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상식에 반하는 현상이나 상황을 경험할 때 장고하는 습관이 있다. 생소하고 이상해서, 아니면 진기하고 신기하고 신통해서 무조건 거부하거나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
대학생이 된 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상식이 옳다’는 결론을 대체로 내려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함께 겪는 현상과 상황의 결론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도 장쾌한 결론에 도달하기가 쉽지가 않다. 부부로 내리는 결정들이 특히 그렇다.
남남이 부부가 되고 부부 사이에서 자식이 나면 일상사의 결정들은 변수로 넘치고 난수가 된다. 대개 아내가 결심을 굳히면 아내 뜻대로 굳어지는 게 요즘 세태다. 내가 아무리 강자라 해도 이 세태는 거스를 수 없다. 매번 어떤 한계를 느낀다.
어젯밤엔 막둥이 바론이한테 종이를 가져오라고 한 뒤 저녁 이후 일과표를 작성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작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단초는 아이들 영어 학습이었다.
아내는 지난해 12월 나와는 상의도 없이 바론이를 영어학원에 집어넣었다. 아내는 나와 상의를 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항변하지만 평소 내 생각은 영어뿐 아니라 요즘 엄마들 교육방식은 몰상식한데다 폭력적이기까지하다는 것이어서, 아내가 나와 상의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첫째 라온이는 내 상식에 따라 학원을 보내지 않았고 태권도도 다른 아이들보다 1년 늦은 6세에 시작했다. 이것도 아내의 조급증이 낳은 결과였다. 아내에게는 뭔가 뒤처진다는 느낌이 틀림없는 진실인 양 훅훅 다가오는 모양이다. 라온이를 보니 태권도도 뭔가 말귀를 알아듣는 7세는 돼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다. 6세 때는 그냥 놀이이고 7세가 되자 어설프게나마 뭔가를 배워왔다.
바론이 영어학원은 데려가고 오는 걸 엄마가 도맡아 한다는 약속을 하고 시작했는데, 아내가 무릎이 불편해지자 내 차지가 됐다. 영어학원을 가보니 걸음마도 못 뗀 아이들이 다수였다. 바론이는 큰 축에 속했다. 학원 다닌 지 한 석 달은 됐나 싶어 아내에게 물어보니 벌써 1년이 다 돼 간단다. 그 시간을 감안하니 바론이가 영어에 흥미를 느끼기는 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자세도 불량하고 따라하지도 않고 간단한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상황을 전했더니 아내는 바론이에게 대뜸 “그러면 다음 달부터 다니지 말자”라고 속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걸 보고 애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영어학원 교재나 학습내용은 아주 참신하고 훌륭했다. 학원만 다닌다고 아이들 학습력이 일취월장한다면 학력차라는 게 왜 나겠는가. 앞뒤로 바지런히 아이를 도와 함께해야 하는데 그게 빠진 거였다. 돈은 돈대로 쓰고 아이는 시간만 버리는 꼴이랄까.
그러던 중에 바론이 어린이집 하교 때 영어수업을 우연히 보게 됐다. 영어학원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수업을 어린이집에서도 하고 있었다. 사설학원마다 고만고만한 수업을 하는 거다 싶었다. 바론이는 결국 같은 수업을 무료로, 유료로 2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입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아내가 바론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바론이가 영어를 잘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에 관심이 있다고 이해하고 학원행을 결정한 것이다.
나는 고만한 나이에 고만한 시간과 놀이를 제공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이런 내 생각과 상식을 늘 뛰어넘는다. 하지만 이건 싸울 계제가 못 된다. 내 방식이 확실히 낫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 방식 역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의 생각과 내 생각은 그저 다른 것뿐이다.
그래도 생각은 필요하다. 나도 결정과 실행은 무척 빠른 편인데, 아내는 유독 아이들에 관한 일만큼은 나보다 더 빠르다. 아내는 얼마 전 라온이 피아노 선생을 집으로 들였다. 역시 내게 상의를 했다는데 나는 금시가 초문이다. 나는 아내가 아이들 문제를 상의했다고 할 때마다 도무지 누구와 상의했다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우리 집에 아니면 우리 집 밖에 아내가 나라고 착각하는 남자가 있는 건가?
어제는 또 라온이 온라인 영어강좌를 신청했다고 슬며시 흘렸다. 아마도 아내는 지난 주말 내가 한 말에 힘을 얻은 것 같다. 실제 내 말 때문이라면 내가 괜한 말을 한 꼴이 됐다.
