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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Aug 28. 2022

벨링햄에서 메디슨 카운티까지

로버트 킨케이드가 갔던 길

"1963년 8월 8일 워싱턴 주의 벨링햄, 로버트 킨케이드는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의 3층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자기 집 문을 잠갔다."  로버트 윌러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요청으로 그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으러 길을 떠난다. 

 나는 이번에 대륙횡단을 하며   아이오와주를 지날 때는 무엇을 보고 갈까 검색하다가 윈터셋이라는 마을에  존 웨인의 생가와  메디슨 카운티의 지붕 있는 다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웨인의 생가에서는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하고 지붕 있는 다리로 향했다. 그 길은 아직도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먼지가 날리고 지도를 보면서 가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후 한 나절 시간을 내어 지붕 있는 다리들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집에 돌아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읽었다. 전 세계에 23개 국어로 5천만 부 이상 팔렸다는 이 책을 오래전 비행기에서 읽고 중년 남녀의 사랑이구나 하며 책을 덮었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좋아하는 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윌러는 사진가로서의 킨케이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킨케이드라는 사진작가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킨케이드는 사진은 찍는 것(Take)이 아니고 만드는 것(Make)이라고 했다. 그는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찍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피사체에 자신의 정신을 깃들게 하기 위해 그 이미지에서 시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도 했다. 사진 한 장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력은 존경할 만했다. 그는 전 날 가서 해의 방향을 보고   해 뜰 때 다시 가서 빛이 가장 좋을 때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시애틀 근교의 술집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을 찍을 때는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 보라고 한 후 그의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신청해 연주해 보라고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난 후 그 사람을 찍어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는 직업이 사진작가이지만 돈을 위해서 아무거나 마구 찍어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한 전문가였다. 

 그가 말했다

 "시대에 낙오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피를 몸에 지닌 사람 말이에요. 세상은 조직화되고 있어요. 지나치게 조직화되어서 나 같은 사람은 끼어들 여지가 없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고 모든 것이 한 자리씩 하고 있죠."

 책을 읽으며 점점 그의 신비스러운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도를 펴서 그가 사진을 찍기 위해 갔던 길을 따라가 보았다.  대부분 내가 가 본 길이다.  전에 그 길을 지날 때 내가 찍은 사진들을 꺼내어 보았다. 경치는 있는데 나는 그 안에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만 보일 뿐  내 마음이 깃들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나의 기억이 그가 간 길을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그가 살던 벨링햄은 캐나다 국경 바로 남쪽에 있는 워싱턴 주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다. 여름에도 만년설이 쌓여있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베이커 산을 뒤로하고 태평양을 앞으로 면한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이다. 작은 생선가게에서는 원주민들이 잡은 게와 생선을 판다. 대형 슈퍼마켓보다 값도 싸고 싱싱하다.  미국의 서부 지방에서 차로 알래스카를 가거나 캐나다 록키를 가려면 이 마을을 지나게 되어  세 번 가보았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그는 집을 나와  아주 먼 길을 떠나며 20번 국도를 선택한다. 지방국도로 가면 고속도로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고 아무데서나 서고 싶으면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길은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을 지나가는 꼬불꼬불하고  아름다운 산길이다. 길가에는  옥색 물을 가득 담은 호수가 있고 울창한 숲을 품은 산들이 있다.


 그는 밤늦게 몬타나 주의 칼리스 펠에 도착해 비싸 보이지 않는 모텔에 들었다. 칼리스 펠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물이 거울처럼 맑고 물속에는 예쁜 색깔의  자갈이 깔려있는 맥도널드 호수가 나온다. 그곳에서  글레이 시어 국립공원이 시작된다. 그는 관광객들이 많은 국립공원을 피해 다시 2번 국도를 택한다.

