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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Sep 04. 2020

 발이 젖었니? 말랐니?

드라이토투가스(Dry Tortugas)국립공원 

드라이 토투가스 국립공원은 미국의 최 남단인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에서 국립공원에서 지정한 "양키 프리덤호"를 타고  가야 한다.  배가 떠나기 전 직원들이 멀미약을 권했다. 좌석 군데군데 옛날 비행기처럼 멀미봉투도 있었다. 멀미를 하지 않는 체질이지만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배는 몹시 흔들렸다.   


두 시간 반 후에 도착한 섬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흔들리는 배 대신 저런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외진 곳에 거대한 요새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토투가스는 거북이, 1531년 스페인 사람 폰스 드 리온(Ponce De Leon)이 맨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당시 이 섬에 거북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공격할 대상을 기다리는 해적들이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그 후 300년 동안 거북이의 살과 알은 해적들의 비상식량이 되어 주었다.

 드라이는 식수가 없어서 생긴 이름이다.

1822년 이 산호섬의 주인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이 작은 섬에 벽돌 천육백만 개를 옮겨와 이런 요새를 만든 건 지리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남쪽 해안(Gulf sea)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려면 여길 통과해야 한다.

 목화 담배 커피 등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져가는 꼭 지켜야 할 길목이다.



 요새에 쌓인 벽돌 색이 아래위가 다르다. 1847년 처음 짓기 시작했을 때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햇빛에 말린 벽돌을 갖다 지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며 북군 소속이었던 이곳에 남군 소속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벽돌 공급을 끊었다.

 아주 먼 버몬트 주에서 오븐에 구운 벽돌을 가져다 쌓아 올렸다.

햇볕에 말린 벽돌이 색이 연하지만 훨씬 더 강하다고 한다.

그래도 태풍과 파도에 200년을 버티어왔다.

이 요새는 지금까지 공격을 받아 본 적도 

공격을 해 본 적도 없다. 해적들을 겁주기 위해 대단한 값을 치른 셈이다.


섬에 내리는 순간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웅장한 요새가 아니고 푸른 물 색깔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육지 근처의 물과 달랐다. 헤밍웨이가 여기 와서 며칠 씩 낚시를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쾌속정도 없었다. 풍랑에 배를 띄우지 못해 비상식량으로 견디면서도 여길 좋아했다는 것이 이해되었다. 

바다 표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벽돌로 만든 길이 있어 요새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갑자기 파도가 밀려와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알아서 돌아보라는 말이 좀 야속하게 들리기도 했다. 수영도 못하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가기로 했다. 내가 빠지면 누군가 건져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벽돌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물고기들이 내 발 옆으로 헤엄쳐 다녔다.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1600년 이후 200척 정도의 배가 이 부근에서 좌초되었다고 한다.



등대가 서 있던 자리.

그리고 위협적인 대포, 

3마일을 날아간다는 대포다.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든 것은 볼 때마다 무섭고 기분 나쁘다.

대포알을 불에 달구어 한꺼번에 네발을 날려 배에 불을 지를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포를 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도망병들과 강도들의 감옥으로 쓰였는데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에 관련된 네 명의 죄수도 여기에 있었다.

그중 사무엘 머드(Dr. Samuel Mudd)는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존 부스(John Booth)를 치료해 주고 신고하지 않았다고 공범자라는 죄명으로 이곳에 끌려왔다.

그 해에 이곳에 황열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의사 머드는 전심을 다해 환자를 치료해 앤드루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보트가 한 척 있다. 그 옆에 설명을 읽어 보았다.

2007년 7월, 33명의 쿠바 사람들이 자신들이 집에서 만든 아주 작은 배를 타고 드라이 토투 가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그중에는 의사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고 공장 직공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국립공원을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정부 몰래 집에서 만든 배다. 이 작은 배에 33명이 타고 100마일을 2박 3일 걸려 여기까지 왔다. 배에는 사람으로 꽉 채우고 최소한의 식량과 가솔린을 실었다.

이 작은배를 타고 쿠바에서 온 33명.

'우리가 해냈다!

운이 좋아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이 작은 배 안에 쭈그리고 앉아 여기까지 와야 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600명 정도의 쿠바 사람들이 이렇게 미국으로 온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오자 

미국 정부와 쿠바 정부가 협약을 맺었다.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Wet foot)은 구조해 주지 않는다.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Dry foot)은 최소한의 도움을 주고 이민국에 넘겨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한다.

열악한 배를 타고 오다 풍랑을 만나거나 길을 잃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고 사는 것이 그들의 발이 젖었는지 말랐는지 간발의 차이다. 그들이 타고 온 배와 그들의 사진을 보니 숙연해졌다.


2만 년 , 아니 어쩌면 10만 년, 전부터 살던 사람들을 내 몰았던 200년 전에 온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이민을 받지 말자고 주장한다.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이민 정책은 해왔던 대로 해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민정책이나 난민정책만큼은 정치에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현 정부의 이민정책이 요새 안에 서 있는 대포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드라이 토투 가스 국립공원에 와서 인간들이 만든 대포와 요새를 보았다. 지켜야 할 역사라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보호한다.


이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 탐험가, 해적, 요새를 지은 사람들, 군인, 죄수……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온 난민들 모두 내가 본 이 푸른 바다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다른 느낌으로.

 

 해가 지는 키 웨스트항으로 배가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항구에 나와있다.


키웨스트에서는 날마다 해 질 때면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썬쎗 페스티벌이 열린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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