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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Dec 07. 2022

 열한번째 대륙횡단의 마지막 날

자동차여행을 하며 



  여행의 마지막 날은 긴장이 좀 풀린다. 

하루에 가기는  좀 멀지만 중간에 하루 더 자고 가기는 어중간했다. 열심히 가면 집 까지 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든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가장 위험하데요.. 조심하세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조심해서 가기로 했다.

교통 표시를 유심히 보며 달렸다.  미국의 네비 시스템은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라거나 교통단속이 있다는 말도 해 주지 않는다.

 나는 서울에 가면 운전을 하지 못한다. 지방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수원에 가서 차를 빌려 돌아다니다 수원에서 차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돌아온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차 없이 돌아다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와 미국 여행을 하는 분들은 운전실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어로 된 표지판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갓길에 교통경찰한테 잡힌 차나 고장 난 차가 있으면 왼쪽 차선으로  바꾸던지 그럴 수 없을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전에는 배려로 그래야 했는데 지금은 법이다. 그렇게 하지 않다가 잡히면 벌금이다.   

도시를 지나갈 때 말고는 고속도로에서는 대부분 시속 80마일(128킬로) 다.  


노란 경고판이 나오고 70마일로 줄이라는 표시판이 있다.   

세인트 조지라는 도시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주 경계선을 지날 때면 이런 것이 있다. 미국의 주는 거의 하나의 국가와 비슷하다.

유타주에서 애리조나주로 넘어갈 때 모든 트럭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 승용차는 제외다. 

애리조나주로 넘어간다.  

여기는 시속 75마일이다.  

다시 노란 표시가 나오고 시속 65마일로 줄이라 한다.

참고로 하얀 속도 표시는 법이고 노란 것은 경고이다. 

노란 표시를 어기면 내가 위험해지고, 하얀 표지판을 어기면 벌금이다.  

경사가 급하니 트럭은 55마일로 가라고 권고한다.  

앞으로 11마일은 내리막 커브가 있는 산길이다. 모든 차 시속 55마일.  

앞으로 9마일은 강풍이 불어올 가능성이 많은 지역.

사막의 강풍은 차도 넘어트릴 수 있다.   

옆에서 차가 진입한다.  

전방에 공사 중   

왼쪽 차선이 없어짐. 오른쪽 차선으로 이동할 것. 

가장 애매한 표시판은 낙석주의다.

내가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천천히 가야 하나? 돌 떨어질지 모르니 번개 같이 지나가야 하나?

그냥 눈 부릅뜨고 갈까? 눈 질끈 감고 갈까?     


앞으로 4마일 강풍이 지나가는 곳.  

왼쪽 차선이 없어질 것이라더니 정말 줄어든다.  

앞으로 2마일 비탈길   

진짜 꼬불꼬불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애리조나의 북서쪽 귀퉁이 30마일을  이렇게 지났다. 

곧게 뻗은 길이 나오고 네바다주로 넘어간다. 

저 사람들은 무사히 애리조나를 넘어온 것을 자축하는 듯..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캘리포니아 주경계선에는 농산물 검사소가 있다, 모든 차는 일단정지해야 한다.

 농산물을 가져오는지 모든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거나 과일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아무 생각 없이 여행 중 먹으려고 가져오던 오렌지를 빼앗긴 적이 한번 있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언어가 달라 무심히 지나칠 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급한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이 옆으로 빠져나와 들어가게 만들어놓은 램프가있다.



나의 열 한번째 대륙횡단 여행은 2015년 6월 15일 집을 출발해 7월 14일 집에 도착해서 끝이 났다.

한 여름, 가뭄이 심한 사막의 우리 집은 삭막했다.

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집 경계선에 나와있다. 켄터키를 지나며 본  말들을 생각하니 얘들이 불쌍하다.   

1986년 캘리포니아에서 동부의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를 하며 처음 해 본 미 대륙의 횡단은  여행이 아닌 이주여서 어린아이들과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006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해야 할 일을 거의 다 마치고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여행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이 나라에 대하여 거의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10년 동안 미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우연히 켄 번(Ken Burns)의 국립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미국의 국립공원을 찾아다니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진실로 미국이 가장 잘 한 일중의 하나이다.  

이번 여행에서 오하이오주의 카야호가 국립공원, 미시간의 아일 로열 국립공원을 본 것으로 미국의 국립공원 59개 중   미 본토(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48개 주)에 있는 국립공원 51개를 다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가 본 20개 주 중  지금까지 못 가보았던 아이오와주와 네브래스카를 지나며 미국의 50개 주를 다 채웠다. 미국의 주 하나는 웬만한 나라보다 크다. 하루 이틀 보고 보았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지나갔을 뿐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제니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뛰어 나가 자신이 살던 마을을 벗어나고, 카운티를 벗어나고, 앨라배마를 벗어난다. 산타 모니카에서 돌아서서 다시 대서양까지 달리며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했다. 어느 날 그가 "I'm tired, I wanna go home" 했다.  나도 마구 돌아다니며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행 중 찍어 온 사진들을 들여다 보고 기억나는 대로 여행기를 올리며 나는 다시 한번 그곳을 간다. 


한달만에 윈체스터집에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석양을 보았다.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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