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질경이 Dec 05. 2020


땅이 하는 말

알래스카가 우리에게

그 해 우리 동네의 여름은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꽃도 살지 못하고 모기도 견디지 못했다. 토끼들과 다람쥐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에어컨의 바람을 견디는 것도 힘들어 도망가고 싶었다. 몇 년 전에 단체여행에서 잠시 맛보았던 알래스카가 내 눈 앞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크게 망설이지 않고 차에 캠핑장비를 싣고 서둘러 북쪽을 향했다.




캐나다 국경을 넘어 안내소에 가서 지도를 얻고 안내원과 가야 할 길을 상의해 37번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한참을 달려 마을과 사람이 안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조금씩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을 가도 두 시간을 가도 인가는 없고 내 앞으로 빨려 들어오는 길과 산과 호수만 보였다. 





키트왕가를 지나며 구멍가게 같은 주유소를 보았다.

다음 주유소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주유소를 만날 때마다 차에 기름을 꼭 채우라는 안내소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기름을 채우고 다시 달렸다. 표시판도 인가도 없는 길을 달리다 어느 순간 프린스 루퍼트 가는 길이라는 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이름이다. 휴대전화도  GPS도 안 되는 곳을 지도 한 장 들여다보며 가야 하기에 내가 지나가야 할 마을 이름 몇 개는 외우고 있었는데 그 이름은 생소했다.  마을이던 간판이건 무언가 다시 나올 때까지 달렸다.

분명 알래스카로 가는 37번 길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지나쳤나 보다. 차를 돌렸다.

다시 돌아가 조심스레 찾아보니 주유소 간판 바로 뒤에 37번 길 표시가 있었다. 내 눈에는 당장 필요한 주유소 간판만 보였던 거다.  


넓은 벌판에는 유채꽃이 끝도 없이 피어있었다. 가까이 가면 비릿한 냄새가 났다. 꽃이 지고 거기서 열매가 익으면 유채꽃은 사람들에게 향긋한 카놀라기름을 내어 줄 것이다. 

 37번 길은 한가했다. 알래스카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흔적은 줄어들었다. 아름답고 넓은 땅, 그러나 겨울이 길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대 자연만이 그 땅을 지키고 있다. 자동차의 시동만 끄면 완벽한 정적이 나를 감쌌다.





 길가에서 열심히 열매를 따 먹고 있는 곰을 만났다. 긴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곰들은 짧은 여름 동안 열심히 먹는다.  차 문을 내리고 한참을 보고 있었지만 낯선 침입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먹는 일에 열중했다.   




들소 떼를 만났다. 수놈들은 암놈을 차지하려는 것인지 제 가족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머리를 부딪히며 싸우고 있었다. 이 둘의 머리 부딪치는 소리가 바위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초 여름, 눈이 녹자마자 알을 낳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모기 떼는 꽃을 보기 위해 물가로 간 나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모기 같은 미물도  짧은 여름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알을 낳으려고 흘러내리는 강을 거슬러 오르던 연어들의 몸부림도 눈물겨웠다.  

드넓은 연못을 가득 채운 노란 연꽃들, 


눈 녹은 물을 먹고 피어난 보라색 루 파인은 얕은 산 하나를 가득 덮었다. 



땅에 쪼그리고 앉아야 눈에 들어오는 데날리 국립공원의 작은 꽃들,  이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먼지가 없는 세상에서 피어난 그 꽃들은 내가 전에 본 어느 꽃들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아기를 데리고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는 무스


 2만 년 전에는 완전히 빙하로 덮여 있던 알래스카의 동토에 약 만 삼천 년 전부터 서쪽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가는데 꼭 필요한 것만 자연에서 얻으며 살았다. 150년부터 돈을 벌려고 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수달의 가죽을 벗기러, 금을 캐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면역력 없는 원주민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석유가 발견되고 기름을 나르던 배가 좌초해 자연을 파괴했다. 그래도 자연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했다.


 산 위에 남아있는 오래된 빙하는 더 이상 녹아내리고 싶지 않은 듯 산꼭대기를 부둥켜 안고 버틴다. 빙하 아래로 가까이 걸어가서 들여다보니 빙하 아래는 텅 비어있었다. 더워지는 땅의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린 물은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며 그 속은 텅 빈 동굴처럼 보였다. 과학자들은 우리 인간들 때문에 머지않아 빙하가 다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 알래스카가 속으로 앓고 있다는 것을 데날리(Denali) 국립공원의 안내소에서 보여준 영상으로 알게 되었다. 지난 20년간 알래스카의 평균온도가 4도 올라가며 순록이 좋아하던 키 작은 나무가 있던 자리에 말코 손바닥 사슴(Moose)이 좋아하는 키 큰 전나무로 채워지며 생태계에도 변화가 왔다. 빙하는 점점 사라지고 영구히 얼어 있을 것 같은 땅이 녹아 지반이 흔들린다고 한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흰곰들이 먹이를 찾아다니지 못해 생존이 위태롭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빙하가 다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몇 년 전에 찍은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더위를 피해 찾아간 알래스카에서 나는 짧은 여름 동안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열심히 움직이던 아름다운 생명들을 만났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는 우리들에게 자연은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If you Listen to the land, You will know what to do) "라고 소리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노란 사막의 제왕 '사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