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박근혜 당대표 비서실장 역임) 씨가 2014년 10월께 청와대 외교안보팀을 일러 “청와대 얼라들”라고 해 유명해진 말이다. 얼라는 경상도 방언으로 어린아이를 뜻한다.
대구가 고향인 유승민 씨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하는 짓이 꼴같잖은 청와대 얼라들’을 명분으로 사실상 대통령 박근혜를 겨냥, 종내 박근혜 탄핵의 주역이 됐다.
그런데 유승민 씨가 ‘어째서 “청와대 얼라들”이란 레토릭을 구사했을까’ 하는 대목은, 그를 직접 본 사람이면 직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체구가 작달막해, 몸에 비해 허연 머리를 염색하면 ‘얼라’로 착각할 법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본디 그 자신의 꼴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제 우리집에 라온이 어린이집 동기 조준희네 네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러 왔다. 준희 동생 서희와 우리 막둥이 바론이는 한 살 터울로 어린이집 동문이다. 어제 어린이집에선 운동회가 열렸다.
라온이와 준희는 다른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서희와 바론이 운동회가 열린 날 ‘선배’ 자격으로 운동회에 참석했다.
이날 준희네는 엄마가, 우리집에선 내가 참석했다.
준희 아빠는 5시 퇴근이었고, 내 아내는 저녁식사 준비로 운동회에 오지 않았다.
두 가족이 6시에 우리집에서 만났다.
내가 준희네 가족을 초대한 이유는 지난 6월께 한 말 때문이었다.
준희 아빠는 현역장교인데 9월에 대전에 잔류할지 말지가 결정된다는 사연을 듣고, 만일 준희네가 원하는 대로 대전에 남게 되면 축하 식사자리를 마련하겠노라 한 것이다.
며칠 전 아내에게 준희 엄마에게 근황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원래 있던 부대에서 육군본부로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 봐야 대전권이었다. 그리 저녁식사 자리를 잡아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내가 ‘얼라’를 뚱딴지처럼 내세운 것은 준희 아빠의 처신을 보면서다.
준희 아빠는 간부(지휘관)지만 나보다 여덟 살이 아래였다. 그런데도 그의 처신은 나이 차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노회했다.
그는 얼라가 아니라 두 아이를 둔 아빠요, 동시에 건실한 어른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두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어른과 어른의 자격은 엄연히 별도로 존재한다.
보통 ‘무늬만 어른’의 처신은 이렇다. 남자든 여자든 우선 나이를 따진다. 그리 남자들은 형동생으로, 여자들은 언니동생으로 가른다.
이런 서열정리는 아마도 유교질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만의 특색일 것이다.
그런데 준희 아빠는 먼저 말을 편하게 하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준희 아버님’라고 칭할 때는 구태여 ‘아버님’ 혹은 ‘라온이 아버님’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리가 길어져 늦게 파하고 밤 12시쯤 “준희 아버님 라온이 아빠입니다. 잘 도착하셨나요?”라고 문자를 넣자, 다음날 아침 “네. 라온이 아버님 잘 도착했고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하고 답신이 왔다.
나는 내가 그 나이였던 37세에 쓴 <우리 동학>을 선물했다. 그의 아내에게는 <보통 글밥1>을 선물했다.
운동회 날이라 모두들 무척 피곤했을 것인데 즐겁게 지내주어 고마웠다.
오늘 우리 가족은 ‘집콕’했다. 라온이와 나는 낮잠을 잤고, 아내와 바론이는 일찍 잠들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라온이는 낮잠을 잤음에도 일찍 엄마품에 안겼다.
바론이를 먼저 재우고, 라온이를 재우기 전 잠깐 아내와 대화했다. 어제 남은 반찬을 갖고 소주 한잔하면서.
“준희 아빠는 어른이더라”고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서른일곱에 처신을 그리하기 어려워. 내 기자 후배들 보면 마흔인데도 아직 ‘얼라’야. 내가 밤 12시에 ‘준희 아버님’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라온이 아버님’하면서 답이 왔더라. 나는 그게 바르다고 봐. 내가 여덟 살 많은 게 대수인가. 우리가 학부형으로 만난 게 중요하지. 사회생활하다가 술 한잔했다고 호형호제하는 관계는 오래가지도 깊지도 못해. 서로 점잖고 예를 갖춰야 진중하게 오래가지.”
아내가 말한다.
“응. 준희 아빠 보니까 그 또래 우리 직장 사람들 떠올려도 분위기가 완전 다르더라.”
오랜만에 사회생활 제대로 하는 ‘젊은 어른’을 만나 뿌듯하다. 나는 소주를 채 비우지 못하고 서재로 들어 이 글을 짓는다. 보람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