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침 산책은 가문비나무 숲길로 들어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은 매우 특별하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뒷날을 계획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 않는다. 내 눈엔 즐길 줄을 모르는 거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걷는 법도 걷는 곳도 다르다.
나는 대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심 공원을 낀 아파트에 산다. 이 공원은 소유권을 따지지 않는다면 내 전용 공원과도 같다. 아무 때나 누구의 간섭 없이 즐길 수 있다. 여름철이 되면, 이 공원은 아침저녁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많을 땐 400~500명 정도가 우르르 우레탄 트랙을 돈다. 그냥 돌고 돈다. 생각 없이 돈다. 내 눈에는 운동 삼아 도는 것 외엔 딱히 부여할 의미가 없다.
나는 그 복잡한 무리 속에 섞이지 않는다. 섞일 일이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걷는 요량으로라도 앞으로 치이고, 뒤로 치이는 그 틈에 들어선 사람들은 아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을 경우이긴 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내 눈엔 좀 안타깝다. 저 귀한 아침시간을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해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진즉 걷어내 버린 우레탄 위를 죽을 동 살 동 걷는 건 뭐람.
나는 공원에 사람이 많건 적건 공원 둘레숲을 돈다. 그곳엔 이미 누군가가 밟아 낸 좁장한 흙길이 있다. 길쭉 둥글게 생긴 공원은 가문비나무 숲이 울울창창하다. 그 사이로 회화나무, 복자기나무(단풍나무의 일종) 층층나무 매실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산딸나무 화살나무(일명 귀신나무) 이팝나무 칠엽수(마로니에나무)가 형님아우하며 옹기종기 모여 서 있다.
꽃들은 또 얼마나 빵끗빵끗한지. 부처님 머리를 닮은 불두화며, 희고붉은 작약에다, 붉은병꽃, 노오란 씀바귀에, 하얀 찔레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기력이 돋는 것 같다.
내 애호고 기호이기 때문이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건 한의학의 기본원리다.
우리 몸에는 자연과 기운을 주고받는 세 개의 통로가 있다.
하늘의 기운(天氣)과 교류하는 머리의 백호(혹은 정수리)가 하나요, 땅의 기운(地氣)을 교류하는 발바닥의 천혈(혹은 천구혈)이 둘이요, 마음의 기운(心氣)을 교류하는 가슴팍이 그 셋이다.
이 세 개의 통로가 원활하지 못해 만성이 되면 우리 몸은 시름시름 앓는다.
백호가 제대로 숨 쉬지 못하면 두통이 온다. 갓난아기의 숨구멍이 어디인가 잘 살펴보면 이 이치를 알 수 있다. 천사 같은 아기는 힘차게 백호로 천기를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호흡한다.
지기를 제대로 수기(輸氣·보내기)하지 못하면 뼈마디가 아프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뼈마디가 욱신대는 건 피가 몰려서라기보다 제때 수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이게 본질이다.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섭취하면 만 가지 병을 얻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데 더 효과적이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 체질적으로 성급하고 포악하며, 채식을 즐기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차분하며 온화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걷기는 흙길걷기여야 한다. 우리 아파트엔 아이들 놀이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우레탄 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맨흙에 있다. 아이들 엄마는 열이면 열 우레탄 놀이터로 자녀를 데려간다. 맨흙 놀이터는 지저분하다는 게 이유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해먹지.
흙길걷기는 사유(思惟)로 이어진다. 걷는다는 건 여유를 갖는다는 거다. 여유를 갖는다는 건 생각의 문을 열어젖힌다는 것이다. 생각의 문을 연 채 유유히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늘이, 어제가, 내일이 절로 그려진다. 거기서 사유라는 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두루 살피는 힘은 시나브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되면 나무가 달리 보이고, 꽃이 달리 보인다. 미물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의 힘은 인간사 통찰까지 두루 가닿는다.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40년 만에 천지가 개벽할 만큼 놀라운 발전을 했는데, 이토록 풍요로워졌는데, 왜 우리네 삶은 이렇게나 팍팍하고 각박하고 어마무시해졌을까. 사유하는 법을 몰라서다. 사유의 힘이 부족해서다. 꽃과 나무 같은 미물을 사랑할 줄 아는 힘이 부족해서다. 사유가 부족한데 어찌 예의염치 사유(四維)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유를 할 줄 모르는 자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으면, 예의염치를 기대하기 어렵고, 사유서만 넘쳐날 뿐이다. 사유(思惟)할 줄 알아야 사유(四維) 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에 유익한 인간이 되고,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닌 이유, 고관대작이라고 옳은 인간이 아닌 까닭도 이해가 되시는지….
이 글이 널리 설파되어 너나없이 사유(思惟)의 힘을 기르는 단초가 됐으면 정말로, 참말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