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질경이 Aug 09. 2020

다시 가고 싶은 그 길

토로윕 가는 길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 앞에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결정된다. 목적지를 정해 놓고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해서 가는 수도 있고 경치 좋은 길이나 복잡하지 않은 길을 선택해 갈 수도 있다. 

 국립공원을 찾아 미 전국을 돌아다닐 때면 국립공원 관련 책자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책을 늘 함께 가지고 다녔다. 목적지 못지않게 가는 길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 교통부에서 지정한 150개의 아름다운 미국의 길이 있다. 내가 갈 목적지 근처에 해당되는 길이 있으면 좀 돌아가더라도 꼭 가게 된다. 때로는 돌아오기를 잘했다고 여길 못 보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만 낭비했다는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면 무수히 많은 길을 만난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은 패시픽 코스트 하이웨이에 처음 갔을 때는 차가 설 수 있는 곳마다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레건 주의 로그 움프콰 샛길은 울창한 숲 속으로 강을 따라가다 국유림 안에 있는 조용한 캠핑장에 들어가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유타의 12번 길은 애스펜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 가야 한다. 미국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 주는 66번 길도 있다. 

이름이 멋있어 기억되는 길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Top of the World)은 알래스카에 있다. 태양을 향해 가는 길(Going to the sun road)은 글레이시어 국립공원을 가로지른다. 하늘 속에 있는 섬(Island in the sky)은 캐년랜드 국립공원 안에 있다.

 그 모든 길 중 지금 내가 꼭 다시 가고 싶은 길이 있다. 7년 전에 갔던 길이다. 국가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길은 아니다. 

비가 오면 갈 수도 없는 황톳길, 61마일(98Km) 가는 데 세 시간 걸리는 길이다 세 시간을 가도 차 한데 만나기 힘든 한가한 길이다. 승용차나 밴은 가지도 말라는 길이다. 안내소에서 경고한다. 그 길을 가면 차 네 대 중 한대는 타이어에 구멍이 나고 견인 비용은 1000불에서 2000불 정도 든다고 알아서 가라고 한다. 그래서 더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길 끝에 절벽이 있었다.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보면 수직으로 900미터 아래 그랜드캐년을 지나온 황토 빛 콜로라도 강이 흐른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나무가 수명을 다하고 까맣게 서있다. 그 검은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해가 진다.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먼저 와 있던 이웃에게 인사했다. 오클라호마에서 3일을 혼자 운전해서 온 남자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와서 일주일을 머물다 간다고 했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하라고 한 후 밤에 꼭 하늘을 보라고 했다. 

그곳은 나무나 석탄, 어떤 종류의 불도 지펴서는 안 된다. 어두워진 후 일찍 잠을 청했다. 얼마를 잤는지 모르지만 밤하늘을 꼭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생각나 텐트를 열고 밖을 보았다. 수천 개의 별이 쏟아져 내렸다. 절대 정적과 절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이 모두 나를 위해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에 그 자리에 깨어 있었던 건 나뿐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그 황톳길을 따라가서 그 바위 위에 머물고 싶다. 쏟아지는 별들을 맞이하고 싶다. 어쩌면 일 년에 한 번은 꼭 온다는 착해 보이는 그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번에 만나면 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던 그때가 간절하게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악어와 새들의 공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