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아파트에 사는 한심한 작자들 사연으로 시작하겠다.
대한민국 아파트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장에는 주말마다 이문열이 처박히고, 황석영이 처박히고, 유홍준이 처박히고,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스티브 잡스가 처박히고, 빌 게이츠가 처박히고, 워런 버핏이 처박힌다. 이명박, 안철수, 노무현, 박근혜, 힐러리, 클린턴, 오마바가 처박히는 건 너무 자주 봐서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는 대한민국 정부 외청 공무원들 집단거주지인데, 요즘 ‘30~40대 공무원 부부’하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 불릴 만큼 부유해 그런가 유아책, 아동용책은 무시로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말짱한 새것인데, 여지없이 내다버린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구라칠 수 있는 건가!
나는 결혼하고 아내와 혈투(?) 끝에 서른여덟 먹고 난생처음 재활용쓰레기는 물론 음식물쓰레기 담당자(!)가 됐다. 무척 우울하고, ‘아 내가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하는 자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 현장에서 의외의 수확으로 우울감·자괴감을 ‘퉁’ 칠 수 있었다. 이건 아내와는 전혀 무관한 뜻밖에 소득이었다. 그 쓰레기 더미 앞에서 내가 건진 건 우선 ‘이러다 대한민국 꼴이 저짝 무적함대 스페인 꼴 나겠구나’하는 ‘현장의 경고’였다.
아파트 쓰레기. 나는 그 매주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을 보면서 2003년의 스페인이 떠올랐다. 학부 때 스페인어를 전공했던 나는 3학년 2학기 여름방학에 스페인을 두 달 일정으로 갔다. 강도를 만나 한 달 만에 돌아왔지만, 한 달 동안 수도 마드리드와 그라나다, 꼬르도바, 똘레도 등을 여행했다.
나는 한 달 여행하면서 스페인은 머지않아 망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스페인이 관광대국이 된 것은 자국의 노력보다 정복의 흔적에 따른 후광효과로 보였다. 국민은 게을렀고, 의식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관광대국의 치안은 거의 3류 국가 수준으로, 나와 일행이 강도를 만나 경찰서를 찾았을 때 그들은 이방인을 위해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 셋이 길바닥에서 백주에 기절하고, 한 명은 모든 것을 빼앗겼는데도 그들은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참 기가 막힌 나라였다.
그 형편없는 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로 유로존을 뒤흔드는 악동이 되었다. 2012년 7월, 41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여야 했다. 유로존 내 4위권 경제대국은 그렇게 대굴욕을 겪었다. 스페인 정부는 무능했고, 스페인 국민은 태만했다. 관광대국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났고,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생가 골목은 악취가 진동했다.
내 눈에 스페인이란 나라는 자력으로 먹고사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는 나라로, 지금까지 건재한 것이 용해 보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은 지나고 나면 지난(至難)한 것이다. 그 개개의 삶이 국민성이란 이름으로 하나로 묶일 때, 그 내용물이 열정, 낙천, 긍정으로 포장돼 있다면 그건 길조 아니라 망할 징조 다름 아니다. 중남미를 보라!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양을 보면서 내가 목도한 2003년의 스페인이 오버랩 됐다. 그러면! 몇 년 안 있어 우리도 스페인 짝이 날지 모른다. 이 목도는 2015년의 일인데, 아직까지는 제2의 IMF(구제금융) 설(說)만 무성할 뿐이다. 하지만 설이 난무하면 언젠가 그 설은 기어이 기정사실이 된다는 걸 무수한 역사적 사건이 증명하고 있다. 예컨대 구한말 동학(東學)의 출현은 누구는 벼락같았다고 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무수한 설이 난무한 끝에 기린아처럼 등장했다. 이게 적확한 표현이다.
매일경제는 ‘스페인型 재정파탄 한국에도 싹이 보인다’는 내용의 사설을 쓴 바 있다. 2012년 8월 6일의 일이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단계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지금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하강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지금 답답한 처지에 있다. 중진국의 함정이라고도 한다. 말레이시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들이 있어 온지 오래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한국의 침체와 하락 가능성에 경종을 울렸던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2018년에 한국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재차 경고를 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물 온도는 더 올라갔다.”
