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침

by 심지훈

간밤 손님을 치르느라 가족 모두 피곤한 아침을 맞았다. 나는 오전 7시에 일어났다가 도로 자리에 누웠다. 바지런둥이 라온이는 방과후 로봇수업 시작 30분 전에야 일어났다. 막둥이는 아직 별나라 여행 중이고 그 곁에 엄마가 누웠다. 엄마와 막둥이는 형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나 일어날 것이다. 내겐 주말 이 아침이 아주 달콤한 시간이다. 자유롭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그걸 참말 느낀다.


라온이를 학교에 배웅하고, 이웃 아파트에 책을 받으러 걸어갔다. 경비실에 맡겨놓았다는 문자를 받고 돈을 입금한 건 어젯밤이었다. 예정대로라면 경비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책은 없었다. 당근톡으로 전화를 넣었다. 아침 9시 2분 전인데도 판매자는 묵묵부답이다. 1번 더 전화를 시도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우리집 아줌마도 정신이 없는데 이쪽 아줌마도 정신이 없구만’하고 뒤돌아섰다.


간밤 손님이 사온 음식에서 나온 플라스틱쓰레기에다 우리집에서 기본적으로 나온 플라스틱쓰레기가 베란다에 산을 이루었다. 이 쓰레기들이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 아닌가. 바다생물들이 이걸 먹고 죽어나간다는 것 아닌가. 떠올리면 끔찍한 일이다.


내가 주말 아침 그중 먼저 하는 일은 일주일간 산적한 쓰레기를 해치우는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산뜻하다. 매 주말 이른 아침 재활용쓰레기를 내버릴 때마다 나는 체증이 가시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음식물쓰레기는 옵션.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13년째 내 과업이다. 오늘은 여느 주말에 비해 과한 쓰레기가 나왔다. 그걸 낑낑대며 문밖으로 옮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아저씨 1명, 아줌마 1명이 타고 있다. 4층 리모델링공사로 잿빛 스크래치보드를 붙여놓아 4명만 타도 복작복작한 지경이다. 아줌마는 쓰레기를 한아름 들고 있다. 나와 우리집 쓰레기까지 합세하면 잿빛 엘리베이터 속은 그야말로 쓰레기장이 될 터였다. 먼저 내려가시라고, 다음에 가겠다고 했다. 아줌마는 괜스레 미안해 한다.


양보를 하고 기다리는데 아래층부터 층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퉁퉁 소리가 난다. 택배기사가 택배박스를 던지는 소리다. 그리 꼼짝없이 15층까지 올라갔다 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이내 앞집 중3 여자아이가 나온다. 학교가는 길이다. 사춘기 민감한 시기의 아이, 이 아이는 예의가 아주 바르다. 인사를 밝게 잘한다. 이 아이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쓰레기더미를 보고 멈칫한다. 눈치가 필요하다.


“먼저 내려가야겠다.” “네.” 택배기사가 15층에서 내려오는 중. 그 아이와 쓰레기 사이에서 뻘쭘하게 서 있다. “비가 와. 우산을 챙겨가.” “아, 네.” 아이가 다시 현관문을 연다. 애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왜?” “비가 온대. 우산.” 아이가 분홍우산을 챙겨 나온다. 그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끌차를 쥔 택배기사와 할머니가 있다. 아이 하나 타면 족할 곳. “먼저 가.” “네.”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기 전에 정중하게 목례를 한다. 나는 손을 흔든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 이번엔 잿빛 스크래치보드뿐. 플라스틱쓰레기 2박스에 종이쓰레기 2박스 그리고 비닐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여차저차 옮긴다. 낑낑대며 아파트 현관을 나가는데 여자아이가 겸연쩍어하며 들어온다. “왜? 뭐 빠뜨렸니?”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네.” “결국 다시 올라가는구나.”


‘너나 나나 오늘 일진은 별로네.’


재활용쓰레기를 버릴 때 최고의 도우미는 끌차다. 이 끌차가 있고 없고에 따라 단번에 옮기느냐 2~3번에 옮기느냐가 판가름난다. 나는 매 주말 아침 임무를 마친 이 끌차를 제자리에 두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도 끌차 덕분에 단번에 그 많은 쓰레기를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음식물쓰레기에서 음식물이 찔끔찔끔 샜다. 화단 동백나무에 기대 곧 날아오를 것 같은 대비를 가져다가 쓴다. 대비를 도로 제자에 둔다.


다시 잿빛 스크래치보드가 사방에 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오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계획대로라면 사온 책 2권 목차를 쭉 훑은 다음 택일해 1권을 달콤하게 읽기 시작했을 텐데.’ 귀한 아침 시간 아쉬움이 크다. 이 정신 없는 판매자는 [글밥]이 마감될 때까지도 답이 없다.


오늘은 이래나저래나 기다리는 날인가 보다, 기다리라는 날인가 보다. 서재 북편 창가의 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본다. 흐리다. 내 마음처럼 탁하다. 오늘은 자중할 수.(25.8.9)


*아, 이 아줌마 아침부터 귀가 근질근질했나. 방금(10시 38분) 연락이 왔다. 죄송하다고, 집으로 갖다주겠다고. 영 틀린 날은 아닌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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