 나는  몇 년 전 이곳을 지날 때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태양으로 가는 길(Going to the Sun Road)을 넘어갔다.   태양으로 가는 길은 정말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높은 산을 향해 정신없이 올라간다. 대단한 기술과 돈을 투자해 만든 길이다. 그 길의 가장 높은 곳에 차를 타고 올라가서  나는 내 체력으로는 올라가 볼 수 없는 이 높은 곳에 길을 내 준 사람들에게 감사했었다. 지금 사진으로 보니 그 길은 거대한 산에 지그재그로 자른 상처로 보인다. 자연 보호자였던 그가 왜 이 길로 가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그는 노스 다코다의 메마르고 평편한 길을 달리며  산이나 바다만큼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길을갈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는 마른 풀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소 먹이로 둥그렇게 말아 놓은 건초 덩어리가 군데군데 널려 있을 뿐이다. 볼 것은 없이 황량한데 창 밖에 펼쳐지는 넓은 벌판이 마음을 편안하고 푸근하게 해 준다. 몸을 던져 굴러도 아플 것 같지 않다. 

 그는 오래된 농장 건물을 보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그랬다.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는  인디언 거주지역은 쇄락해 가고 있었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생각하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의 눈은 크고 화려한 것들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 작은 것들을 향했다.  그는 2번 길을 계속 달려 보야저 국립공원 바로 남쪽에 있는 수피리어 국유림에 갔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곳에서 이틀을 지내며  사슴과 여우를 찍고 이상한 모양의 나뭇가지가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도 찍었다. 

내가 갔을 때 그 길에는  평화롭게 물에서 노는 펠리컨 떼가 있었다.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지역이었다. 

 바다 같은 수피리어 호수를 보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아이오와 주에 열흘 만에 도착한다. 


 매디슨 카운티에는  지붕 있는 다리가 일곱 개 있다고 했다.  여섯 개는 쉽게 찾았는데 마지막 로즈만 다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먼지가 펄펄 나는 자갈길을 헤매다 리처드 존슨이란 이름이 새겨진 우체통을 보고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간다. 그 작은 길 끝에서 한 여인이 잔디밭을 지나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트럭에 올라 로즈만 다리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킨케이드는 고마움의 표시로 다리 주변에 피어 있는 야생화와 노란 데이지를 꺾어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그녀에게 준다. 그녀는 그런 것을 생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멋 적은 표정으로 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이탈리아에서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와서  젊었을 때 품었던 꿈을 접고  농부의 아내로 가족만 바라보며 살아온 여인이다.   다음날 새벽 킨케이드는 로즈만 다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예이츠의 시를 인용한  "흰 나방이 날개 짓 할 때"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프란체스카의 메모가 다리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망설이지만 가기로 한다.  두 사람은 그날 밤부터 나흘 동안 오래전에 만났어야 하는 사람들처럼 불 같은 사랑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 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내가 그림자처럼  킨케이드를 따라가 본 벨링햄에서 윈터셋까지는  2000마일이 넘는다. 그 길을 그는 고속도로를 피해 지방 국도로 달렸다. 경치가 좋다고 알려진 곳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곳,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다. 따라갈 수 있는 길도 있고  갈 수 없는 길도 있었다. 그가 간 길은 그가 살아온 길이기도 했다.

그는 현실과 환상이 만나면서 미처 이어지지 못하는 틈, 바로 그 길 위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후 자신이 원하는 사진과 잡지사에서 요구하는 사진 사이에서 갈등하다 잡지사를 그만두고 독립 사진가로 일한다. 용기 없는 사람은 하기 힘든 결단이다. 수입은 줄었지만 마음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살다 세상을 뜬다.   유언으로 카메라와 몇 안 되는 유품을 변호사를 통해 프란체스카에게 보내며 로즈만 다리에 먼저 가서 기다린다는 것을 알린다. 추억마저도 절제하며 살던  프란체스카는 유언으로 자식들에게 부탁한다. 내 인생은 가족에게 주었으니 남은 것은 그에게 주고 싶다고. 그들은 23년 만에 재가 되어 다시 만난다. 그의 외로운 방황은 매디슨 카운티의 로즈만 다리에서 끝이 났다. 


 내가 로즈만 다리 앞에 갔을 때 활짝 핀 분홍빛 엉겅퀴가 목을 쭉 뽑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비 한 마리 강가 조약돌 위에 앉아있었다.  그 이상은  따라가 볼 수 없는 길이다.

잘 가시오, 킨케이드...  그와 헤어져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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