나는 바론이 영어학습 태도를 두고 말했다.
“누가 틀걸이를 하지 말랬나. 너무 이르다는 거지. 생각해봐. 공부란 게 초중고만 해도 12년을 줄곧 내달려야 하는 일이야. 그런데 그게 쉽나. 뭐 한다고 그리 빨리 링 위로 집어올리나. 그런데 이왕 틀에 걸었으면 최소 3년은 간다고 생각해야지. 애 자세가 바르지 않단다고 냉큼 그만두자고 하는 건 뭐야.”
내가 보기에 라온이는 차분하고 섬세해서 학교수업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태권도도 그리 열정적으로 다닐 수가 없다. 1품 심사를 앞두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밤낮으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아, 내 아들이지만 나와는 참 다르구나’ 싶었다.
이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아내와 나의 해석은 천양지차다.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선생을 붙여주면 잘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때가 되면 제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어젯밤 팽팽 정신없이 돌아가는 아이들 학습 팽이를 보면서 일과표를 짰다. 되든 안 되든 시도는 해야 한다는 결기가 동했다. 틀은 걸었고 아이들이 하기 싫다는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간식+온 가족 영어 노래 듣기
(바론이 영어 노래는 참 발랄하고 따뜻하고 교훈적이다.)
-라온이 연산+사고력 수학
(설거지하기)
-온 가족 온라인 영어강좌 시청
-목욕하기
-놀기
-따로 독서하기
(엄마=바론이, 아빠=라온이)
저녁 이후 일과표의 핵심은 ‘엄마아빠와 함께하기’다. 우리 집은 이게 가능하다. 이 점이야말로 아이들 학습 성공에 관건이 될 테다. 아이들은 아이여서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거라면 뭐든 좋아한다.
바론이는 지난 주말 경고를 받은 뒤 더 열성적이다. 입도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바론이는 또래에 비해, 남자애라는 걸 감안해도 언어구사력이 탁월하다. 실제 말하는 걸 보면 [글밥] 손님들도 깜짝 놀랄 것이다. 때문에 외국어도 곧잘 하리라는 기대는 나도 은근히 하고 있다.
라온이는 온라인 영어강좌를 선보이자 어리둥절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제 엄마한테 끌려가는 모습이지만, 내일부터는 엄마아빠 바론이도 함께한다고 하자 좋다고 한다. 라온이에게는 은근과 끈기가 있어 뭘 해도 믿음이 간다.
이 아침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을 들춰봤더니, 이 책에서도 영어 학습의 첫째 조건으로 학부모의 자세를 꼽고 있다. 반드시 아이와 함께하면서 생각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밖에 한국 생활과 관련이 있는 교재를 사용할 것, 우선 자신의 문화에 대해 잘 알 것, 영어권 국가와 한국이 평등하다고 생각할 것,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목표의식을 가질 것 등을 영어 공부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덧붙여 학습 초기에는 호기심, 흥미, 매력을 느끼게 하라고 했다.
나는 한마디로 재미있게 놀아주라고 읽었다. 잘 놀아야 잘 배운다.
나는 우리 아파트에서 몰상식하고 폭력적이기까지한 부모들의 가학적 행태를 쉽게 목도해 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자기 키의 2/3나 되는 가방을 메고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동태 눈을 하고 터벅터벅 걸어나가고 걸어들어온다. 심하게 말하면 좀비 같다. 주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 시간을 6년만 지속해봐라. 당장 체력이 못 따라가 공부는 공염불이 된다. 서울의 강남, 대구의 수성구라는 대전 둔산동에선 아이들이 제일 먼저 끊어버리는 학원이 태권도란다. 이렇게 몰상식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공장식 축산의 소 돼지처럼 좁장한 학원에 가두고 키우는 게 요즘 부모들이다.
그런데 맛있으면 그만이다는 생각뿐 공장식 축산의 폐단을 한 번도 상상하지 않는 것처럼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다는 생각뿐 학원에 갇힌 아이들의 폐단을 상상하지 않는다.
부모의 폭력은 교육에서만큼은 유무죄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참 섬찟하면서도 놀라운 일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많은 것을 해주기보다 아이에게 진중하게 많은 걸 물어야 한다. 아이의 답을 갖고 부부는 세심하게 상의해서 장고 끝에 아이의 일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