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를 찾아서

by 심지훈

이쯤 되면 꿈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종일 ‘벼리’를 찾아 헤맸다. 벼리는 이 책에도 저 책에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나는 보았고 느꼈었다. ‘벼리라는 낱말을 이리도 맛깔나게 풀어놓은 책도 다 있구나. 그런데 의외의 책이네.’ 그게 문득 생각나 벼리를 풀어놓은 문장을 쟁기려 들었다. 늦은 밤까지 찾았는데 흔적도,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난데없는 지네꿈을 꾸었듯 헛꿈을 꾼 것인가. 어딘가 박혀 있다면, 글의 맥락은 이러했다. ‘벼리가 좋아야 한다. 벼리란 0000이다. 우리는 벼리가 시원찮아서….’ ‘0000’의 풀이가 맛깔났다. 이 기억을 토대로 하면, 역사책 속에 등장한 낱말일 성싶은데, 펼쳐놓은 역사책과 근래 읽은 역사책은 물론 고전 등 읽고 있는 책 10여종을 아무리 들추어도 오리무중이었다. 올여름 화룡(火龍)과 싸우느라 기가 쇠한 탓인가.


벼리는 어부의 언어.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놓은 줄이 벼리. 그걸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 민물고기나 바닷고기를 잡아보지 않은 산사람이나 땅꾼, 농군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때문인지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지금은 거의 사장됐다.


이 벼리는 언제부턴가 은유적으로 사용됐다. 그물에 벼리가 없다면 그 그물은 무용지물. 그로부터 파생된 게 일·글의 뼈대란 뜻이다. 기둥, 골자, 줄거리와 동의어다. 우리가 흔히 ‘대강 급한 불은 껐다’고 할 때 그 대강(大綱)이 벼리를 가리키는 한자어다.


벼리의 활용은 유서가 깊다. 내가 접한 바로는 일연의 <삼국유사>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군위 인각사의 비문에서인지 벼리가 분명 활용됐다. 조선시대까지 고서(古書)에 벼리는 통용됐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벼리는 활용가치를 잃은 게 아닌가 싶다.


벼리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도리를 이르는 강상(綱常)처럼 아주 꼬장꼬장한 말이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던 딸깍발이와 조화를 이루는 말이다. 일제 36년 동안 쥐어박히고 뚜들겨 맞고 눈칫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아마도 숱한 벼리를 잊고, 잃어버렸다.


어젯밤은 온 책을 다 뒤졌건만 찾지 못한 벼리 탓에 짜증 가득 잠자리에 누웠다. 벼리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바짝 서 잠도 오지 않았다. 말똥한 중에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까짓 내가 벼리로 명문을 짓자.’ 그리 나온 글이 아랫글이다.


▪벼리

여보게, 그물은 씨줄과 날줄이 있어야 촘촘한 망을 짤 수 있다네. 촘촘해야 고기를 빠뜨리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게지. 헌데 말이야, 그물에서 씨줄과 날줄은 단 하나의 줄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참으로 묘한 이치지. 씨줄과 날줄을 잡아주는 마지막 맨 위의 단 한줄. 이 줄로써 그물은 그물이란 이름을 얻고 가치를 지니게 되지. 그 단 한줄을 어부들은 벼리라 부른다네. 벼리를 잡아당겨 그물을 늘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고기를 낚아 올리지.

여보게, 벼리는 흡사 집의 기둥이요, 사람의 등뼈요, 글월의 중추일세. 기둥과 등뼈와 중추가 빠지고서야 집이, 사람이, 글월이 거뜬히 서는 법은 하늘이 두 쪽 난대도 없는 법이라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인생의 벼리를 무시하고 간과하고 우습게 여기며 살면 언젠가는 고꾸라지고 말지. 삶의 벼리란 올곧은 정신이 아니겠나. 요즘 대한(大韓)을 보면 벼리 없는 나라의 온상이 아닌가 싶네. 정신 나간 자들이 너무 많아. 변칙과 파행, 거짓과 기만, 부패와 타락이 일상이 된 나머지 건건 경악할 일들이 어린애 장난처럼 취급되는 것, 해서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는 것, 이런 광경(狂景)은 살다 살다 처음일세. 자성은 없고 조소만 있지. 남의 불행에 침묵하기는커녕 낄낄대며 히죽대기 바쁘지. 악날이 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니, 쯧쯧. 벼리가 없는 그물, 벼리가 없는 가옥, 벼리가 없는 글월, 벼리가 없는 인간, 벼리가 없는 나라는 그 자체가 죽은 것들이네. 썩은내가 진동하는데 그걸 알아채는 자가 없어. 썩은내에 중독된 나라, 아니라면 펼쳐질 수 없는 터, 암.

/심보통 2025.9.12.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가의 대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