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팬텀랜치
그랜드캐년 맨 아래 있는 팬텀랜치 숙소를 신청했는데 당첨이 되었다. 원하는 사람은 많고 방 개수는 적어 15개월 전에 신청하고 한 달 동안 신청자를 모아 월말에 뽑기를 하는 곳이다.
받아논 날은 빨리 온다고했다. 15개월이 지나갔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기다렸는데 날씨가 험하다.. 전날 밤 그랜드캐년 빌리지에서 자고 아침 8시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 헤드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일기예보에 10센티미터 정도의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의외로 내려가는 사람이 많아 버스가 가득 찼다. 서로 어디서 왔느냐, 어디서 머물 것이냐 이야기를 나누며 트레일 헤드에 도착했다. 캠핑을 할 사람들이 제일 많고 절반만 갔다 오겠다는 사람도 있고 당일로 갔다 오겠다는 사람도 있다. 국립공원에서는 당일로 다녀오는 것을 시도하지 말라고 한다. 특별한 체력을 가진 사람 아니면 무리다.
눈발이 날렸다. 내려가야 할 길을 보니 구름이 가득하다.
콜로라도강까지 10.1킬로, 팬텀랜치까지 11.4킬로, 트레일 헤드 고도 2212미터, 콜로라도 강 고도 731미터.
1500미터 아래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 카이밥 트레일은 경사가 급하고 물이 없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일로 갔다 오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 종일 내려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올라 올 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했다.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은 능선을 따라 길이 만들어져 경사가 급한 대신 경치가 좋다.
눈이 내리다 구름이 몰려오기를 몇 차례. 내려가는 길이라서 좀 쉬울 줄 알았는데 길이 젖어있어 미끄러지기도 하고 발이 빠지기도 했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길을 비켜주고 나는 내 속도를 지켰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내려간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기특했다.
가야 할 길이다.
아직도 구름은 내 발아래 머문다. 바로 앞에 보이던 봉우리가 사라졌다가. 잠시 후 나타난다.
전 날밤을 팬텀랜치에서 보낸 노새(Mule) 팀이 올라간다. 절반쯤 온 것 같다. 경험자에게 들으니 노새 타고 갔다 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어떤 이는 걸어갔다 오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도 했다. 사람을 등에 태우고 가야 하는 노새는 얼마나 힘들까.
저들이 나타나면 모두 트레일 안쪽에 서서 다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팬텀 랜치에서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이 노새들이 등에 실어 나른다.
내가 먹을 저녁과 아침,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 등등...
아래에서 하루를 보내고 올라오는 사람이 환하게 웃는다. 아래쪽 트레일 사정은 어떤가고 물으니 계속 젖어있다고 한다. 내일 나도 저렇게 웃으며 올라갈 수 있을까?
여기는 "우 아 포인트"
거의 360도 경치에 우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콜로라도 강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멩이에 앉아 아침에 호텔에서 멸치볶음을 넣고 만들어 온 주먹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힘들 때일수록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우리 체질이다.
"Tip Off Point"
여기서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고 무릎에서 힘들다는 신호가 왔다.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 아니면 더한 사람이 종종 있나 보다. 응급 전화기가 있다. 그래도 응급전화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는 아니다. 잠시 앉아서 쉬고 신발끈 다시 매고 걸었다. 나보다 좀 나을 줄 믿었던 남편은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와서 절둑거리기시작했다. 지나가던 여자 등산객이 자기 배낭에서 에이스 밴드를 꺼내어 감아주었다.
카이밥 트레일 검은 다리가 보인다.
터널 위에서 산양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 졸린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혹시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콜로라도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건너가서 뒤 돌아본다. 1920년대 저 다리를 건설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할 말이 없다.
천년 전 인디언들이 살던 자리가 있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 1마일은 거의 평지인데 발걸음은 천근이다.
15개월 전 예약한 팬텀랜치 방에 도착했다.
캐빈도 몇 채 있는데 거긴 당첨이 안되어 이 층 침대가 다섯 개 있는 여자 Dorm에 들어갔다. 아랫 침대는 모두 먼저 온 이들이 차지했다.
11.5 킬로미터는 걸어 내려왔는데 2층 침대 올라가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심스레 서 있는 나를 보고 한 젊은 여행객이 아랫 침대를 양보해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사양하지 않고 고맙게 받아들였다.
