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린이집 교사가 올린 온라인 게시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아이들 문해력보다 부모들 문해력이 더 큰 문제라는 게 요지입니다.
예컨대 ‘우천 시 OO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했더니 “우천 시에 있는 OO 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는 문의가 온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드는 사례도 있습니다. ‘OO를 금합니다’고 했더니 금하다의 금을 골드(金)로 알고 ‘가장 좋다’고 이해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해당 글을 쓴 교사는 “섭취·급여·일괄 같은 말조차 뜻을 모르고 연락해서 묻는 분들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새는 비율이 꽤 늘었다”고 가당찮은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문해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흘’을 ‘4일’로 알아듣더라는 사연, 과외선생과 엄마 간 ‘제 사견으로…’라는 표현을 두고 벌어진 해프닝,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표현에 “뭐가 심심하다는 거냐”며 짜증을 내더라는 이야기.
이 바람에 지난해 3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던 한양대 국어교육과 조병영 교수의 사례도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조 교수는 이 프로그램에서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 제공’을 보고 ‘왜 중국음식을 제공하냐, 우리 아이에게는 한식을 제공해 달라’라고 했다”는 어느 학부모의 사연을 소개하며 요즘 세대의 문해력 논란을 언급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오늘 한 매체는 이 이야기들을 종합해 다루면서 문해력 전에 문장력을 이야기하자는 새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문해력이 독자의 영역이라면 문장력은 필자의 영역일 것입니다. 생산자가 쉽게 쓰면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미입니다.
언뜻 일반 독자가 보기에는 수긍될 말입니다.
-우천 시는 ‘비가 올 경우’
-OO를 금합니다는 ‘OO를 하지 마세요.’
-사흘은 ‘3일’
-사견은 ‘제 생각으로는’
-심심한 사과드립니다는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렇게 쉽게 쓰면 될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글(=한국어의 어휘)의 70%가 한자어인 현실을 감안하면 아주 황당무계한 주장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국어 실력’이라 불렀던 ‘문해력’은 당장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문제가 됩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는 단순히 한글 자모음을 배우고 단어를 써보는 정도여서 문해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작 ‘사고력 수학’을 푸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사고력 수학은 지문을 이해해야 풀 수 있습니다. 때문에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거나 아이가 또박또박 문제를 읽는다 해도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고등학교 고전산문을 읽어보십시오. 웬만한 글쟁이도 모르는 단어나 생경한 단어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그 글들은 모두 빼어난 옛글들이라 교육부에서 선별해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옛글에 수록된 글과 그 글의 표현과 그 표현에 담긴 주옥같은 낱말들을 공부하지 않은 결과가 문해력 부족일 것인데, 문장력을 운운해서 될 일이겠습니까.
매체의 기자도 글을 다루는 자, 문사(文士)일 것인데, 이런 기본 이해도 없다는 게 더 신통방통합니다. 문해력을 탓하기 전에 문장력을 탓하자는 주장을 하는 건 한마디로 “나는 무식한 놈이다” 하고 공언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연암 박지원이 쓴 <광문자전>이라는 고전소설에는 ‘전장(田莊)’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또 그가 쓴 <김신선전>에는 ‘탑(榻)’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두 단어를 알면 현대식 농막에 관한 글을 고급지게 지을 수 있습니다.
*<전장과 탑>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이웃 찬영이네 농막을 다녀왔습니다. 찬영이 아빠가 지난해 전원생활을 위해 공주에 마련한 곳인데, 그곳에는 카페 같은 멋진 농막이 있고 그 옆엔 옛 수박밭의 오두막 같은 아담한 오두막이 있습니다. 농막(農幕)은 농사짓는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을 말합니다. 그런데 농막의 다른 이름이 전장인 걸 아시나요. 옛날에는 농막을 전장(田莊)이라고 했답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광문자전>을 보면 “이때 돈놀이하는 자들이 대체로 머리꽂이, 옥과 비취, 의복, 가재도구 및 가옥·전장(田莊)·노복 등의 문서를 저당 잡고서…”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전장(田莊)의 주(註)를 보면 ‘밭과 그 근처에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간단하게 지은 집’이라고 돼 있습니다. 찬영이네 오두막은 네모반듯한데 주변의 다른 집 오두막은 길쭉하기도 했습니다. 이 길쭉한 오두막을 옛날에는 탑(榻)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연암 선생의 소설 <김신선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탑(榻) 위에는 조그만 구리 부처가 있고, 다만 신 한 켤레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탑에는 ‘좁고 기다란 평상’이라는 풀이가 달려 있습니다. 지난해 농지법 개정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었지요. 전장에서는 야간 취침이나 숙박을 할 수 없고 농작업 없이 여가 시설로 활용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추진하다 전국의 전원주택생활자들이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 말짱 도루묵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찬영이네 전장에는 도루묵은 없었지만 찬영이 아빠가 유기농으로 기른 방울토마토가 있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찬영이네 전장이 산골짝에 들어앉은 덕분에 맑은 바람을 담뿍 먹고 자라 달디단 밤양갱만큼이나 달달했습니다. 우리는 <밤양갱>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바앙울 토마토’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바앙울 토마토.’
