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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Sep 01. 2024

잘못 가서 더 좋은 걸

크로아티아번개여행

때론 계획하지 않았는데 더 잘될 때가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다 


도시가 한쪽은 바다이고 한쪽은 산이라 길을 넓힐 수가 없어 들어가는 길도 일방, 나오는 길도 일방통행이다. 이럴 때 방향을 잃기가 쉽다. 협곡처럼 생긴 일방통행 길로 두브로브니크를 빠져나왔다  


이제 북으로 올라간다.

목적지는 크르카 국립공원이다. 내 경험으로 세계 모든 국립공원은  선정된 이유가 있다. 그래서 가야 한다.



다리를 코앞에 두고 뱅뱅 돌아 건너갔다.

60킬로 북쪽에 보스니아 앤드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CEGOVINA)라는 긴 이름을 가진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 나라끼리 협약을 맺어 비자는 필요 없다. 네움이라는 도시가 있는 해안 15킬로가 보스니아의 유일한 바다로 향한 출구이다. 1699년까지 이곳은 라구사 공화국(지금의 두브로브니크)의 영토였다.

중세에 막강한 힘을 가진 상업국가이던 베네치아는 아드리아 해안을 장악하기 위해 이스트라 반도는 물론 달마시아 지방까지 지배했는데 라구사 공화국도 200년 정도 지배당하다 독립했다. 


늘 불안했던 라구사 공화국은  네임을  오토만 투르크에게 헌납하며 베네치아로부터 국경을 지켜줄 것을  약속받았다. 그 후 유고슬라비아가 되었다가 1991년 여섯 개의 나라로 갈라질 때 보스니아가 차지하게 되었다. 

네움 인구의 87%가 크로아티아 민족이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적이 바뀌어 버렸다. 줄만 그어 놓았지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네움이라는 국경도시를 그냥 지나가기보다는 이 나라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기름도 채우고 배도 채우기로 했다. 

식당 이름은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이"다


이 집주인이 자신 있게 권한 해물 특선.

다른 곳과 비슷한데 여긴 생선의 크기가 작은 대신 주꾸미와 찐 조개를 곁들여 주었다.



다시 북쪽으로 간다 남으로 내려갈 때는 해안을 따라갔는데 올라가는 길은 갈길도 멀고  너무 늦기 전에 방도 구해야 할 것 같아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플로체에서 자그레브 가는 고속도로 입구라는 표시판이 나타났다. 15분쯤 가니 고속도로 끝나고 일반 국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꼬불꼬불 산길. 차량통행도 거의 없어 좀 무서웠다. 온갖 감각을 동원해 VRGORAC를 향해 갔다.


한 시간쯤 한가하고 꼬불거리는 산길을 가니 오른쪽으로 평원이다.

아마도 보스니아 땅 일 것이다.


Vrgorac를 지나 갈림길에서 해안으로 빠지기로 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512번 길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갔으면 바로 고속도로가 연결되는 건데 길을 잃을 때는 판단력도 상실하는 것 같다.

또 한 30분 정도   산길을 달렸다.

산 허리를 휙 하고 도니 아.. 바다가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건 비오코보산 자연공원이다.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길 가에 차를 세우고 경치를 즐겼다.

잘 못 들었으면 어때 더 좋은 걸. 


지금껏 바다만 보았는데 

크로아티아는 산도 좋구나.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드리아해도 아름답다




저 멀리 왼쪽 산에 우리가 달려온 길이 보인다.


마카르스카로 내려와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다시 고속도로 표시를 보고 고속도로 진입.

크르카 국립공원 입구의 작은 마을 쉬베닉에 도착해 숙소를 찾았다

문 앞에 방 있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니 밭일을 하시던 할머니가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말은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 환전을 못해 숙박비도 아슬아슬하다. 카드나 달러도 받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의 지갑을 달라고 하더니 160쿠나를 일전도 안 틀리게 동전까지 싹 ~~~ 다 받아가신다.



방을 정해놓고 크르카 국립공원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쉬베닉마을 여행 안내소에 가서 환전도 하고 

웃는 모습이 환한 "마리아"라는 아가씨가 자신 있게 권하는 체바피로 저녁도 해결했다.

사실 너무 커서 반만 먹고 반은 다음날 아침에 먹었다. 시골 마을의 농가 민박이라 인터넷도 안되고 말도 안 통하고 방도 춥고 더운물도 미지근했지만 이렇게 넓은 집 이층 전체를 아주 저렴한 가격(30불 정도)에 빌려 

내 집처럼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다. 5성급 호텔은 아니라도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이다.


여행을 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이 더 기억에 남는 수가 있다. 이날이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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