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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04. 2023

잘 사는 사람의 차별대우, 못 사는 사람의 소원

태평양횡단 크루즈 


크루즈에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린다. 

그중 하나가 기본적으로 크루즈에 포함된 요금 이외는 대단히 비싸다. 시중에서 10불 정도 하는 포도주는 배 안에서 40불~50불 내고 마셔야 한다. 맥주 한 병에 8불이 넘는다. 그렇게 비싸야 하는 걸 이해는 하지만 좀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내고라도 마시고 싶으면 마셔야지.. 알래스카에서 마셨던 생각이 나서  한병 사 마셨다.


인터넷이 비싸다. 그런데 얼마나 느린지 메일 하나 열어 보는데 5분은 예상해야 한다. 안 쓰기로 했다   


Excurtion은 배가 육지에 닿으면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의 명소를 구경시켜 주는 프로그램인데 한국말로 적당한 단어를 모르겠다. 소풍이라고 해야 하나?  10시에 하와이에서 가는 Excurtion에 대한 설명회가 있다고 해서 강당으로 갔다. 크루즈 회사에서 주선해 주는 것은 매우 비싸다. 미리 예약해야 하는 것, 꼭 보고 싶은 곳은 할 수 없이 여기서 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배 밖에 나가면 반값에 갈 수 있다고 여행책에 쓰여 있는데 그렇게 해 보아야겠다. 애리조나 추모함과 펄 하버 가는 것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서 미리 예약했다.   

 이 날 시간을 한 시간 뒤로 해야 한다.. 배가 서쪽으로 가며 3일이나 4일에 한 번은 시간을 한 시간 뒤로한다. 시계를 보면 9시인데 졸리기도 하고 아침에는 6시에 배가 고프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아무리 잘 먹어도 영락없이 다음 끼니가 되면 또 먹는다. 시간이 잘 간다. 


 크루즈의 승객을 보면 99%가 노인이다. 60대는 젊은이다. 지팡이나 밀고 다니는 보조기,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많다. 평생 일하고 이제 맛있는 것 먹으며 쉬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의 표정은 대부분 당당하고 밝다. 언제라도 말을 시키면 거침없이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는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11시 반에 꽃꽂이 강의가 있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강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자가 미안하다며 농담을 했다” 오늘 이 강사 아주 흥미로운 편지를 상관에게서 받을 것 같네요”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날마다 기름진 것을 너무 먹는 것 같아 점심은 아시안푸드로.  그들이 김치라고 담아 준 것은 김치에게 미안한 수준이었다.  

오후에는 컴퓨터 강의를 들었다. 역시 노인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크루즈에 와서 컴퓨터 강의를 듣게 될 줄 몰랐다.   하여간 고마운 일이다.

저녁에 파스타를 먹었다. 첫날 아주 맛있게 먹었던, 같은 사람이 같은 내용물을 넣고 만든 건데 그 맛이 아니다. 입맛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방에 오니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수리하도록 불편을 감수해 주어 고맙다는 정중한 편지와 초콜릿 과자 한 접시가 놓여있다. 

스파에 다녀와 뉴스를 본다. 채널은 몇 개 없다, 뉴스는 CNN, FOX, MSNBC 단지 셋 뿐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채널만 보게 되니 점점 극과 극으로 분열되어 가는 것 같다.  


 

일곱째 날 

 5시 30분 잠에서 깨었다. 한 시간을 뒤로한 것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바람이 훈훈해서 베란다에 나가 앉아 있기가 좋아졌다. 책 좀 읽고 TV 좀 보고 8시 비스타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비스타 식당에 가면 웨이터가 안내를 하고 앉을 때는 의자를 밀어주고 냅킨까지 무릎에 놓아준다. 황공할 지경이라 좀 부담스럽다. 그래도 9층의 뷔페식당보다 음식의 질이 좋다.  훈제연어 오믈렛과 빵 감자, 커피를 주문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은퇴하자마자 집을 팔아 RV(캠퍼카)를 사서 일 년 동안 미국 일주를 했다는 붙임성 좋은 부부가 말문을 열었다.  미국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만나 보기는 처음이다.

첫 남편이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집을 얻으려 했는데 집주인들이 군인가족에게 집을 주지 않아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을 받았다.

 남편이 정신병을 앓았는데 사람들이 마귀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힘들었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아이가 어렸을 때 결핵을 알았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이 왕따를 시켜 서러웠노라고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백인들이다. 그들이 왜 차별대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자기들과 다른 내 얼굴을 보고 그런 생각이 난 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이 땅의 주인이었을 사람들과  찰스턴의  노예시장을 다녀온 후로는 차별대우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배의 갑판을 네 바퀴 돌았다. 하늘이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하얀 구름도 조금 떠있다. 좋은 날이다.  


저녁은 9층 리도마켓에서 인도네시아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바다 위에만 있는 날 지루하지 않도록 행사를 한다.  



폴리네시안들은 무서운 표정을 만들 때 혀를 내민다.

"잡귀야 물러나라"하는 표정. 

종업원들이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식당을 돌았다.   

배 안의 종업원 중 인도네시아인이 제일 많다.

우리 방 담당하는 룰리도 인도네시아인이다. 아내와 6살짜리 아들을 고향에 두고 한번 일을 나오면 6-8개월 배에서 생활하고 집에 가서 잠시 쉬고 또 일을 하러 가족과 헤어진 다고 했다. 

크루즈 회사에서 재계약을 안 해 줄까 봐 열심히 일한다. 

이 날은 메뉴도 인도네시아음식이다.  


8시 그린하우스 스파에 갔다. 스파의 종업원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이다. 그들은 나만 보면 한국말로 인사한다. 한국 K-POP과 드라마가 그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으면 김현중, 슈퍼 주니어,  이민호,  비와 송혜교… 거의 부자와 가난한 여자의 러브스토리, 신데렐라 스토리다. 돈을 모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 가서 가서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대부분 성형수술이 하고 싶다고 한다. 

성형한다고 송혜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민호나 비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집 떠나와 힘들게 번 돈을 성형에 쓰겠다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짠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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