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 사유의 집(作家家 思惟家)

by 심지훈

작가는 저마다 자기 성(城)을 짓는다. 소설가셨던 아버지 역시 견고한 당신만의 성을 만드셨다. 그걸 본 우공 우한용(소설가) 선생은 “자네 부친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한 번 써보지.”라고 어느 해 여름 권하셨다. 생전 아버지 작업실(황계서실)은 그 누구도 침범하기 힘든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아버지는 온 벽을 교류 작가들의 작품들로 빽빽하게 둘러치셨다. 말년에는 솟대와 사랑에 빠져설랑은 솟대 연작시를 쓰시더니, 정은기(조각가) 영남대 교수와 협업해 ‘시와 솟대전’을 열고, 크고 작은 솟대를 아버지 방에 들이셨다. 그런데도 황계서실은 전혀 혼란스럽다거나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안으로는 정교하고 꼼꼼하고 깔끔한 당신 성품을 황계서실로 보여주셨다. 밖으로는 평생 좁은 마당에 꽃과 나무 100여 그루를 심어 가꾸면서도 사시사철 단정함을 유지했던 마당으로 성품을 보여주셨다.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게 그런 것들이라 나도 언제인가부터 내 성을 짓기 시작했다. 서재만큼은 아내도, 아직은 세상물정 알 턱이 없는 라온이도 침범을 할 수 없도록 아담하지만 튼튼한 나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성 쌓기는 지난해 6월 난생처음 집을 산 뒤 시작됐다. 나는 이 집을 살 때, 주방이 아내가 쓰기 편한 집인지와 함께 누가 보더라도 서재가 ‘작가의 집답다’ 할 수 있는 곳인지를 그중 중히 따졌다. 주방이 광창이고 창 너머 시야가 훤히 트인 것을 확인하고는, 도심공원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내 전용 숲인 양 시원함을 주는 창가를 보고 두 번 생각 않고 5억 원짜리 집을 덜컥 사버렸다. 내가 이전까지 고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내놓자 아내는 어안이 벙벙해하면서도 ‘계약금을 진짜 넣을지’ 묻지도 않고 쏴 버렸다. 맨 정신이었다면 또 의견 차를 놓고 씨름을 했으리라. 때론 상대를 몽매한 상태로 몰아 일을 매조지는 것도 뾰족수겠다.


집을 산 지 1년이 흘렀다. 1년은 참 빨리 흘러갔다.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마련하겠다는 틈이 잘 생기지 않았다. 채운 것은 겨우 책들뿐이고, 늘린 것도 겨우 책들뿐이었다. 아버지가 서재를 ‘황계서실’이라 이름 지었듯 나도 내 서재에 걸맞은 이름을 짓기로 했다. 지난해 7월 내 첫 시집 ‘문인송 가는 길’을 인쇄소 대흥사에서 싣고 온 날, 벼락같이 지었다. 궁고재(窮考齋). 처음엔 궁리재(窮理齋)로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내가 하는 지적 작업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작가답게 작명을 했다. 궁리하고, 깊이 헤아려 결과물을 내겠다는 작가 정신을 궁고재 이 석 자에 담은 것이다. 이제 물건을 채울 차례. 일찍부터 차(茶)를 벗삼아 드디어 옆에 두는가 싶었지만, 물정 모르는 라온이가 용감무쌍하게 도자기로 덤벼들어 치워버렸다. 그것도 강화유리로 만들어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았던 공도배(간이 숙우)를 20개월도 안 된 라온이가 정확하게 던져 깨뜨린 직후 속전속결로 찻짐을 싸버렸다.


헌데 세상에나! 2개월 더 자란 라온이가 뭘 좀 알긴 아는 게 아닌가. 다탁하려 산 소나무 떡판과 다탁에 어울리는 다판과 자사와 다구와 차 난로와 감상용 미니병풍과 보이차와 이것들과 어울릴만한 기막힌 원목 화병과 소여물통을 지난 두 달에 걸쳐 틈틈이 사 모은 뒤 궁고재 창가 옆 나무침대 위에 세팅하자, 우리 라온이가 아버지가 가라마라 하지도 않았는데 이전과 달리 나무침대에서 다섯 보 떨어진 자리에서 서서 “아뜨, 아뜨”하며 다가가지 않는 게 아닌가. 참 신통방통한 녀석이로고. 참 기특한 녀석이로고. 이렇게 라온이가 도와준 덕분으로 작가의 집은 그럭저럭 큰 그림이 완성됐다. 이제 더 채울 것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도, 욕심도 없다. 나는 이제 쾌히 여명이 밝아오기 무섭게 득달같이 새벽에 일어난다. 일어나설랑은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로 ‘나를 두고 가려무나’의 가수 김동아 선생 노래 50곡 이어듣기를 재생시킨 후 차탁 앞에 앉아서는 그날 느낌 따라 자사(보이차 우리는 다관)에 청차를 우렸다가 숙차를 우렸다가, 청차 중에서도 청향이 깊은 차를 우렸다가, 장향이 깊은 차를 우렸다가, 청차인데 습을 주어 숙차 맛이 나는 청차를 우렸다가, 반발효차 대홍포를 우렸다가, 홍국차를 우렸다가, 이 차들 양을 많이 했다가 적게 했다가, 공도배에 따랐다가 뚜껑 없는 자사에 따랐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차놀음이란 놀음 삼매경에 빠져든다. 정말이지 나는 한시도 이 놀음을 늦출 수도 그만둘 수도 없다.


그 재미에 폭 빠져 있다가 시간이 되면 글을 짓기도 하고, 대구서 보내 온 기사를 리라이팅하기도 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신문을 넘겨보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 책을 보기도 하고, 창 너머를 감상하다가 졸졸졸 흐르는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생각들 사이를 점핑하다가 돌연 사방이 막힌 우물을 만난 듯 갑갑증이 몰려오면 2,000권 되는 작은 도서관 궁고재 책장의 책들을 훑어 족집게 강사가 시험문제 찍어내듯 고인 우물을 뚫어줄 딱 맞는 참고도서를 집어낸다. 오로지 궁고재 주인장만의 호사다. 누군가는 내가 이따금 보내주는 차 사진을 보고, “정신적 사치가 너무 심하신 게 아니냐”며 투자한 돈을 셈하려 들던데, 이거 다 합쳐 봐야 직원 50명 모여 하는 한 끼 밥값도 안 된다. 이 사실에 또 한 번 깜짝 놀라실 텐데, 어째서 이 고가품들을 재주 좋게 50만원도 안 주고 다 장만했는지는 다음 글 ‘요지경(瑤池鏡) 속 세상 이치’로 그 비결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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