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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Jan 04. 2023

골드러시의 관문, 스캐그웨이



스캐그웨이에 도착해 이 마을의 역사와 스토리가 궁금했다. 제일 먼저 코링턴 뮤지엄으로 갔다. 


1897년 7월  시애틀 포스트 신문

클론다이크에서 온 최신 뉴스


금! 금! 금!  금! 


몇 사람은 $5000, 그보다 더 가진 사람도 많고 


10만 불어 치를 가져온 사람도 있다.



1896년 8월 16일 클론다이크 강에서 금을 발견해서 첫 수확으로 가지고 온 것이 113만 9천 불어치 (지금 가치로 하면 1억 불),

1896년에서 1903년 사이 여기서 캐낸 금이 57만 kg, 지금 가치로 1조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지 40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 같으면 1초 안에 올 뉴스지만 그때는 그 소식이 미국 본토까지 오는데 1년이 걸렸다. 

1897년 7월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에  이 기사가 나가자 온 세계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그중에는 시애틀 시장, 사진작가, 소설가등도 있었다.


금을 캐러 오던 사람이 관광객으로 바뀐 것 말고 

스캐그웨이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금광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숙큼이라는 원주민과 그의 여동생, 여동생의 백인 남편 카맥이다.




금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금을 찾아 저 험한 길을 넘다가 

추위로, 심장마비로, 배고픔으로 죽는 사람,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10만명이 도전했으나 크론카이트 까지 간 사람은 3~4만 정도다. 



사람들은 스캐그웨이에서 바로 시작하는 이 산등성이 길을

 자기가 1년 동안 먹을 식량, 밀가루 400파운드, 베이컨 200파운드, 콩 100파운드는 기본이고 

 금을 캘 도구까지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다.

그들은 한 번에 그 많은 짐을 다 가지고 갈 수 없어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야 했기 때문에 

첫 34마일을 가는데 3~5개월이 걸렸다. 올라가다 힘들면 길 옆으로 피해 잠시 쉬어 갔다.




칠쿧패스를 지나 캐나다 입국을 기다리는 사람들.




말이나 개 같은 동물도 죽어갔다.

그래서 Dead Horse Trail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지금도 그곳에는 짐승 뼈들이  널려있다고 한다.




강물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만들어 타고 금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 강변의 나무들이 수난을 당했고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못은 1파운드에 28불(지금 760불)로 금값만큼이나  비쌌다고 한다.




444마일(715km)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갔고 

캐나다 내륙으로 시도한 사람들, 알래스카 수로를  시도한 사람들도 수 천명에 달했는데  그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골드러시가 끝나버렸다고 한다.


어느 길로 갔던 그들 모두는  

"아.. 다른 길로 갈걸.." 했다 한다.


금을 찾으러 가든,

꿈을 찾으러 가든 

한 번밖에 못 가는 게  우리네 인생길 같다 





금을 찾아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문을 듣고

술집과 도박장이 생기고 예쁜 여인들도 나타났다.




법의 손이 닿지 않았던 이곳에 제프 스미스라는 갱단 두목은 길에서 통행료도 받고 술집도 만들고 

부하들을 시켜 가짜 우체국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부치는 돈을  슬쩍 훔치는 일을 했는데 친절하게도 

가끔 가짜 답장도 해주었다 한다.





이 마을에서 만년 동안 대대로 조용히 살아온  Hankuchin( "한국인?")이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사냥하고 낚시하며 살다가   

 금캐러 온 사람들에 의해  강 하류의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가    

오염된 강물과 전염병으로 인해  사라져 갔다.

그러나 지도에는 아직도 "한나라(Han country)"가 존재한다.




클론다이크 작은 마을이 1년 사이에 인구 3~4만 명으로 늘어나며 강물이 오염되었다.

날림으로 지은 집에서의 비 위생적 생활로 인해  이질, 장티푸스,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이 만연했다. 

식량부족으로 계란이 한 알에 3~5불(81불) 사과 하나에 1불(27불) 정도 하니 괴혈병과 영양실조도 심각했다.

기록에 의하면 금을 깨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 도착할 즈음에는 돈과 기운이 다 소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금은 이미 고갈되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돈과 기운이 다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알래스카 서쪽 "놈"이라는 곳에서 또 다른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로 인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는 막을 내린다.

 짧은 미국 역사의 한 장으로 남는 이 드라마틱한 사건은  영화와 소설의 주제로도 많이 쓰였는데 

찰리 채플린의 "골드러시"도 그중의 하나이다.



추수감사절, 먹을 것이 없어 자기 장화를 삶아 칠면조를 먹듯 구두에 박힌 못을 쪽쪽 빨아먹는 채플린의 연기에서 천재성을 느꼈다.




눈이 많이 쌓여있으면 이런 기차가 눈을 치우며 달린다.



백 년 전 모습이 별로 변하지 않은 스캐그웨이는 

지금은 크루즈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려 잠시 100년 전의 골드러시를 상상해 보는 도시가 되었다. 

스캐그웨이에서 화이트호스까지 달리던 기차는 이제는 관광객을 싣고 달린다.



그런데 금을 캔 운 좋은 사람 중에서도  부자가 된 사람보다  잠시 즐기고 모두 잃어 불행한 최후를 보낸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칠쿳 패스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차를 세우고 잠시  돌아보았다. 유럽에서 신세계로 이민 온 사람들이  부자가 될 꿈에 잠겨 무거운 짐을 지고 목숨을 걸고 넘었을 길이다. 

안개 같은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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