겨가는 인디언들이 생각나
멋지게 만들어 놓은 부츠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카우보이 복장을 만들어 파는 랭글러회사.
한 남자가 전당포에서 무언가 사 가지고 나와 급하게 확대경으로 들여다본다.
보물일까? 쓰레기 일까?
법보다 총이 먼저였던 서부였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차역의 영광도 사라져 이제는 폐허가 된 상가들만 줄지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