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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02. 2023

바다 위에서

태평양횡단 크루즈 


아침 9시 고래에 관한 강의를 한다기에 대 강당으로 갔다. 강사는 평생 고래 연구를 해 왔다는 제이 크리스토퍼슨이라는 은퇴한 교수다. 노교수의 강의는 알아듣기 쉽고 명료했다. 고래에는 험프백, 오르카, 돌핀, 스펌, 크게 네 종류가 있다. 그들은 새끼를 낳으러 북극에서 하와이까지 따뜻한 물을 찾아온다. 

그들은 생김새도 다르지만 물을 뿜어내는 모양으로 그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와이 갈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고래를 찾아 그 종류를 알아맞혀 볼일이다…  

11시에는 미술사 500년 강의를 들었다. 영국에서 온 미술 경매사가 동굴벽화에서 램브란트, 고호, 고갱, 피카소, 달리 클림트, 웬디 워홀까지 간략하게 요점정리를 해 주었다.


12시 2층 비스타그릴에서 정식 점심. 바나나와 오렌지 전채 샐러드, 틸라피아, 커피, 요구르트, 맛이 훌륭했다.

파도가 좀 세졌다. 때론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어 비틀거릴 정도다. 


점심을 화려하게 먹어 갑판을 걷기로 했다. 세 바퀴 돌면 일 마일이다. 네 바퀴 돌면 2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갑판을 돌 때 어떤 이는 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고 어떤 이는 문에서 나와 왼쪽으로 돈다. 돌다 마주치면 처음에는 고개만 까딱하다 세 번쯤 되면 마주 보고 웃는다.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기다려진다. 다른 사람도 혹시 나를 기다릴까? 대부분 나처럼 네 바퀴 정도 돌면 끝이다.  



2시 강의는 찰리 어바노 비츠라는 노 교수의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역사를 바꾼 이야기였다. 이분 강의는 좀 지루했다. 내겐 좀 어려웠다는 뜻이다.




저녁은 갈라 나이트다.  정장을 하고 식당에 가야 한다. 엄청나게 뽑아 입고 오는 이도 있고 간단하게 차려입고 오는 이들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는 턱시도를 입고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는데 세상이 바뀌며 규정이 많이 풀어졌다. 오레건에서 온 모녀와 합석했다. 모피사업을 하는 남편은 사냥하러 유타에 가고 54세 엄마 19세 딸이 43일 동안 크루즈를 한단다. 남편은 한국의 모피회사에 밍크를 수출한다고 했다. 레베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여자는 당당하고 사교성이 있어 보였다. 딸은 상냥하고 잘 웃었다. 딸을 너무 사랑해서 학교도 보내지 않고 홈 스쿨링을 한다고 했다. 아.. 그래서 방학기간도 아닌데 크루즈를 하는구나. 사람마다 소중한 것이 다 다르니까.. 

8시에 시작하는 쇼를 보러 갔다.  여러 뮤지컬에서 사랑노래를 골라 이 배의 전속 가수들이 불렀다. 수준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떠는 수준정도. 내가 너무 심했나?


넷째 날  수요일 바람.


7시 30분 리도에서 아침식사. 계란 1 토스트 1쪽, 과일,.

아침을 먹다 고래를 보았다.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다. 물을 뿜어 내는 모양이 전날 강의에 의하면 블루 웨일이다. 하..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북쪽으로 가고 있다.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 배는 밴쿠버를 떠나 아스토리아, 샌디에이고, 하와이를 거쳐 아메리칸 사모아, 피지 뉴 칼레도니아를 지나 호주의 시드니까지 간다.  뉴질랜드까지 43일 상품인데 우리는 시드니에서 내리는 30일 상품을 샀다. 그 사이 적도를 지나고 날짜 변경선을 지나고 태평양을 횡단할 예정이다. 


밴쿠버에서 샌디에이고까지 4박 5일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편하다. 8년 전 알래스카 크루즈를 했을 때 배 안에서의 5박 6일이 좀 답답하고 지루했었다. 크루즈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까지 생각했었다. 8년 사이에 내가 변했나 보다. 그때보다는 방이 좀 더 넓고 발코니도 있어 덜 답답한 모양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좀 죄스럽다. 


점심을 먹고 또 걸었다. 푸른 파도를 내려다보며 걷는 맛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걷고 있다.

3시 30분 윈도 10 사용법 강의를 들었다. 노인들이 열심이다. 강의실에 있는 컴퓨터가 모자라 뒤에 서기도 하고 보조의자에 앉기도 한 채로 듣는다. 편리한 기계는 자꾸 나오는데 누구에겐가 물어보아야 하는 노인들에겐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크루즈 회사가 참 잘 생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여행은 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알래스카 여행에서 돌아와 아직 다 마무리도 되기 전에 애틀란타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고 애틀랜타로 이사 가기 전에 미국의 서쪽에 있는 국립공원 두 곳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방향으로 검색하던 중 하와이안 볼캐닉 국립공원과 아메리칸 사모아 국립공원을 가는 이 크루즈 상품을 찾았다.  

배는 미국의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샌디에이고를 향해 가고 있다. 왜 집에서 가까운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까지 가서 크루즈를 시작했냐 하면 … 값이 더 쌌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의 반값이었다. 그 반값을 절약하느라고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가방을 끌고 기차를 타고 밴쿠버까지 가서 배를 탄 거다.

멀리 육지가 보인다. 산타 바바라 근처를 지나고 있다. 오늘 밤에 로스앤젤레스를 지나 내일 아침에는 샌디에이고 항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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