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곡식, 과일만 철드는 게 아니라 우리 라온이도 철드는 계절인가 보다. 철든다는 건 어찌 되었든 정신적, 육체적으로 늙는다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철든다는 건 인간에 있어 크로노스를 버리고 카이로스를 주워 담고 챙기는 것이다. 크로노스는 그냥 무료하게 흘러가는 시간인 반면, 카이로스는 옹골진 주체적인 시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이 두 시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운영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인간의 운명이다.
갓난아기는 먹고 자고 싸면서 크로노스를 만끽한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카이로스를 통해 카이로스를 경험한다. 아기가 자라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아직 카이로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반증은 이 질문에 담겨 있다.
“엄마(아빠), 나 이제 뭐해?”
아이들은 항시 하나의 활동 끝에 으레 이 질문을 던진다. 심리학과 아동발달학에서는 이 질문을 ‘불안’으로 푼다. 이 불안의 근원은 엄마(아빠)에게 묻지 않고 행동하면 혼날 수 있다는 엄마(아빠)에 대한 확고한 신뢰 단계 전의 심리 상태에 있다.
부모는 늘상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은 쉬이 배어들지 않는다. 상상 이상으로 주어야 겨우 아이 마음에 들어앉는 게 사랑이란 걸 부모만 모른다.
그러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으로 접근하면, 아이의 “엄마(아빠), 나 이제 뭐해?”란 질문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라면 대개 살아온 시간의 반 정도에 이르렀을 때 겨우 카이로스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50년은 인생의 최소 수련 기간이다. 그전까지는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며 부모에게 의지한다. 물론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모 그늘에서, 벼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이가 크로노스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는 신호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시작될 때다.
“라온아, 오늘은 태권도 몇 시간 할 거야?”
“응.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이제 엄마(아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챙길 수 있다는 의지와 확신의 표현이다. 동시에 아이가 엄마(아빠)를 철석같이 믿는다는 신뢰의 표현이다. 그전까지 아이는 “엄마(아빠) 나 오늘 태권도 1시간 해도 돼?” 혹은 “엄마(아빠) 나 오늘 태권도 2시간 해도 돼?” 혹은 “엄마(아빠) 나 오늘 태권도 몇 시간 해?”라고 허락을 구한다. 아이 입장에서 엄마(아빠)가 아직은 시원찮다는 말이다.
아홉 우리 라온이의 경우, 지난주 금요일 생애 최초로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답이 감미로운 리듬을 타고 흘러나왔다.
“오늘은 태권도 몇 시간 할 거야?”
“응. 내가 알아서 할게.”
라온이가 크로노스의 틀을 깨고 드디어 카이로스의 틀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 카이로스의 틀을 잡은 것이라곤 유튜브 보는 시간뿐이었다. 유튜브는 엄마(아빠)가 보라 마라 하기 전에 스스로 잘 봤다.
한 번 틀을 깨면 두 번 깨기는 쉽다. 마찬가지로 한 번 틀을 잡으면 두 번 틀을 잡기도 쉽다. 운명도 운동의 일종이란 점에서 관성을 갖기 마련이다.
라온이는 태권도 시간 조절에 이어 자전거 교체시기도 스스로 정했다. 18인치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 타기를 30초 만에 성공한 뒤, 라온이는 큰 두발자전거를 원했다. 작은 자전거를 더 크면 못 탄다고 열심히 타라며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내년 봄 사주겠다 했는데, 시시했던 것이다.
20인치를 사줄까 하다가 라온이 키를 감안하면 22인치가 맞겠다 싶었지만, 24인치를 사줬다. 아이들은 금방 크고 두발 타기 원리를 익힌 이상 자전거 크기는 대수롭지 않았다.
새 자전거를 사주자 라온이는 용기백배해 아빠 설명도 전에 홀연 멀어져 갔다.
18인치 두발 타기 성공과 24인치 새 자전거 사이 라온이에게는 카이로스의 매력을 느낄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 바로 전동휠 호버보드를 자유자재로 탈 수 있게 된 거였다.
전동휠은 두발로 라온이가 타기에 적격인 사이즈였다. 처음에는 서툴러 휘청거리고 넘어지고 처박혔지만 전동휠의 원리를 터득하고선 내리막도 오르막도 턱이 있는 곳도 안정적으로 잘 다니게 됐다.
전동휠을 타고 등교도 하고 하교도 했다. 편의점도 다녔고, 태권도장도 오갔다. 전동휠은 보기에는 아이에게 위험천만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타보면 자전거보다도 안전하다는 걸 알고 놀라게 된다. 센서로 작동해 내리막이든 오르막이든 신체를 수직으로 편안히 세워주면 알아서 간다.
전동휠 몸통에선 푸른 두 눈이 번쩍대고, 바퀴에서도 푸른불이 번쩍번쩍한다. 로봇을 운전하는 것 같아 쾌감이 남다르다.
아홉 라온이가 전동휠을 타고 가면 신기해서 사람들이 쳐다본다. 어르신들은 십중팔구 한마디씩 보탠다.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우와, 무섭지 않니?” “위험하지 않아?”
라온이에게 말한다.
“라온아, 아빠가 그랬지. 뭐든 직접 해보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사람들 보기에는 전동휠이 위험해 보여도 작동원리를 아니까 자전거보다 훨씬 안전하지?”
“응.”
아홉 라온이의 이동수단은 모두 넷이다. 자전거, 전동휠, 킥보드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 이 이동수단을 선택하고 운영하는 것은 온전히 라온이의 몫이다. 라온이의 카이로스는 확실히 가치가 있다. 가치가 없다면 하긴 크로노스에 불과하리. 라온이의 카이로스를 응원한다.
/심보통 2025.10.19.
▪두발자전거 타기의 잘못된 관념
우리는 대개 두발자전거를 잘못 배웠다.
요즘 두발자전거를 새로 배우는 아이들을 공원에서, 광장에서 곧잘 만난다. 어른이 뒤에서 안장을 잡고 아이가 비틀대며 나아간다. 몸무게가 작은 아이라면 수월할 수도 있지만, 몸무게가 많은 아이라면 붙잡는 어른도, 타는 아이도 다칠 위험이 크다. 라온이가 두발을 30초 만에 뗀 이유는 이 같은 이상한 자전거 타기 방법이 아니었다.
라온이가 두발 타기를 시도할 때, 첫 순서는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발이 땅에 편히 닿을 수 있도록 안장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자전거를 밀고 다리를 들어 균형을 잡은 채 나아가도록 했다. 누군가 잡아 줄 필요도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균형을 잡았다면 그다음은 페달을 밟는 일이다. 페달을 밟으면 뉴턴의 운동법칙(관성, 가속도, 작용-반작용)에 따라 자전거는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그리 속도와 안정을 몸소 확신했다면, 페달을 밟았을 때 다리가 쭉 펴질 정도로 안장을 다시 높여준다. 그리 타도록 하면 아이들은 자율주행처럼 잘 달린다. 자전거나 전동휠이나 처음엔 누구나 넘어질 것 같은 불안 심리를 갖기 마련이다. 그 불안심리를 일거에 제거해주는 비법은 작동원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와 아이 모두 비틀대며 자전거를 가르칠 까닭도, 배울 까닭도 없다.
자전거 두발 타기는 30초면 족하다. 잡아주어 비틀대며 배우는 두발 타기는 잘못된 관념의 소산이다. 그 관념은 무지에 기반한다. 개명한 21세기 우리네 광장과 공원엔 역적 무지가 종횡으로 비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