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남쪽 입구로 들어가서 요세미티 벨리 쪽으로 4마일만 가면 오른쪽에 고풍스럽고 예쁜 호텔이 나온다. 빅 트리 랏지다. 예전에는 와워나 호텔이었다.
내가 고풍스럽다 함은 유럽에 있는 호텔과 비교하는 게 아니고 미국의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1855년 클라크(Clark)라는 개척자가 금을 찾아 이곳에 와서 일을 하다 폐가 나빠지는 바람에 금 찾는 일은 그만두고 여기다 집을 짓고 작은 규모의 숙박업을 하며 가족들과 살았다.
요세미티라는 곳에 절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이고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도 전이었다.
동쪽에서 온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을 내 쫒고 숲을 베어 목재소를 만들었다.
1864년 링컨은 남북전쟁의 와중에 이 소식을 듣고 이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1868년 존 뮤어가 처음 요세미티를 찾았을 때 그도 이 집에 머물렀다.
클락이 열심히 운영했지만 호텔은 언제나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았다. 1874년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면서 더 크게 지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 후 클락은 요세미티 보호운동을 하며 96세까지 살았다.
2017년 6월 1일 나도 하룻밤 머물렀다.
얼마 전까지 와워나(Wawona)호텔이었는데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의 호텔 운영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이름이 Big Tree Lodge로 바뀌었다.
와워나는 큰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체크인하는데 차 안에 음식이 있어 곰의 공격을 받게 되면 50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며 겁을 주어
차 안에 있는 아이스 박스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평소에 캠핑을 주로 하기 때문에 차 안에는 언제나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닌다.
무거운데.. 했더니 포터를 불러 준다.
팁 5불 나갔다.
여러 개의 작은 건물이 있다.
이 방들 중에 50개만 목욕탕이 달려 있고 나머지는 공동 목욕탕을 써야 한다.
값이 50불 정도 차이 나지만 내가 좀 수줍음을 타는 편이라서 목욕탕이 있는 방으로 예약했더니 이 건물이 아니고..
이 건물도 아니고
이 작은 집안에 있는 방을 하나 준다.
1920년 이 근처에서 경비행기 사고로 죽은 사람이 이 건물 중 하나에서 아직도 가끔 나타난다는 썰(?)이 있는데....
혹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방은 아주 옛날 식으로 꾸며져 있다.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인터넷도 물론 안 된다.
저녁을 먹으러 메인 빌딩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베란다에 빈자리가 있어 자리를 잡았다.
호텔 앞에 작은 분수가 물을 뿜어낸다.
이 호텔에 온 것을 기념하려고 분수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음식이 나왔다.
종업원들은 친절하고
와인 선택을 도와주는 멋진 여자도 있다.
대단히 호강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캠핑 음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분 좋게 잘 먹었다. 가끔은 좀 호강을 할 필요가 있다.
저녁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길 건너 골프장 옆으로 난 산책길을 걸었다.
귀신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