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정확히는 기자가 된 스물일곱 때부터 낮술은 이유 없이 마시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금요일은 기본이고, 시시때때로 낮술은 안 도는 게 되레 이상했고 자연스러웠다.
‘낮술 메커니즘’은 안팎이 따로 없었다. 밖에 취재원이 있다면, 안에는 데스크(부장)가 있었다. 유독 낮술을 즐기는 데스크를 만나면 영문도 모르고 낮술을 마셨다.
낮술은 생각보다 징하고 독하다. 습관이 되면 괜스레 낮술부터 찾는다. 중독인지 모르고 중독이 되는 것이다. 낮술이 이 지경이니 밤술은 어땠을까.
기자사회 밤술은 월화수목금금금이 다반사다. 밤술자리가 없다는 건 일이 없다는 거고, 무능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낮술을 먹고 기사를 마감한 뒤 다시 밤술자리를 뛰는 게 기자들의 일상사였다.
내 기억으로 나는 마흔둘~셋까지 낮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구, 서울 등지로 외출을 할 때면 꼭 반주를 곁들이거나 낮술을 했다. 낮술이 불가피하면 밤술은 꼭 챙겨먹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낮술과 밤술은 20년 가까이 지속됐다.
내 경우 밤술이냐 낮술이냐 할 때 선호는 밤술보다는 낮술이다. 마찬가지로 술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서른여덟~아홉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낮술보다는 밤술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낮술은 1차로 그치지만, 밤술은 1차에 그치지 않고 대개 2~3차로 내달리기 일쑤다.
서른여덟~아홉부터는 외출해도 밤술을 부러 하지 않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리 밤술을 자제했지만, 낮술은 마흔넷까지 주구장창 마셨다. 나는 상대가 낮술을 하지 않아도, 안주가 좋으면 나 홀로 낮술을 챙겨 마셨다. 그만큼 나는 애주가요, 낭만파에 속했다.
술을 끊겠다고 생각한 건 올해 5월이었다. 그길로 3개월을 한 방울도 안 마셨다. 2개월 금주하자 피부색이 달라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장인과 함께하는 술을 마다하기 힘들어 한잔하곤 금주빗장을 풀었다. 3개월 쉬었다 마시니 술맛은 꿀맛보다도 달콤했다.
최근 한두 달 술을 즐겼다. 간헐적 단식처럼 다시 ‘간헐적 금주’를 오늘(10월 10일)부터 시작하려 했다. 지난번에 3개월 쉬었으니 이번에는 6개월 쉬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때 별안간 소주를 한잔했다. 큰아들 라온이와 초밥집을 갔는데, 소주를 한잔해야겠다 싶었다. 초밥집을 가기 직전 라온이가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그리 10분 거리의 초밥집까지 각자 두발자전거를 타고 갔다.
라온이에게 소주를 한잔 따르라 한 뒤 말했다.
“아빠는 라온이를 축하하고, 라온이는 아빠한테 감사하고. 라온아 오늘을 기억해라. 두발자전거를 성공한 날, 오늘은 필히 일기를 써라. 두발자전거를 성공한 느낌과 기억은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거다. 아빠도 너 태권도장 가고 나면 글을 쓰련다.”
이어 말했다.
“라온이가 최근 혼자서 샤워한 것, 혼자서 등교한 것, 하교한 것,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온 것, 전동휠보드를 자유자재로 탄 것. 이 모든 것이 네 인생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란다. 이 역사를 그때그때 기록해 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싹 사라지고 만단다. 그러니 오늘은 반드시 일기를 써라.”
라온이는 그러겠다고, 일기를 쓰겠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소주 한 병을 다 비웠을 텐데, 반병만 마셨다. 낮술은 마셔야 할 이유가 분명할 때만, 아주아주 특별한 날에만 마시면 좋겠다. 그것도 2~3잔 정도.
이 소리는 심보통이 철드는 소리다. 가을 들판의 누런 벼처럼 익어가는 소리다.
/심보통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