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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03. 2023

다섯째 날, 샌디에이고항구

태평양횡단 크루즈 

     


새벽 6시 샌디에이고 항구의 불빛 속으로 배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이 거대한 배가 콘크리트 벽에 다가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다.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조차 알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조용히 갖다 부친다.




내가 탄 배 Ms Noordam 보다 더 큰 배가 이미 항구에 정박해 있다.



 

7시 도착, 여기서 내리는 사람들의 짐들이 먼저 내렸다.  이날 500명이 이 배에서 내리고 500명이 탄다고 한다. 짐과 사람이 한꺼번에 내리면 상당히 복잡할 것 같지만 시간 배치를 잘해 배 입구에서 하나도 붐비지 않고 차례대로 내린다.


아침을 먹고 8시 반 배에서 내렸다. 

 차를 렌트해서 잠시 집에 다녀올 거다. 집도 좀 둘러보고 5일 동안 지내보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집에 갖다 두고 필요한 것을 가져올 거다. 오후 4시까지만 돌아오면 된다.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렌터카 회사가 0.9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아침 햇살과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5일 만에 땅 위를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렌터카 회사에 가면 언제나 좀 찝찝한 게 추가 보험을 강요하고 더 좋은 차를 빌리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보험으로 렌터카까지 커버가 돼 더 이상 들 필요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더 들으라고 겁을준다. 결국 17불 더 내고 추가 보험을 들었다. 차에 가서 차를 검사하니 오른쪽 아래가 좀 찌그러지고 긁혀있다. 직원에게 말하니 알았다고 하더니 여기저기 서명을 하라고 했다. 아마도 열두 번쯤 서명을 한 것 같다.  차를 타고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연료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하는데 한 눈금 밑이다. 전화로 사진을 찍어 놓았다. 차에 앉아 내가 서명한 서류를 보니 차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되어있고 나는 서명을 했다. 더 찝찝하다. 만약에 아무 이상 없는 차를 내가 그렇게 망가트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집에 가서 집을 점검하고 필요한 것과 와인 두 병  가지고 바로 출발했다. 크루즈에는 와인이 두병만 허락된다.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채우고 렌터카 회사에 차를 반납했다. 아침에 있던 직원은 없고 다른 남자가 영수증을 프린트해 주며 혹시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고 묻는다.

실은 차에 상처가 있어서 혹시 우리가 그랬다고 할까 봐 좀 마음이 불안했다고 하니 하하 웃으며 그 정도 가지고 문제 있다고 회사에 보고하고 차를 수리공장에 보내면 자기네 장사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공연히 신경 썼잖아..


그 직원이 미안하다며 자기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무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고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고 했더니   다음에 차를 빌릴 때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해주겠다 고했다. 그리고 배 타는 곳까지 차를 태워다 주겠단다. 그렇지 않아도 대낮의 해가 뜨겁게 내리쪼여 걸어가는데 좀 덥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고맙게 제의를 받아들였다. 공연히 의심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배 안의 식당이 웬만한 도시의 식당보다 훨씬 나은데 굳이 밖에서 먹을 필요가 없어 배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 손님 500명이 따서인지 배 안의 분위기가 좀 더 활기 있어 보인다.  캘리포니아에서 탄 사람들이 입은 옷 색깔이 좀 더 화려한가? 그럴지도 모르지.






배가 도시의 한가운데 박혀 있는 것이 건물인지 배인지 구분이 안된다.

네시 정각 배가 또 고동을 크게 울리며 항구를 서서히 빠져나간다. 




후안 가브리요 장군 동상과 등대가 저 멀리 언덕 위에 보인다.

지금까지는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만 왔는데 이제부터는 하와이를 향해 서쪽으로 간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는 거다. 


샌디에이고가 점점 멀어진다.

지금까지는 바람이 차가워 베란다에 나가 있기에 좀 추웠는데 여긴 남쪽이라 바람이 부드럽고 차갑지가 않다. 돌핀 무리를 보았다. 물 위로 뛰어올랐다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 철벅 철벅 소리가 난다.

이제야 태평양을 건넌다는 느낌이 제대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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