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홍차를 끓이며

by 심지훈

차(茶)의 계절이다. 올여름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늦더위까지 기승을 부려 이제는 이 써늘한 날씨가 외려 정상인가 싶다. ‘스스로 그러한(잘하는)’ 자연(自然)이 미덥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 도로 더워지는 건 아닐지. ‘입동(立冬)의 서(暑).’ 소설 제목에나 어릴 법한 조화다.


짧은 가을을 실감케 하는 것은 샛노랗고 누렇고 붉은 나뭇잎들의 앙상블이다. 이 환상 아리아의 지휘자는 요즘 우리 라온이가 한창 입으로 되뇌는 “바람 풍(風)”의 그 바람이다. 거리 풍경이 참으로 곱고도, 곱고도, 곱다. 다른 어떤 말로 형용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곱고도, 곱고도, 또, 곱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나는 으레 차 도구들을 수선한다. 차 마실 채비를 하는 것이다. 올해는 20년 넘도록 마시던 보이차를 뒤로하고 녹차와 홍차를 마련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보이차는 벌이면 판이 화려해진다. 시간과 품이 제법 많이 든다.


해서 지난해 차솥(무쇠주전자)을 하나 마련했다. 추사가 그랬고 초의선사가 그랬고 다산 정약용이 그랬듯, 차를 앞사람의 방식으로 솥에 끓여 먹기로 한 것이다. 시간과 품을 아끼면서도 차 고유의 깊은 맛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올핸 운 좋게 좋은 홍차를 만났다. 다른 향을 첨가하지 않은 순수 홍차다. 나는 요즘 이 홍차에 흠뻑 빠져 있다. 새벽에 티스푼으로 두 스푼을 떠 망에 넣고 따뜻한 물을 500ml 넣은 뒤 곤로(전기핫플레이트)에다 팔팔 끓인다.


3~5분 정도 끓이면 차주전자 주둥이에서 기차의 기적과 함께 피어오르는 허연 연기처럼 김이 파하게 피어오른다. 그러면 이내 온 집안이 홍차 향으로 그득해진다. 이 향이 시쳇말로 죽여준다. 기가 막힌다.


고요함 속에 홀로 우리는 새벽 홍차는 울긋불긋 나뭇잎들이 들려주는 멜로디만큼이나 감미롭다. 차 끓는 소리와 차향이 다구와 어우러져 진지한 어떤 다짐을 만들어낸다. 색다른 영감을 준다. 내게 메모지는 다구의 일종이다.


작년엔 인덕션에 차를 끓였더니 약한 불에선 너무 오래 끓고 강한 불에선 너무 빨리 끓어 흘러넘치는 통에 매번 낭패를 봤다. 며칠 전 당근마켓에서 얻어온 곤로는 끓이는 차의 화룡점정.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리듬을 타며 끓어올라 차흥을 돋운다.


차향을 폐부 깊숙이 여러 번 들이키고 내쉰 뒤 수건으로 차솥 손잡이를 쥐고 유리숙우에 따르면, 그 검붉은 주홍의 차색이 또 한 번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도 어여쁠 수가 없다.


어제 아침엔 이 어여쁜 홍차를 텀블러 2개에 담아 집사람을 주었다. 출근해서 동료들과 ‘굿모닝 스트레이트 티’ 한잔하며 가는 가을을 잠시 즐기라는 의미에서였다.


점심답에 집사람에게 차가 어떻더냐고 물었다.


아내는 “좋다”고 했다. “동료들도 맛있다고들 했다”고 했다. 홍차를 마시며 이 귀한 가을을 품는 맥락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모양이다.


“자주 우려 줄 테니 겨울에는 자주 마셔.”


아내는 답이 없다.


아무렴 차를 깊이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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