여러분은 [글밥]을 통해 농막의 다른 이름인 전장(田莊)과 길쭉한 오두막을 이르는 탑(榻)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한국어(=한자어)를 더 알게 되었다고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있으신가요?
보았듯이 문해력을 위해 우리글을 깊고 넓게 읽을 것을 권장해야지 현실이 반대편에 있다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 문장력을 키우라니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장력이 커지는 걸까요? 쉽게 쓰기가 문장력을 키우는 것일까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장력은 되레 움츠러들게 됩니다. 문장력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단어를 찾아 배치할 때 세지는 겁니다.
문장력은 어려운 표현과 쉬운 표현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뿐인가요. 한자어를 익히지 않으면 우리글과 말의 70%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심하게 말해 거세됩니다.
우리글말을 70% 잃어버리면 우리 문화는 100%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골수가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골수가 마른다는 건 얼이 빠진다는 거고 얼이 빠진다는 건 우리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그 우수성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한글에는 한자어가 70%인 사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전에 이미 우리 고유의 가림토 문자가 있었습니다. 한글은 이 가림토 문자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학계의 설도 있습니다.)
우리 오천년 역사에서 한글부흥운동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였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우리말 우리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 분이 사회운동으로 번졌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은 반세기를 겨우 넘겼을 뿐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기반한 한글사랑은 찬밥이 돼버렸습니다.
그 세월이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 풍경을 가만 보면 기가 막힙니다.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우리나라는 나쁜 상전벽해를 일궜습니다.
우리들 저잣거리의 간판은 온통 영어 일색입니다. 애나 어른이나 영어를 틀리거나 뱉지 못하면 얼굴을 붉혀도, 한글을 틀리거나 제대로 표현 못 하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인디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한국인이라면 우리 일제강점기가 오버랩돼 미국의 미 자도 영어의 영 자도 돌아보기 싫을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미국은 인디언을 상대로 인종학살을 서슴지 않고 그들의 피가 응어리진 땅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인디언들은 자기들 번영의 땅을 내주고 변방으로 쫓겨나 5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메리카 대륙 곳곳엔 1억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미국이라는 식민국을 추앙하는 형국, 영어라면 미제라면 환장하는 세태, 우리는 굴곡된 현대사 속에서 시나브로 아주 황당한 국민들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요. 틀린 거지요. 아무리 영원한 것은 없고, 시대가 변했다 해도 국어 사랑은 국어 사랑 대로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를 사랑해야지요.
올곧은 국어 사랑은 한자어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글이 순수 우리말과 우리글로 이뤄졌다는 건 명백한 착각이고, 이뤄져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명백한 환상입니다. 이 착각과 환상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몇 권만 들여다봐도 한자어 빼고는 한글을 이해하기가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순 한글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제 편의주의자이거나 게으른 자이거나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순 불순분자들입니다.
대체 독서를 안 하는 자가 어떻게 한 줄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문장력이 열매라면 문해력은 씨앗입니다. 글을 지은 뒤에 읽게 되는 게 아니라 읽게 된 뒤에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방과후수업 중 가장 인기과목은 한자입니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독서교육과 한글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영어와 중국어도 가르칩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에서는 한글교육을 더 강화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부모의 문해력이 문제라는 진단,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문제라는 진단이 나오는 판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들 학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기만 하는데 학부모와 아이들의 우리글말력은 땅 낮은 줄 모르고 한없이 꺼지고 있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