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대하여

by 심지훈

요즘 나는 새싹 같은 두 아들을 보면서 누구 아닌 내 늙음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본다. 여기 늙음에 관한 세 가지 단상이 있다. 의사 함익병의 말, 철학자 안병욱 선생의 말 그리고 황절삼(가을에 캔 산삼)이다.


의사 함익병 씨는 유튜브에서 자신은 “45세부터 노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함 씨는 “몇 세부터 노년이라고 생각하느냐”할 때 “20~25세면 노년이 시작된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그에 따르면 20~25세면 성장(Growth and Development)이 멈추고, 그때부터 에이징(Aging)이 시작된다. 에이징은 우리말로 노화다.


그가 덧붙이는 말. “노화가 진행이 돼서 어느 시점부터 노인이라고 선을 긋는 것인데 그것은 천차만별이다.”


함 씨는 자신은 “45세에 노안을 명백히 느꼈다”며 “우리 신체에서 노화가 가장 빨리 나타나는 게 눈”이라고 했다. 이어 “예민한 사람은 노안이 시작되면서 자신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빨리 느낀다”며 “노안이 온 후에는 하나만 하지 둘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거기에 맞게 모든 일을 줄였다고 했다.


인간의 늙음은 20~25세부터 진행되고 45세를 전후해 노안이 오고 그 뒤로는 활동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옛사람들이 변변한 과학도 기술도 없이 오로지 경험칙에 기반해 한세대를 30년으로 규정한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한편으론 참으로 자연스러운 이치란 생각이 든다.


철학자 안병욱 선생은 에세이집 <때를 알아라>에서 시를 읊어주듯 이렇게 읊조린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열매를 거둘 때가 있다.

일할 때가 있고, 놀 때가 있다.

외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다.

기억력이 왕성하고 지식욕이 뛰어날 때

공부를 해야 한다.

나이 70이 되어 시력도 약해지고 의욕도 고갈됐을 때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왜냐,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때를 알아라.

그렇다. 때가 없는 세상일은 하나도 없다. 다만 젊어서는 잘 모르고 덜 중히 여기기 때문에 특별한 때가 없다고 볼 뿐이다. 사람은 대개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야 이 때의 중함을 깨닫곤 한다. 그러나 이때는 뭘 하기가 늦는다. 참말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기회는 아무나 잡을 수 없다. 반드시 준비가 돼 있어야 잡고 누릴 수 있다. 안병욱 선생이 말한 의욕이 바닥나는 70까지 내게는 15년의 시간이 아직 있다.


황절삼. 가을에 캔 산삼을 말한다. 산삼은 황절삼을 그중 높게 친다. 잎이 누렇게 물들고 영양분이 뿌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산삼을 공부해 보면 생명의 신비와 오묘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산삼을 보면 바로 연상되는 게 산신령이다. 산삼을 보고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산신령을 떠올리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문화DNA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한국인이라면 산삼을 보면 산신령을 떠올리게 돼 있다. 하나 같은 산신령이로되 생김이 같은 산신령은 없다. 저마다 생김이 다르다. 그게 또 감상거리다.


천종삼, 지종삼, 씨장뇌(산양삼), 장뇌삼은 그 생김이 노화의 정도처럼 천차만별이다. 씨냐 밭이냐를 따질 때 결국 밭이 좋아야 한다는 걸 산삼을 보면 능히 알 수 있다. 태생적 바탕은 그 생명의 전반을 결정짓는다.


산삼은 사람을 꼭 닮았다. 산삼의 뇌두로부터 여러 갈래로 쭉 뻗어 내려간 허연 뿌리는 몸통을 몸으로, 줄기와 잎을 머리로, 뻗은 뿌리를 팔과 다리와 수염으로 보면 형태학적으로 인간이다.


한의학에서는 동기상구(同氣相求) 이류보류(以類補類)의 원리를 중히 다루는데,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고, 다른 기운으로 내 기운을 보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돼지 간을 먹으면 사람 간의 기운이 회복된다는 원리다.


그렇다면 무려 사람을 빼닮은 산삼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어가는 사람도 벌떡 일으키는 게 산삼이라 했다. 실제 그런가.


산삼은 팔팔한 사람이 먹으면 효과가 없다. 산삼뿐 아니라 보양식, 건강식, 각종 비타민은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효과가 없다. 약은 아픈 사람이 회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다. 산삼의 약빨을 제대로 받는 사람은 기가 무척 쇠한 사람이다. 노인, 암환자에게 산삼은 아주 좋은 친구다.


업계에 문의하니 올해 황절삼은 여느 해와 달리 누런 황금빛을 띄며 잘 익었다고 한다. 황금빛의 산삼은 황혼녘의 노인과 닮았다. 그러나 황금빛의 산삼은 사람을 살리지만, 황혼녘의 노인은 황천길을 재촉한다. 생사(生死)의 향배가 이리도 다르다.


노인이 죽으면 혼(魂)이 가서 산다는 곳이 황천(黃泉)이다. 누런 빛깔은 임금의 색인데, 노인의 색도 황색이다. 한 인생을 산다는 것, 살아냈다는 것은 임금의 삶에 버금간다는 뜻 아닐지.


나는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삼삼한 천종삼(순 자연의 산삼, 하늘이 내린 산삼)을 떠올리며 그려 본다. 나는 담백하게 늙고 싶다. 뭇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는 노인이 되고 싶다. 해서 파릇파릇 싱싱한 두 아들과 열심히 논다. 새벽부터 글을 읽고 쓴다. 철봉 매달리기를 한다. 산책을 한다. 차(茶)를 늘 곁에 둔다.

/심보통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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