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난중야록> 편저자 조강태 선생님 작업실로 내 저서 <상주동학 이야기>를 소포로 부쳤다. 변경(邊境)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쾌가 맞다고 보았다. 선생님은 9월 1일에 나온 <난중야록> 2권을 보내주시기로 했다. 어제자 [글밥]은 선생님의 청으로 ‘난중야록’ 다음카페에 게시했다.
통상 작가는 새 인연과 독특한 대면식을 치른다. 자기 저서에 낙관을 지르고 간단하게 마음을 적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통성명과 함께 이뤄지기도, 통성명 전에 이뤄지기도 한다. 이번 경우 조 선생님은 인천에, 나는 대전에 살기로 통성명 전에 ‘작가의 대면식’부터 이뤄졌다.
낙관(落款)은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의 또 하나의 예술행위이자 예술양식이다. 낙관은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름이 박힌 도장이면서도 도장과는 다른 무게와 분위기를 지닌다.
낙관에는 통상 작가의 이름이나 호(號), 당호(堂號)가 새겨 있다. 도장이 둥글다면 낙관은 네모지다. 물론 타원형과 둥근 낙관도 있다. 또 도장은 나무에 새기는 반면, 낙관은 옥이나 돌에 새긴다. 물론 옥도장도 있다. 낙관이 도장이라는 이유다.
도장은 나무에 새기기로 ‘판다’고 하지만, 낙관은 옥과 돌에 새기기로 ‘각(刻)한다’ ‘새긴다’ 고 한다. 또 도장은 ‘찍는다’고 하지만, 낙관은 ‘지른다’고 한다. 둘 모두는 ‘박는다’고 한다. 마치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many를 놓고, 셀 수 없는 명사 앞에 much를 놓고, 둘 모두에 lots of(혹은 a lot of)를 놓는 것과 같다.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원래 완성한(落成) 서화 작품에 작가의 이름, 호, 날짜 등을 기록하는 행위 혹은 기록이었다. 관지(款識)는 도장을 찍는 방식(음각과 양각)을 말한다. 음각을 주문, 양각을 백문이라고 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관지를 찍는 함의는 여러 가지였다. 첫째가 의지요, 둘째가 정성이요, 셋째가 신용이었다.
의지라면 작품의 자부심이요, 정성이라면 예의일 것이다. 신용이라면 이 낙관으로써 당신과 나의 신용을 담보한다는 뜻이겠다. 하여 작가가 낙관을 질러 작품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정성과 신용 모두를 당신에게 걸겠다는 뜻이다. 그저 요식행위가 아닌 것이다.
예컨대 내가 <보통글밥2>를 내고 [글밥] 손님 200명에게 선물을 보낼 때, 낙관을 지르지 않고 공백으로 보낸 까닭은 200명 모두에게 내 의지와 정성과 신용 모두를 다 걸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해서 구태여 서명을 받겠다는 분께만 서명을 해주었다.
다만 200명만 <보통글밥2>를 소장하게 될 것이어서 따로 낙관을 지르지 않아도 뒷날 그 쓸모가 있을 때 그 쓰임을 능히 해내리라 여겼다. <보통글밥2>는 언제고 귀히 대접받을 것이다.
조강태 선생님과는 25분 통화했다. 통화 말미에 “저는 <야록>도 야록이지만, 선생님의 이순신 후손으로서 70년생에 관심이 있습니다”고 분명히 해두었다.
나는 근년에 지역사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지역사는 드는 품에 비해 재재롭게 시비가 많고 성가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강태 선생님의 사연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언제고 누군가 내게 “심 작가에게 자서전을 써달라고 하면 비용은 얼마나 듭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미니멈 5,000, 맥시멈 1억입니다”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되물어 “돈 있는 사람은 1억을 내야 할 것이고, 돈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 인생 정리에 5,000만원은 그저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남에 자서전 청탁을 수 번 받았다. 청탁자들은 모두 날로 먹겠다는 심산이었다. 자서전 시장통에선 500만원이면 이른바 선수가 붙는다고 한다.
최근 서울을 갔더니, 불교방송 선배가 문재인 정부 때 연설비서관을 지낸 인사가 대필작가로 산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건당 500~1,000만원을 받는다 했다. 그래도 재미가 쏠쏠하단다.
내가 그랬다. “그 재미 얼마나 갈까요. 자기 영혼을 갈아 넣어야 겨우 1,000만원을 번다는 건데, 연설비서관까지 지낸 양반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봅니다.” 선배의 침울한 한마디. “그러게 말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할 일과 하지 말 일을 잘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 또 한번 다짐한 날이었다.
자서전 대필은 여러 가지 폐단을 낳는다. 대필작가의 영혼이 시나브로 썩는 건 물론, 사실 아닌 소설을 버젓이 짓기도 해야 하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빈 기억을 채우기도 해야 한다. 자서전은 필연적으로 구라다. 제아무리 유명한 자의 것일지라도, 춘추필법으로 썼다는 <스티브 잡스>라 할지라도 구라가 태연히 암약하는 게 자서전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느냐. 인간은 자기 이야기를 좋게 남기려는 관성(?) 혹은 본능은 차치하고, 구술자 본인의 사고체계, 논리체계가 엉성한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진 ‘기억의 왜곡’은 사실, 진실, 정의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탄생케 한다.
요약하면 자서전 류의 가장 큰 문제는 구술자 스스로가 대개 자기 인생을 조리 있게 들려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앞뒤 정황이 열 마디도 못 가서 우왕좌왕이다. 좀 논리를 갖추었다 싶으면 재미라곤 털끝만치도 없고, 입담이 구수하다 싶으면 논리가 엉망이다.
결론은 자서전은 웬만하면 남기지 않는 게 좋다. 남겼다면 그건 백이면 백 사쿠라다.
조강태 선생님 같은 소설가라면 어떨까.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유려한 문장을 구사할 줄 알고, 게다가 구수한 입담까지 가진 구술자라면 어떨까. 한번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조 선생님과의 25분 통화는 5분처럼 장쾌하게 흘러갔다.
이른 아침 이순신 장군이 청년 시절 살았고, 조강태 선생님의 모친(이순열 여사)이 나고 자란 현충사 경내 목조 건물 사진(1940년대 모습)을 찾아봤다. 어제 통화를 떠올리면서.
“선생님 <난중야록>이 소설이라고 하셨는데, 허면 임단은 가공인물입니까?”
“아닙니다. 실존인물입니다.”
“허면 <야록>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와는 별도로 <야록>을 남겼다는 것입니까?”
“이순신 장군과 임단이 공동저자입니다. <야록> 전7권 중, 1~2권은 임진년의 기록을, 3권부터는 <임단록>이라고 해서 임단이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받아 적은 기록입니다. 노비인데도 임단이 한문을 할 줄 알았던 겁니다. 임단의 눈으로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도 영특하니 이순신 장군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임단이 그걸 받아 적은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부엌 시종 질임(質任)의 딸 임단(任丹)의 관계가 어쩌면 조강태 선생님과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또 어쩌면 <미움받을 용기>의 공저자 기시미 이치로(스승)와 고가 후미타케(제자)의 관계가 조강태 선생님과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아침이었다.
/심보통 2025.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