식당으로 갔다. 문 앞에서 사람들이 기다린다. 음식을 다 차려놓은 후 문을 열어준다. 15개월 전 예약한 저녁식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메뉴는 스테이크와 감자 , 샐러드다. 노새 등에 실려 온 재료로 만들어 음식값은 좀 비싸지만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싱싱하고 맛있었다. 요리사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국립공원 레인저들이 돌아가며 6주일씩 근무한다고 했다. 이번 근무자가 음식 솜씨가 좋은가보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다리가 아파 Advil 두 알을 먹었다. 텍사스, 애리조나, 캐나다의 퀘벡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5시 숙소 직원이 조용히 문을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30분 후에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고 알려준다. 예전에는 종을 쳤는데 더 자도 될 사람들을 깨우는 것이 미안해서 그렇게 방법을 바꾸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는 두 번 차리는데 5시 반과 6시 반이다.
갈 길이 먼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일찍 준다. 우리 방에서는 세 명이 이른 아침을 먹기로 되어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해 작은 손전등을 켜고 조용히 준비한 후 식당을 향했다.
커피와 팬 케이크, 소시지와 베이컨 오렌지 주스.
평범한 아침 식사지만 노새 등에 실려온 재료로 만들어 귀한 음식이다. 남김없이 다 먹었다.
편지 배달 가방. 지금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우체부들이 이런 가방을 메고 편지를 배달했었다. 여기서는 누구든지 편지나 우편엽서를 써서 이 가방 안에 넣으면 다음날 노새가 등에 지고 올라가 부쳐준다. 팬텀랜치의 오래된 전통이다.
전 날 같이 내려온 사람도 있고 여기 내려와 며칠씩 머무는 사람도 있다.
달라스에서 온 사람, 테네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사람.. 다양하다. 연령 층도 다양했다.
내 능력을 생각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
올라가는 길은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이다.
15.4 km. 전 날 내려온 카이밥 트레일보다 경사는 완만하고 거리는 더 길다.
여기 내려오는 유일한 교통수단, 노새들도 올라가기 전에 쉬고 있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니?"
밤새 춥고 비가 내렸는데 캠핑을 한 사람도 많다.
이 팀 중에 한 사람이 전날 내려오며 갑자기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을 위해 에이스 밴드를 감아주었다. 아침에 붕대를 돌려주니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조심해서 천천히 올라가라고 한다.
브라이트 에인절 서스펜션 브리지.
콜로라도 강.
그랜드 캐년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강을 따라가던 트레일이 강에서 멀어지는 순간 돌아보니 강물이 아침 해를 받으며 잠시 황금빛으로 변했다.
한 걸음씩 가는 거다.
초반 절반 정도는 경사가 완만하고 트레일 상태도 카이밥 트레일보다 좋았다.
인디언 가든에서 내려오는 노새팀을 만났다. 절반쯤 왔다.
팬텀랜치에서 사온 사과와 초콜릿, 크래커로 요기를 하고 물병에 물을 채웠다.
늘 위에서만 내려다보던 캐년을 올려다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캠핑장비를 등에 짊어지고 혼자 3박 4일 캠핑여행을 하는 70살 된 할머니를 만났다. 도처에 고수들이다.
다시 올라간다. 위를 올려다보면 그 높이에 겁이 났지만, 돌아보면 내가 올라온 길이 저 아래로 보인다. 꽤 많이 왔네.
3마일 휴식소 근처에서 부터 눈 발이 날렸다.
1.5마일 남겨 놓고 경사는 급해지고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힘이 들어도 앉아서 쉴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여기 오면 거의 다 온 거다.
위에서부터 두 번째 동굴을 지나. 마지막 코너를 돌았다.
일 년 전 예약해 두었던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캐빈에 들었다.
저 의자가 얼마나 편한지 내가 해 내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창 밖을 내다보니 지는 해가 잠시 나와 정말로 정말로 그랜드 한 캐년을 비춘다.
신비한 저곳 ,
5번을 왔어도 위에서 멀리 내려다보았던 그랜드캐년을 내려갔다 왔다는 일이 내겐 너무나 크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수고했어.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