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타고르가 했다는 말을 아침나절 읽으면서 ‘아, 실로 내 20대는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두 문장을 마저 읽으면서 ‘아하, 내 40대는 현명한 길로 접어들었구나’ 싶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말했대서가 아니라 세 문장을 읽으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 것은 마흔 중반까지의 내 삶의 가락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타고르의 말은 이랬다.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
앞의 두 문장은 직설적이지만, 마지막 문장은 은유적이다.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를 앞의 두 문장처럼 직설적으로 해설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된다. ‘현명한 사람은 사유한다’ 혹은 ‘현명한 사람은 이런 저런 생각을 깊게 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타고르의 첫 번째 문장이 아니어도 나는 내 20대가 실로 어리석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어리석지 않으면 언제 어리석겠는가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서도) 최근 내 어머니와 아내에게 그런 토로를 여러 번 했다.
나는 20대 때 호흡이 참으로 빨랐다. 감각(=촉)이 좋아 사안 파악이 빨랐다. 기사도 쉽게 썼다. 금방 썼고 빨리 썼다. 그러면서 사회머리가 상대적으로 잘 발달했다는 걸 알았다.
이런 내 옆에는 보이차 스승 양보석 선생이 계셨다. 그땐 경찰로 재직 중이셨는데, 선생의 도움으로 취재원을 빨리 섭외할 수 있었다. 선생께 말씀드리면 전화 한 통으로 만사가 해결됐다. 그야말로 ‘만사양통’이었다.
밤엔 선생의 주선으로 대구 수성구 모처에서 보이차를 마시면서 대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두루 접했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로 기사를 많이 썼다.
예컨대 2009년께 보도방 종사자가 손님이 휘두른 칼에 맞은 사건이 있은 뒤, 보도방 종사자들이 호신용 가스총을 소지한다는 1면 톱기사를 취재한 것도 보이차를 마시는 모처였다.
첫 신문사에서 ‘쓸데없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지, 이창호(영남일보 논설위원) 선배는 “지훈아, 에너지는 회사를 위해 40, 너를 위해 60을 써야 하는 거야”라고 조언해 주셨다. 유선태 당시 경찰팀장(2024년 퇴직)은 “네가 회사에서 도대체 몇 가지 일을 하는지 세어나 봤느냐”며 적당히 하라고 언질하셨다. 그러면서 “진이 빠지면 인이 박힌다”는 삶의 과정을 일러주셨다.
‘진이 빠지면 인이 박힌다’는 유 선배의 이 말을 나는 첫 신문사 퇴사 후 우울증을 10개월 앓고 회복하고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인이 박히면 살아가기는 하되 이전에 비해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이 확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안다. 해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두 번째 신문사에서 나는 더는 회사를 위해 쓸데없이 일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저 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남는 시간은 내 자신을 위해 썼다. 홀로 서는 시간을 축적해 온 것이다.
첫 신문사에서 5년 2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을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배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조직은 똑똑한 1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네는 너무 빨랐어. 좀 천천히 가도 되는데. 나가봐. 밖은 무척 추울 거야. 추우면 다시 연락해.”
실제 밖은 추웠지만,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 자신하며 배 회장이 준 명함은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어리석었다면, 내 동기와 선후배들은 영리한 쪽이었다. 묵묵히 기다린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리까지는 올라갔다.
한땐(20대 때) 신문사 편집국장은 한번 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흔 중반에 이르고 보니 편집국장 지낸 사람 치고 성한 사람은 또 없다 싶어 일찍 신문사 생활을 접기를 잘했다 싶다.(나는 두 번째 신문사에서는 기자 대신 스토리텔링을 했다. 스토리텔링만 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신문사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1년 1~2번은 복잡하고 난해하고 지저분한 광고기사를 무능한 기자들을 대신해 소화해 주어야 했다.)
대신 나는 어리석은 사람에서 영리한 사람이 될 겨를도 없이 곧장 현명한 사람이 되어 마음껏 읽고 쓰고 사유하고 사니 나만큼 팔자 좋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내가 마흔 중반에 들어 새로 보이는 것들 중 하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정확히는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바람처럼 걸릴 것 없는 나는 온전히 내 정신머리로 살아가는 자유인이다. 누군가는 내게 방외인라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가정이란 제도권 안에서 두 아들을 건사하는 건 내 몫이고, 내 차지다. 직장의 제도권 못지않게 어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가정 제도권에서 나는 수행승보다 더 고된 수행을 하면서 일상을 가꾸고 있다.
일상은 아무리 고단해도 몸에 배기 마련이고 그러면 예삿일이 된다. 일상은 해서 매일 먹고 마시는 밥과 차처럼 다반사(茶飯事)가 된다. 일상다반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내 눈에 참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참 잘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예의 없는 사람
-제 삶을 방기하는 사람
-게으른 사람
-근면‧성실하지 못한 사람
-상황파악을 못하는 사람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
-할말과 하지 말아야 할말을 구분 못하는 사람
-천지분간 못하는 사람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
-기상천외한 말을 아주 태연하게 하는 사람
-그런 말을 듣고도 분노는커녕 멍한 사람, 실실 웃고 있는 사람
-내가 가져야 할 마음과 상대가 가져야 할 마음을 분간 못하는 사람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
-아시타비(我是他非‧내로남불)를 여사로 하는 사람,
-앞뒤 말이 다른 사람
-약속을 잘 어기는 사람
-지각을 예사로 하는 사람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 못한 사람
-황당한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
-나이에 맞는 지혜와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참 매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이런 사람들이 잘 보인다.
최민희, 추미애, 서영교, 전현희, 박지원, 최혁진 이런 자들을 위시해 툭하면 거짓말이고, 기만적이고, 내로남불인 국회의원은 전부 저 북쪽 아오지탄광으로 보내 뜨거운 맛을 보여야 마땅하다. 아니면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 첫 입소자들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구케의원’들 말고 소시민 중에도 참 매력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 나라 국운이 다한 게 아닐는지.
이 나이 먹으니 신라 1000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 이런 삶의 숫자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정말 놀랍다 싶다.
대한민국은 겨우 80년 됐다. 800년 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매력 없는 나라가 돼 버렸는가. 어리석은 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가.
대한민국이 어디 민주공화국인가, 순 거짓말공화국이지. 형식만 민주공화국이지 실상은 거짓말공화국 아닌가.
깊어가는 가을 부여에도 정원박람회, 대전에도 정원박람회 나라 곳곳이 정원박람회 중인데 행사장은 한산했다. 사유(思惟)하는 대한민국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 막둥이 바론이는 여섯 살인데, 참 기가 막힌 선생님이다. 한자시간에 배워온 ‘말씀 언(言)’ 자를 율동을 더해 귀에 눈에 머리에 쏙쏙 박히도록 설명하는데 들어보시라.
“아빠, 봐봐. 말씀 언은 머리로 한번, 귀로 한번, 눈으로 한번, 생각하고 말해요, 이런 뜻이야. 자, 아빠 한번 따라 해볼까.”
우리 바론 선생님 말씀처럼 정말이지 생각들 좀 하고 살았으면 싶다.
“네네, 선생님! 머리로 한번, 귀로 한번, 눈으로 한번, 생각하고 말해요.”
/심보통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