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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Aug 31. 2024

전쟁의 흔적

크로아티아번개여행


크로아티아에 가면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전쟁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관광수입이 워낙 커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밝아 보이지만 불과 30년 도 안된  일 들인데 

 마음속에 어찌 깊은 상처가 남아있지 않겠는가. 

그들의 아픈 상처를 볼 수 있는 사진전시실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전쟁사진 전시관(War Photo Limited)"이다

입구에 설치된  TV화면에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유대인 기념관에 갔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워싱턴의 기념관은 유대인들이 그들이 당한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대단히 효과적으로 전시한 것이고  

이곳의 사진들은  적군과 아군의 입장이 아닌 이념을 떠나 전쟁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부상병들, 시체들, 처참한 모습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준 사진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처럼 땅에 뒹굴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아니고 

그냥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앉아 있는 어머니, 

아들의 시체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손가락에서 피를 뽑는 사진..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의 첫머리에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 올리는 아이디어다"라고 했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200년 동안 치러졌고  

"신이 나를 선택했으니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닥터 지바고 영화에서 하얀 눈 위에서 죽어 가던 어린 병사들 

터키의 갈리폴리 해안에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싸우다 죽은 이 편, 저 편 구분 없이 묻혀있던  젊은 군인들.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처럼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수록 영웅이라 부르며 그들을 숭배하는 이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91년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려 했다

20세기 초반 세계 일차 대전 후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발칸반도에서 물러나자 혼란기를 겪고 있을 때  

강력한 공산주의 지도자 티토가 1945년부터 발칸반도의 6개 나라를 합하여 다스렸는데 여섯 개의 다른 나라를 합해 놓으니 당연히 민족 간의 갈등이 커졌다. 관광사업으로 수입이 좋은 크로아티아에서 돈을 거두어 보스니아로 가져가고 크로아티아의 권력층은 모두 보스니아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다. 

힘으로 갈등을 누르던 티토가 사망하자 크로아티아는 독립의 의지를 확실하게 하게 되고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 연합군들은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를  집중 공격했다.

2년간의 전투에서 만 명이 사망하고 그 두 배나 되는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온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이 아름답고 작은 도시의 건물 중 68%가 포탄에 맞았고 아름다운 붉은 지붕 셋 중의 둘은 상처를 입었다. 

유네스코의 도움과 본인들의 노력으로  거의 원래 모습대로 복구시켜 지금은 전쟁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복구된  오노프리오 샘 앞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잘 생긴 청년이 두브로브니크 Heart를 팔고 있다.


여행을 다니며 모르던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느낀  특이 한건,

이렇게 힘든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식당이나 숙소를 구할 때나, 숙소의 주인이나, 길을 물어볼 때.. 마주친 사람들이 억척스럽거나 영악하거나 어두워 보이지 않고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건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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