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윕,토로윕(Tuweep,Toroweap)

그랜드캐년,

by 질경이


지금껏 다녀 본 중에서 가장 한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긴, 비 포장도로를 달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오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오는 내내 좋다좋다 하면서도 좀 긴장했던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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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그랜드 캐년에서 제일 외진 곳 투윕 토로윕(Tuweep/toroweap)이라 불리는 곳이다.투윕은 파이우테 말로 땅이라는 뜻이고 토로윕은 불모지라는 뜻이라고한다.

지도에도 잘 안 나오고 이곳을 설명할 때 여기 오는 차 네대 중 한대는 바퀴가 터진다고 겁부터 주는 곳인데 겁도 없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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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들어가니 국립공원 사무실이 나오고 인상 좋은 레인저가 우릴 맞는다.

캠핑을 할 것이냐고 묻고 우리 차를 둘러보고 이 차라면 캠핑장까지 들어갈 수 있겠다고 한다.

승용차나 벤은 입장 불가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 다행이라며. 캠핑장에서 Toroweap Overlook까지 가는 길은 더 험하니 판단을 잘해서 전진하라고 충고해준다. 저 위 캠핑장에 너희 말고 한 사람 더 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이 넓은 곳에 아무도 없다면 좀 무서울 텐데 한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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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를 800미터 남겨놓고 해가 진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토로윕 전망대(Toroweap Overlook)까지 가지 못하고 캠핑장으로 와서 텐트를 쳤다.

젊어서 캠핑여행을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힘들다고 하지 않는데 숙소가 없는 이런 곳은 어쩔 수가 없다.

좀 고생스럽기는 해도 캠핑이 아니면 이런 기막힌 광경은 보기가 힘들다. 자리를 잡고 혼자 온 이웃에게 인사를 하니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부르라..'라고 한다.


간단히 저녁을 해 먹고 기다렸다가 하늘을 본다.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지가 언제였지?

몇 년 전 데스벨리에서 보고 이번이 두 번째 인 것 같다.

은하수가 강처럼 흐르고 온갖 별자리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상에....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구나.

유성도 흐른다.


우리 옆자리 아저씨는 여길 오기 위해 오클라호마에서 일 년에 한 번씩 22시간을 운전해 와서 일주일간 머물다 간다고 했다.

아침에 군 모닝! 하더니 자기는 밤새 별자리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고 한다.

나도 별을 보느라 잠을 설쳤다고 하니

"새벽에 오리온을 보았니?" 했다.

"4시에 봤지요"하니 반가워한다. 좋아하는 것이 같으면 쉽게 친해진다.


편의 시설은 없지만 깊고 깨끗한 푸세식 화장실과 피크닉 테이블, 불 피우는 곳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아까 만난 레인저의 성실함이 느껴졌다.

캠프 사이트는 9개, 봄가을이면 꽉 찰 때도 있지만 지난주와 이번 주는 보통 두세 자리만 사람이 들었다고 했다.

해가 뜬다.

Toroweap Overlook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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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자마자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려 좀 어두웠지만 세월이 만든 거대한 조각품은 정신이 아득할 만큼 아름다웠다.


보통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사우스림에서 한참 서쪽으로 흘러 내려온 콜로라도강이 절벽 아래로 흘러간다.

절벽은 3000피트(880m) 높이의 수직이다.


IMG_0232.JPG 발로 툭 차면 떨어질 것 같은 바위


아무 안전장치도 없고 바위 위를 걸어 다니며 내려다보는데 벼랑에 겨우 붙어있는, 내 무게에 굴러 떨어 질지도 모르게 생긴 바위를 보니 아찔하다. 그랜드캐년의 사우스림과 노스 림보다 웅장함은 적지만 가까이에서

그 많은 세월을 느낄 수가 있어 좋았고 무엇 보다도 아무도 없어 이날 하루는 이게 다 내 것 인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이 바위 끝에 서서 내려다보면 콜로라도강이 내 발아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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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pinon pine)를 만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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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의 국립공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며 제일 먼저 산 책이 1999년 발행된 'America's Spectacular National Parks'이라는 책이다. 국립공원을 찾아갈 때면 교과서처럼 꼭 들고 다니던 책이다. 글은 수전 버크 외 5인이 쓰고 사진은 탐 빈 외 일곱 사람이 찍었다. 그 책 51페이지에 있는 사진이 바로 이 자리에서 찍은 것인데 그 사진에도 저 작은 소나무가 있다. 그동안 조금도 자라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반갑다 소나무야.


1.8 Billion 년이면 얼만큼일지 나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데 그 햇수 동안 강물이 흘러내리며 붉은 바위에 만들어 놓은 조각을 넋을 잃고 보고 또 보고 하다가 발길을 돌려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오클라호마에서 온 남자는 책을 읽고 앉아있다. 피크닉 테이블 위에 온갖 캔종류 음식들이 있다. 그것으로 일주일을 버틸모양이다. 여기 오려면 먹고 마실 것,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와서 쓰레기 한점 남기지 않고 가지고 나가야 한다.

이 국립공원을 지키는 레인저도 아침에 바이크를 타고 와서 둘러보고 갔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이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서기가 아까웠다. 어딜 가도 좀 아쉬우면 "다시 오지 뭐.." 하는데 여긴 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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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나가는 길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야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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