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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좋지만 야생화가 더 좋은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Mount Rainier)

by 질경이





가장 더운 8월인데 아직도 산 위에 눈이 남아있다. 오전에 도착해서 파라다이스 비지터센터로 갔다. 다행히, 아주 운이 좋게도 쿠가 록 캠핑장에 자리가 하나 남아 있어 텐트를 쳐 놓고 트레일을 시작했다. 파라다이스에 가니 차를 세울 곳이 없어 다른 곳부터 보기로 했다.


2006년 6월 Mt Rainier


2006 6월 Reflection Lake


눈 덮인 산은 보기만 해도 땀이 식는다.

눈 녹아 흐르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

예쁘고 선명한 야생화들.


9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1883년 영국 해군이 와서 산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 산에 자기 친구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레이니어'다

1883년 개발이 시작되었다. 호텔과 스파가 생기고 사업가, 철도회사, 등산가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몰려왔다.

그리고 국립공원의 아버지 '존 뮈어'가 왔다. 1899년 미국의 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눈 덮인 레이니어 산을 거꾸로 들여앉힌 리플렉션 호수

하나하나 보아가며 공원 안을 한나절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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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 폭포를 보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장작을 피워놓고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을 바라보며 두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전 날 복잡해서 가지 않았던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주차장이 한가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20170821_070504.jpg -내가 다녀본 산속의 정원 중 가장 화려하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존 뮈어-

이 자리에 골프장과 스파가 있다면 모두가 아닌 일부의 사람들만 즐겼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나 와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얼마를 가야 한다는 계획도 없이 갈 수 있는 만큼만 가기로 했다.

국립공원 레인저를 만났다. 오른쪽 높은 산은 마운트 헬렌, 왼쪽은 마운트 애담스. 산봉우리 하나하나 가르치며 설명해 준다.

꽃을 뜯어먹던 두더지가 쳐다본다.

꽤 많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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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간 간식을 먹다 실수로 땅콩 한알을 떨어뜨렸다.

주울 틈도 없이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 냉큼 집어 들었다.

땅콩 반쪽을 맛있게도 먹는다.


이 날은 일식이 있는 날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남쪽으로 가면 100% 일식이라는데 여기서는 90%라고 했다.

며칠 전부터 일식 보는 안경을 사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다 팔리고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우리가 먹던 한국산 과자를 권했더니 아주 맛있다고 좋아했다. 이야기 중 안경을 사지 못했다고 하자 자기네는 두 개가 있다며 하나를 주고 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다.

맨눈으로는 바라볼 수도 없는데 그 안경을 끼니 작아지는 해가 그대로 보였다. 참 신기하다. 해가 점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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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일식 지역이라서 아직 조금 남아있는 해가 그믐달처럼 보였다.

세상이 회색으로 변하고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지만 마운트 레이니어 정상은 해발 4392미터이다.

거기까진 갈 수 없었다. 그레이시어 뷰 트레일로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갔다.

충분히 좋았다.


Paradise서 시작하는 Alta Vista Trail에서 산을 등지고 본 풍경

여기는 Meadow에 꽃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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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꽃들이 산 중턱을 덮고있다.


빛깔이 다른 "그림 붓(Paint Brush)" 꽃도 있었다. 여러 곳에서 이 꽃을 보았지만 이런 빛깔은 처음 본다.

흔하디 흔한 쑥부쟁이도 여기서 보니 더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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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가깝게 보려고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힘들었다.

더 올라가기 힘든 곳까지 가니 눈 녹아 흐르는 폭포가 가깝게 보였다.



8년 전에 왔을 때 내가 힘들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을 본 한 노인이 나에게 어디까지 갔다 오느냐며 자기도 그만큼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나도 조금만 더 젊었다면 해 보고 싶은 것이 더 있는데 그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에 가렸던 해가 나오고 세상은 다시 환하게 빛났다. 젊은 이들은 나 보다 훨씬 더 올라간다. 나는 여기서 돌아선다.

이번이 세 번째다.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은 맑은 하늘과 야생화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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