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란과 페페

by 심지훈
목부작 풍란과 아몬드페페.

돌(石), 난(蘭), 차(茶). 이것들은 한때 고급취미의 대명사였다. 집집마다 무슨 석(石)이라 해서 희귀 돌을 가져다 놓고 신주 모시듯 했다. 난도 무슨 난(蘭)이라고 해서 첫사랑 대하듯 애지중지했다. 차는 주로 보이차가 돌, 난 등과 함께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졌다. 모두 1점당 최고가가 1억원을 호가하던 시절의 얘기다. 이들을 일러 골동(骨董)이라 한다.


한국 외환위기를 기해 이 철옹성 같던 고급문화들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 돌로 집을 떨어먹은(표준어는 털어먹다) 사람, 난으로 집 한 채 날린 사람, 보이차로 돈 버리고 몸 버린 사람은 주변에 흔해졌다.


IMF는 소위 골동 애호가들을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파락호로, 브로커로 전락시켜버렸다. 골동거리의 종사자, 관계자, 방문자는 구조적으로 음지의 사람들이 돼버렸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여사였던 그 거리에 돈은커녕 파리새끼 한 마리 날아들지 않았으니 먹고살려면 호구를 잡아 호구지책을 삼아야 했다.


어제 목부작 풍란을 집에 들였다. 풍란은 난의 한 종류고, 목부작(木附作)은 고목에 붙여 키운다는 뜻인데, 한자어를 풀면 ‘고목에 붙인 작품’이란 뜻이다. 돌에 붙이는 석부작(石附作), 숯에 붙이는 숯부작도 있다. 과거 영광에 비할 바 못 되지만, 꽃집에서 석부작은 50~100만원을 주어야 살 수 있다. 중고마켓에서도 석부작은 20만원을 호가한다. 목부작은 그보다 못한 10~15만원에 거래된다.


부작 풍란이 돈 남고, 시간 남는 호사가들의 취미로 한때 인기를 구가한 것은, 개성을 넘어 예술성을 발휘하고 더러 ‘선생님’ 대접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목과 돌은 가공하지 않고 생긴 그대로를 갖고 풍란을 부작한다.


풍란은 식물 중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아침에 일이나 분무기로 뿌리와 잎에 물을 뿌려주면 된다. 물이 번진 돌, 물이 밴 나무는 날마다, 또 때때로 다른 감흥을 준다. 게다가 1억원을 호가하는 난의 소장자라니, 매일 아침 고급벤츠를 감상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고급은 뭐든 ‘보는’ 게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다.)

부작은 난과 돌, 목, 숯만 꾸미는 게 아니다. 좌대도 꾸민다. 내가 소장한 목부작 풍란은 무쇠솥을 화분 삼고, 둥근 삼각발을 좌대로 했다. 삼각발도 쇠요, 화분도 쇠라 모양도 모양이지만 무게도 상당하다. 기성 제품도 아니고 이 목부작을 위해 별도의 무쇠솥 화분과 쇠좌대를 제작했다.


고목도 맵시가 남다른 것이, 양쪽으로 갈라져 사방 보는 느낌이 다르다. 풍란은 2주(株)를 붙여 키웠는데, 원주인이 1주를 죽였다. 죽은 1주는 제거하고 1주만 다시 고정했다. 1주의 풍란도 뿌리는 2개였다. 2주처럼 보이게 실을 감아 고정했다.


원주인이 물을 오랫동안 주지 않아 고목 주변으로 둥글게 깔린 이끼도 죽은 상태다. 비록 이끼의 초록은 생명을 잃어 밤색에 가깝지만 이끼는 걷어내지 않았다. 분무기를 뿌리면 그런대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풍란 옆 이끼 땅에 작은 백자에 수경재배 중인 아몬드페페를 두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분위기에 흰 백자를 두어 밝음을 가미했다. 초록의 아몬드페페는 줄기식물이라 무쇠솥 화분 아래로 흘러내린다. 페페는 죽은 풍란 1주를 대신했고, 이제 풍란은 싱싱한 새 친구를 얻었다.


30년 전 호사가들도 나처럼 놀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놀이에 너무 많은 돈을 썼다. “돌은 돌이고, 난은 난이고, 차는 차다.” 한 시절 누려볼 것 다 누려본 어느 호사가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않는 사람은 늘 후과를 남긴다.

/심보통 202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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