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다는 것

by 심지훈

철든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생각이 짙어지는 것이다. 사려(思慮) 깊어지는 것이다. 결국 철은 살면서, 살아가면서, 살아내면서 터득해야 드는 것이다. 고로 철은 삶이고 앎의 결정체다.

철든다는 것은 示(시)에서 視(시)로 나아가는 것이다. 눈 뜨면 절로 보이는 걸 보는 유치한 아이 수준에서 의식적으로 보고 싶어서 보는 어린 어른의 수준으로 나가는 것이다. 또 철든다는 것은 視(시)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觀(관)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충분히 찬찬히 보는 상태가 觀이다. 이 상태를 불교에서는 “관한다”고 한다. 불교의 “관한다”는 세속의 “관찰(觀察)”과 같은 말이다.

제대로 철이 들려면 인생의 변곡점마다 인생이 휙휙 뒤집어져야 한다. 인생의 전기가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실패, 좌절, 낙오는 사려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인간은 힘듦과 고통을 통해서만이 철이 든다. 눈물 젖은 빵을 먹은 뒤에야 삶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배는 젊어서 많이, 자주 마시는 게 좋다. 그래야 각자(覺者‧깨친자)가 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철이 드는 것은 아니다. 아주 큰 고통, 큰 아픔을 겪는대도 철이 안 드는 자들이 있다. 뇌 구조가 틀려먹은 자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 이들에게 고통과 아픔은 계도가 못되고 사악을 부추긴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이웃에게 곱절로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기쁨을 만끽한다. 인간사에서 진리의 절대법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다. 그저 법이 있고, 사실이 있고, 진실이 있고, 정의가 있고, 또 인간이 있을 뿐이다.

철이 든다는 건 示(시)의 단계에서 보고 익힌 것들을 철저히 의심하는 것이다. 초중고, 대학 때 그리고 사회초년병 때 보고 익힌 것들을 찬찬히 면밀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그치지 않으면, 단언컨대 옳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살아온 대로 살면 겨우 세속적인(대중적인) 인간이 될 뿐이다.

뇌 구조가 정상인 인간은 대개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이면 회고(回顧)라는 ‘인생 정제’ 작업을 거친다. 지나간 일을, 크고 작은 과거사를 되돌아봄은 그저 떠올리는 게 아니다. 그때 그 일이 틀렸음을,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인지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두 번 실수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것이다.

인생 여로의 어느 길목에서 신실하게 회고를 마친 인간은 그때부터 주도적인 삶을 산다. 주변 환경에 좌고우면하던 인간에서 자기 위치와 내면의 힘에 따라 자기 생을 일구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獨立)적일 때, 시간 장소 때 불문하고 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서든 자기 주체성을 드러내고 자유자재로 행동함)의 스탠스를 유지할 때 비로소 옳음과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 회고를 제대로 끝낸 자만이 그런 자격을 갖는다.

범부(凡夫)는 어떤 자인가 했을 때, 범부는 각성(覺醒) 없이 사는 자다. 각성을 하고도 모른 체 살아가는 자다. 철이 든 이는 철인(哲人)이거나 그에 가까운 삶을 영위한다.

끈적한 진의 삶을 살아 뻑뻑한 인의 앎이 되면, 인간은 그 누구라도 철학자가 된다. 세상 아래 악한 철학자는 없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순한 인간이 된다는 거고, 순수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되 아이의 고운 심성을 회복한 인간을 일러 철이 들었다는 것이다.
/심보통 2025.10.13

*고운 심성의 우리 라온이가 지난 10일 두발자전거를 성공하고, 약속대로 일기를 썼다. 리드문이 좋다. 마지막 문장은 더 좋다. 라온이의 글에는 삶의 기본 태도가 잘 녹아 있다. 공부든, 기술이든 익히고 배우는 것은 몸에 배야 능히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몸에 뱄다는 것은 원리를 터득했다는 뜻이다. 아래 ‘아홉 철학자’ 라온이 일기를 소개한다.

▪제목: 두발자전거(25.10.10)
네발 바퀴에서 보조바퀴를 뗐다. 2발 자전거를 도전했는데, 처음엔 언금언금(엉금엉금)거렸는데, 30초 만에 성공했다. 한발은 페달을 밟고 한발은 쭉 밀면서 다리를 페달에 밟(얹)고 페달을 빨리 굴린다. 페달을 천천히 굴리면 넘어질 수 있다. 두발(자전거)을 빨리 타서 너무 신기했다. 아빠랑 같이 타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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