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으로는 어물전 망신이 있고 집안 망신이 있고 국제적 망신이 있다. 망신(亡身)은 몸이 상한다는 뜻이다. 이때 몸은 체면 명예 지위 따위를 가리킨다. 망신이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속담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망신의 주범도 적시해 두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집안 망신은 며느리(막냇자식)가 시킨다”고 했다.
이제 그동안 숙어처럼만 쓰인 ‘국제적 망신’도 망신 속담의 범례에 들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적 망신은 학부모가 시킨다”가 적실하겠다.
‘개근 거지’라는 말을 들은 건 지난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둔 집사람 동료 사연을 통해서다.
여름방학을 앞둔 아이가 아빠한테 말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안 가?” 공직자 아빠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 말에 이렇게 답했다. “해외까지 여행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아이는 되물었다. “아빠, 방학 때 해외여행 한 번 안 다녀온 아이를 두고 친구들이 뭐라는지 알아?” “그런 말도 있어?” “응. 있어. 개근 거지!”
아이의 말을 들은 아빠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거지인데다 조어(造語)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설명을 듣고는 기가 찼지만 결국 지난 3년 아이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서 없는 돈과 시간을 쪼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초등 입학 4년 만에 처음 떠나는 여행길에서 아이는 시종 웃었지만 아빠는 미안한 마음보다 씁쓸한 마음이 더 컸다.
왜냐하면 아빠 생각으로는 아이가 등교에 충실함으로써 학년 말 개근 도장을 받는 것은 근면과 성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랄 때 마땅히 익혀야 할 습관이자 자랑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면과 성실의 징표인 개근이 집도 절도 없이 유리걸식하는 거지와 합을 이뤄 낙인이 된다니 대관절 무슨 이런 얼척 세상이 다 있나 싶은 것이다.
이 같은 사연을 급기야 외신도 다루었다.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 망신의 주범은 누구일까.
‘국제적 망신은 초등생이 다 시킨다’가 맞을까, ‘국제적 망신은 초등 부모들이 다 시킨다’가 맞을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현지시간) ‘개근 거지는 누구인가? 일하고 공부만 하느라 즐기지 못하는 한국 젊은이들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물질주의와 비교 문화가 이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개근은 전통적으로 미덕으로 간주되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 훈련과 의무에 충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과 휴식, 놀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는 방향으로 태도가 변하고 있다.”(SCMP)
한 사회는 그 사회 나름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어른을 보면 응당 인사를 한다거나, 좀 부족한 친구를 돕는다거나,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거나, 친구가 창피를 당하면 모른 척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은 모두 우리 미덕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미덕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거나 되레 악용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을 봐도 인사를 안 하거나 어른이 먼저 인사를 건네도 꿔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부족한 친구를,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기보다는 그런 친구와 친구의 상황을 악용해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다.
빡빡한 지하철에서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는 드물다. 임신부 전용석만이 임신부가 앉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회의 환경과 그에 따른 가치의 변화는 불문가지다. 그렇지만 변화는 이왕이면 아름다운 쪽, 바른 쪽을 지향해야 한다.
지키고 물려줘야 할 수 많은 미덕들을 구태라 여기고 우습게 여긴 채 성긴 것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장악한다면 남는 건 그야말로 ‘거지 같은 인생들’ 뿐이다.
‘월세 거지’(월세 사는 거지), ‘빌라 거지’(빌라 사는 거지) 같은 거지 같은 신조어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메탄가스 마냥 지구를 오염시킨 것도 근년의 일이다.
좁장한 땅에서 복작복작 살아 소갈딱지가 좁쌀영감 같은 대한인의 속살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살 필요는 없다. 치부는 감추라고 있는 법이다.
작금의 문제 본질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판친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미덕을 쉽사리 여기지도, 쉬이 버리지도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른대서야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개근 거지는 짐승의 울부짖음이지 사람의 말이 아니다. 개망신 그만 시키고 그만 당하자. 부끄러움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