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질 것이란 쪽에 있다. 무턱댄 낙관론은 아마추어적 발상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 현장은 ‘과소비의 현장’이요, ‘낮은 문화의식의 고백장’이요, ‘물질풍요의 증거장’이요, ‘대한민국 미래 암시장’이었다.
대체 이 이야기가 ‘요지경(瑤池鏡) 속 세상 이치’와 ‘물건을 싸게 산 비결’과 무슨 상관이냐고? 만약 손님이 사회학자 콩도르세가 말한 ‘심원한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능히 눈치챘으리라.
2.
누군가에겐 값진 골동이 누군가에겐 거저 줘도 마다할 고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천덕꾸러기 고물이 누군가에겐 귀하디귀한 골동일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늘상 새 물건만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고 명품시장이 으뜸시장으로 간주되지만, 이 시장의 다른 쪽엔 골동과 고물의 집합시장(=중고시장)이 상상 이상의 규모로 존재한다.
이 시장에선 흥미진진하게도 골동이 절대적으로 골동일 수 없고, 고물 역시 절대적으로 고물일 수 없다. 누군가는 고물을 골동으로 대접하고, 또 누군가는 골동을 고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의 백미(白眉)는 ‘세상 물건들엔 진짜 주인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피상적 감상일 뿐이다. 물건이 거래되는 현장에 서면 ‘요지경 속 세상 이치’가 종횡한다. 그 이치 읽기에 맛들이면 한 달 치 월급은 껌값처럼 쉬이 사라진다. 도가 지나치면 집안 화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엊그제 라온 엄마한테 지난 두 달 동안 한 거래횟수와 총금액을 보고(?)하고, 이제 이 일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총 27회에 664,000원을 썼다. 곧 다가올 생일선물 받을 걸로 치겠다고 하자, 라온 엄마는 쿨하게 “알겠다”고 했다. 이중 180,000원은 장인장모께 드릴 물건을 산 것이어서 내 서재 한 구석에 찻방을 꾸미는 데 든 비용은 484,000원이다.
모두 중고다. 한 번도 안 썼거나 썼어도 한두 번 쓴 게 전부였다. 모두 27명이 소장했던 물건이 ‘진짜 주인’을 만난 것이다. 판매자들 중 4명이 기억에 남는다.
우선 ‘똘이 엄마.’ 이 분은 20년간 골동을 사 모았다고 한다. 2층짜리 단독주택이 골동으로 꽉 들어찼다. 그에게서 다탁을 두 개 샀다. 장모 것 하나, 내 것 하나. 그밖에 세종대왕 흉상과 다판, 감상용 보이차, 미니 병풍을 모두 똘이 엄마한테 구매했다. 몇 번 방문해서 이제 그냥 ‘엄마’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75세 된 서예가 할머니다. 차 난로, 50개들이 초 봉지, 육각소반, 찻잔세트 2개, 다구세트 일체를 3만원에 내놨다. 할머니 말씀이 가관이다. “왕년에 폼 좀 잡으려고 샀는데, 포장도 안 뜯고 박스째 넣어뒀다가 어제 풀어 내놓은 거”란다. 좀 사는 이 할머니 집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사 모은 물건들로 가득이다. 내 눈에 귀해 보이는 물건도 적지 않다. 이런 물건들을 지켜줄 아들딸이 없어 한동안 친절하게 안내장까지 써 붙여가며 아파트 밖에 내놨단다. 그러다 조카인지 질녀인지가 한 푼이라도 받고 팔라며 중고사이트를 알려줬단다.
세 번째는 10㎏ 복분자청을 판 아주머니다.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야말로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상에나 아파트 거실이 ‘미니 다이소’였다. 21세기 점빵이었다. 23년째 부산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단다. 정말이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복분자청은 지리산서 복분자 농사짓는 친척이 보내준 것인데, 이왕지사 점빵인데 못 팔 물건이 어디 있으랴.
