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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Jul 07. 2023

리틀 락을 지나며

센트럴 고등학교와 클린턴

     


리틀 락은 아칸소주의 주도이다. 

아칸소주는 가장 늦게까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주다. 


흑인들에게 교육을 허락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다 연방군대가 와서 흑인 고등학생들을 보호해 데리고 들어갔던 센트럴 고등학교가 여기 있다. 




그 당시 아칸소 주지사는 주 정부의 군대를 동원해 흑인 아이들의 등교를 저지했다.

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은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1954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이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그 아홉 명이 학교에 간 첫날 연방 군인 1200명이 아홉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로 들어갔다.



우리는 깜둥이와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없다.. 는 아이들 



분노한 학부형들


이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분노한 백인 1000명이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때의 주지사는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하느니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했다. 

학교가 문을 닫자 흑인 학생들을 향한 백인들의 증오심은 더 커졌다.

주지사는 학교 문을 닫고 이 학교를 개인에게 빌려 주어 백인들만 다니는 사립학교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교육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재 임용을 해 주지 않아  44명이  교사직을 떠나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학교는 문을 다시 열었다.

지금은 국립 역사 기념관이 되었다.


내가 백설공주 만화영화를 처음 보며 너무나 신기해했던 때이고 

어른들은 에덴의 동쪽, 카사블랑카, 오케이 목장의 결투... 등을 보며 흑인과 인디언들이 보안관의 총에 맞아 죽을 때 박수를 치며 미국을 동경하던 시기였다.






리틀 락에는 빌 클린턴 기념관이 있다.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있었던 일들을 모아둔 곳이다.



1946년, 빌 클린턴은 아칸소의 Hope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엄마가 재혼하자  의붓아버지의 이름으로 바꾸어 클린턴이 되었다. 책 읽는 것과 색소폰을 좋아했다 . 

그는 링컨과 케네디를 존경했다.



식당에 흑인이 들어왔다고 머리에 소금과 케첩을 뿌리는 백인 사람들.
인디언들에게는 맥주를 팔자 않겠다는 사인 옆에 "신이여 이 나라를 축복하소서"를 붙여 놓은 식당. 


"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고쳐 보려고 했습니다."


1978년, 그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가장 나이 어린 민주당 주지사가 되었다.  두 번째 선거에서 지는 바람에 미국에서 가장 어린 전직 주지사(Ex -governor)가 되기도 했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잘하는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패배했지요."

인간적인 실수를 해서 오점을 남겼지만 참 영리한 사람이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일했던  서류, 약 8000만 페이지가  4536개의 파란 상자 안에 담기어 보관 전시되고 있다. 대단히 많은 일을 8년 동안 했다.



진주만 공격 후 루스벨트대통령이 일본인 미국 시민권자들을 수용소로 보낸 일을 사과했다. 미국정부가 한 일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은 중요하다.. 외교문제도 잘 해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린턴에 대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사건만을 생각한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지도력도 없고 청렴한  대통령이 더 좋은지 

인간적인 실수를 한 적은 있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열심히 능력을 발휘한 대통령이 좋은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식탁을 똑같이 만들어 놓은 방이다.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에 앉아보고 

각료들과 회의했을 오발 오피스 테이블에 앉아 보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 의자에 앉는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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