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꿀은 기본적으로 꽃의 ‘넥타’다. 넥타는 꽃이 꿀을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낸 당분이다. 벌은 이것을 가져와 입안에서 오물대다 벌집에 뱉어낸다. 그러니까 꿀은 꽃의 넥타와 벌 타액의 결합물이다.
꿀 1㎏을 얻기 위해선 꿀벌이 560만 송이를 찾아 넥타를 채집, 벌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니 새삼 경이롭기 그지없다.
꿀의 경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꿀은 신기하게도 썩지 않는다. 식물에서 나온 폴리페놀이란 성분 때문이다. 이 때문에 꿀을 일러 서양에서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꿀의 성분을 보면 엽산이 풍부하며, 비타민C 비타민B 등 각종 비타민도 함유돼 있다.
꿀을 장복하면 항산화(세포 보호), 항암, 당뇨 및 심혈관에 좋다. 또 어린이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단 1세 미만 영아에게는 먹이면 안 된다. 보툴라누스라는 식중독 포자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보관하면 주변 환경에 따라 결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결정을 설탕 덩어리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설탕은 결정이 생기지 않는다.
2.
벌하면 떼(무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벌떼’라고 쓰면 틀린다. 벌떼와 마찬가지로 소떼, 양떼, 쥐떼, 개미떼, 파리떼, 메뚜기떼, 송사리떼도 모두 붙여 쓰면 틀린다. 개떼, 모기떼, 강도떼 정도가 합성어로 인정된다.
매주 목요일 치르는 이번 주 라온이 받아쓰기 8회차 8번 문제가 ‘양 떼를 몰고’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1번은 학교, 1번은 집)까지 총 4번 연습한 뒤 목요일에 시험을 보는데, 라온이가 유독 ‘양 떼’를 연거푸 틀렸다. ‘양떼’로 쓴 것이다.
나도 처음엔 ‘양떼’를 왜 띄어쓰지하며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의 설명도 마뜩잖다. “무리를 의미하는 떼는 띄어 쓰고,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붙여 쓴다”는 것이다. 개떼는 그런 비유가 되고, 양 떼와 벌 떼는 그런 비유가 안 된다는 것인데, 말장난도 이런 하급이 있나 싶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 생태계가 붕괴돼 지구가 사라질 것이란 무시무시한 예측이 나돈 건 근년의 일이다. 매년 봄이 되면 ‘꿀벌 집단폐사’ 소식이 으레 뉴스에 오른다.
꿀벌은 꽃가루를 옮기며 지구 생태계를 지킨다. 때문에 꿀벌의 개체수가 급감하는 건 인류에게 분명 심각한 경고다. 그 대책으로 소형 드론(drone)을 활용해 인공 수분을 하는데, 드론의 뜻이 ‘수벌’이다.
그런데 수벌의 임무는 여왕벌(queen bee)과의 교미이다. 부지런히 꽃가루를 옮기는 건 암벌이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벌은 ‘일하지 않는 벌’이라고 명시돼 있다. 둘째 뜻이 ‘웅웅거리는 소리’이다. 인공 수분 도구에 실제 가루받이에는 1도 공헌하지 않는 수벌의 이름을 딴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꿀벌의 세계에도 남존여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웅웅거리는 소리’에 천착한 결과인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자라면 비극적 코미디고, 후자라면 암벌은 어디 무음 날개를 가졌던가 싶어 실소가 난다.
언어는 이성보다 직관을 우선한다. 우리 라온이는 직관에 따라 양의 무리를 ‘양떼’라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짜장면’의 직관을 무시하고 얼마나 ‘자장면’이라고 우기고 살았던가.(짜장면은 2011년 8월 31일 자장면과 복수 표준어가 됨)
그런 걸 떠올리면 양떼, 벌떼, 소떼 같은 동식물의 무리, 그리고 구름떼 같은 자연 모양의 무리를 하루라도 빨리 합성어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직관을 이런 사소한 걸로 해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