네 번째는 소여물통과 원목 화병을 판 아주머니다. 괴목과 원목을 좋아해 젊어서 무진장 사 모았다는 아주머니는 이제 집에 더 둘 수 없어 저렴하게 판다고 했다. 아주머니 소장품 중에 압권은 괴목 의자와 탁자다. 500만원 주고 수입상에게서 샀다는 이 괴목 의자는 갖고는 싶은데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 포기했다. 괴목 의자 4개, 탁자 1개 일괄 250만원이란다.
이밖에도 여러 분이 생각이 나는데, 소소한 단품거래였던지라 일일이 언급하기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분들과 물건을 거래하면서 ‘세상 참 요지경 같다’고 느꼈다. 요지경은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일’을 이르는 말이다.
3.
우리는 참으로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살 때는 최고의 물건으로 알아 샀으면서도 그걸 애지중지 가꿀 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잘 쓸 자신도 없는 물건을 견물생심에 혹해 사들여서는 고물처럼 재어두다 더 이상 갖고 있기 힘들어 선심 쓰듯 ‘새 주인’에게 팔아넘긴다. 그 새 주인도 ‘진짜 주인’인지는 일별할 수 없다. 어떤 물건은 쓰레기가 안 나오지만, 대개의 물건은 쓰레기를 유발한다. 가지고 있다가 버리는 것도 있고, 새 주인에게 넘어갔다가 버려지는 것도 있다.
특히 새 책 마구 버리는 걸 보면, 내가 글쟁이인 게 너무너무 한탄스럽다. 하물며 이문열 씨가, 황석영 씨가, 유홍준 씨가, 김진명 씨가, 최인호 씨가, 혜민 스님이, 법정 스님이, 펄 벅이, 하이젠베르크가, 빌 게이츠가, 워런 버핏이 이런 현장을 보면 대체 뭐라고 할까. 부끄럽고 남세스러워 나는 이 책들을 가져와 깨끗하게 닦아서는 서재에 꽂아두고 틈틈이, 또 필요에 따라 읽는다.
생각이란 걸 좀 해보자.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려지는 책들을 아파트관리사무소나 입주민대표자회의나 부녀회가 수거해 깨끗이 닦아서는 건물 한 켠에 공간을 만들면 이게 ‘아파트 알라딘서점’이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대한민국은 너무너무 살만해 무엇이 귀한 지를 잘 모르는 나라가 돼버렸다. 이러면 결국 한 번은 자빠지게 돼 있다. 망하게 돼 있다. 세상 묘한 이치란 건 바로 이거다. 흥망성쇠. 인류 역사는 4가지 패턴의 윤회(輪回·돌고 돎)다. 지금 우리는 흥의 고점을 찍고 망조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그건 개소리다. 단재가 쓴 ‘조선 상고사’를 읽어보라. 그가 역사를 썼는지, 소설을 썼는지. 역사란 건 알고 보면 몽매한 구석이 너무나도 커 잊어도 상관없다. 대신 “책을 읽지 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하면 이건 역사 따위를 넘어선 진리 언저리여서 아로새길 만하다.
책 속에 역사가 있고, 책 속에 미래가 있고, 책 속에 삶의 정신이 있다. 책을 마구잡이로 처박는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고? 대체 무슨 힘으로 선진국이 될까. 머리는 텅텅 비었는데, 삶의 철학이라곤 아프리카 국민들보다 빈곤한데, 대체 무슨 힘으로 선진국이 된다는 말인가. 된다고 한들 그걸 무슨 수로 유지할 텐가. 골동과 고물을 가리는 데도 책의 힘-지력(智力)과 지력(知力)이 필요하다. (요즘은 남성도 해당) 얼굴에 분칠할 시간에 부족한 지성에 분칠하자. 제발 책들 좀 읽자. 물건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제발 야무지게 좀 살자. 정령코 망국탄(亡國歎)을 맛봐야 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