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부고

by 심지훈

마흔다섯 된 생일 아침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집어들었습니다. 간밤 누님이 축하문자와 함께 식사비를 보내왔습니다. 장모도 이른 아침부터 축하인사를 주셨습니다. 이어 일반 문자 한 통이 도착합니다. 무심히 열어봅니다. 부고(訃告) 문자입니다.

생일 아침 받은 부고는 묘한 감상을 낳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 어느 분은 소천한 날이 되는 인생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 나이도 이제 살아온 날이나 살아갈 날이나 비등비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주변 분들의 연세가 점점 저 하늘과 가까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설프지만 또 막상 어설프달 수도 없는 감상을 안고 아침에 모친과 통화합니다. 모친은 어느 날보다 큰 목소리로 “아들, 생일 축하해”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내가 뭐한 게 있나. 어무이가 고생하셨지.” 모친 옆에서 듣고 있던 누님이 농조로 “그래? 그걸 알아?”라고 되묻습니다. “알지. 라온이 바론이 태어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왜 몰라. 물론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엄마가 두드리고 갓난애도 두드리고 하면서 귀부터 빠졌겠지만 애가 고통이 있는 줄은 내사 아나. 우리야 엄마 고통만 극심한줄 알지.”

그러면서 누님이 아주 시사적인 이야기를 던집습니다. “훈아, 너도 옛날 사람이데이.” “응?” “너도 이 집(고향집)에서 낳잖아. (외)할매가 산파로.” “내 탯줄도 (외)할매가 잘랐나?” 그러자 모친 왈 “풀 베는 꼬부라진 낫으로 (외)할매가 잘랐다”고 추념하십니다.

진즉 들어 안 이야기인데도 이번에는 참 생경하게 들렸습니다. 익숙한 것의 낯섬은 자식 낳고 사느라고 소실됐거나 새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것은 숱한 과거사를 더 이상 미주알고주알 부여잡지 않을 까닭이 되고, 또 반대로 숱한 과거사를 더 짙게 각인시킬 까닭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점점 더 정신없어지는 중에 저마다의 기억창고에서 부실부실 뜬금없는 실타래가 풀어지는 게 익숙함과 낯설음의 정체가 아닐까, 요즘은 그런 감상에 심심찮게 빠져들곤 합니다.

“엄마, 오늘은 참 묘한 날이야. 내 태어난 날 아침에 부고장이 왔네. 조문을 가야하는데 생일에 움직이는 건 좀 그렇고. 내일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누가 돌아가셨나.”

“곽대훈(전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의원 모친상. 그 어른 나한테는 참 고마운 분이잖아.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오시고, 내 결혼할 때도 사람 보내셨고, 내 출판기념회 때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잖아. 내 말은 ‘말이 곧 법’이라고 좋아하시는 분인데. 강단있고 담백하다고 말이지. 모친이 아흔여섯이시네. 와병을 오래하셨는데 새마을운동중앙회장 할 때도 금요일마다 대구 오셔서 주말에는 간병하고 올라가고 올 3월인가 양보석 선생님 <보석다관>에서 차를 한잔 하시자고 기별을 했더니 모친 병환 때문에 일절 만남을 안 가신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런데 참 묘한 게 하나 더 있어. 나는 조문은 주로 혼자 다녀오거든.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한국일보 7년 동안 곽 의원을 만날 때마다 유명상(대구한국일보 대표) 씨가 동석을 했단 말이야. 모양은 유 대표와 함께 가는 게 좋은데. 작년에 내가 유 대표 상대로 쓴 글로 유 대표가 나와는 두 번 다시 안 보겠다 했다니. 일단 문자는 넣어놨는데 모르겠네. 내 깜냥으로는 자기 유불리에 따라 말과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양반이니, 또 사람 감정이라는 건 흘러가는 물과 같으니 무뎌져 함께 가자고 할지도. 사람 인연이라는 게 무 자르듯 싹뚝 잘라지는 게 아니고만요.”

“그래 그렇지.”

유명상 씨에게 오전에 넣은 문자는 오후가 되도록 묵묵부답입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습니다. 유 대표와 함께 어울리던 공직자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둘이 합을 맞춘 듯한 답이 나왔습니다. “유 대표는 집에서 지금 출발한다는데요.” 오후 6시 무렵입니다.

조문을 혼자 다녀올까 하다가 장영훈(동아일보 대구경북본부장) 형이 떠올랐습니다. 올 3월 <보석다관>에서 마시려던 차는 곽대훈 의원, 장영훈 형, 양보석 선생 이렇게 넷이었습니다.

형이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점심 때까지 포항을 가야해서 오전에 조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만나 이른 조문을 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1시간 정도 앉아있을 시간을 마련해서 갔는데 조문 후 자리에 앉았는데 도무지 음식이 나올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형, 그만 나가자. 저 아주머니들 음식 내줄 생각을 안 한다. 그렇다고 상갓집에서 먼저 달라기도 그렇고.”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다 곽 의원과 입구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아니, 왜 음식을 드시지 않고.” 순간 형과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사님이 신발을 잃어버리셨카네.” 우리 전에 조문하고 막 돌아가던 김관용 전 경북지사가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조문객도 뜸한 한산한 장례식장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니, 그 일로 어떤 운동화 주인을 찾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잠깐이지만 어수선했습니다.

그 분위기 속에 머뭇대다가 말했습니다.

“형이 일정이 있어서요.”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양반들 남에 장례식장에서 와서 음식도 들지 않고 참 고약하네.’ 곽 의원이 설핏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요.

우리가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오자 김 지사가 신발을 찾았는지 뒤늦게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영훈이 형과는 동대구에서 차 한잔 마시고 조만간 소주 한잔을 기약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기차간에서 가만 생각했습니다. 곽 의원 모친은 장장 96년을 사셨고, 곽 의원은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모자간은 근 70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아마 곽 의원도 집에서 나서 집에서 낫으로 태를 잘랐을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옛날 사람’입니다. 저는 그 옛날 사람의 마지막 축에 있을 것입니다.

대전에 도착해 시청역 앞 국밥집에서 국밥과 소주를 한병 시켜놓고 곽 의원의 모친 고 김경남 어르신을 추모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옛날 사람도 갈 때는 오늘의 사정에 맞게 간다는 사실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의 두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