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봉 스님의 문장

by 심지훈

글을 맛깔나게 쓰려면 한량기(閑良氣)가 좀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짓궂게 놀아본 이가 리얼하게 담대하게 쓸 수 있다. 물건을 훔친 경험, 싸움을 뻔질나게 한 경험, 엄마 속을 무진장 썩인 경험 그리고 남들과 다른 경험이 많을수록 글의 밑천은 든든해진다. 경험은 시나브로 지(知와 智)로 들어앉는다.

여기다 기질이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행동가적이면 글을 요령껏 잘 쓸 수 있다. 말이 곧 행이 되는 사람은 열정적이고 매사 정진적이다. 노력파가 아니 될 수 없다.

익산 미륵산 사자암 주지 향봉 스님은 한량기와 행동가의 기질 둘 모두를 후천적으로 갖추고 선천적으로 갖고 났다. 2년 전 낸 에세이집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스님은 여기서 조계종의 상징적 인물 성철 스님과 당대 내로라하는 스님의 잘못된 행태를 꼬집었다. 스님의 타고난 기질로 스님의 한량기 배인 문장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은 그나마 표현이 정제돼 있지만, 책이 나오고 가진 유튜브 인터뷰를 보면 직설적이다.

성철 스님은 서울대 나온 출가자만 제자로 받았다는 것과 성철 스님을 위시한 당대 이름난 고승들이 사부대중에게 비친 모습과 달리 만날 비싼 잣, 고급 마, 구운 은행으로 호식하던 모순을 까발렸다.

향봉 스님은 그런 선배 스님들의 행거찮은 행태에 똥물을 뿌려대고 “먹거리는 대중이 평등해야 합니다”하고 사자후를 토했다. 1960년대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 ‘성골스님들’의 꼴불견에 반기들며 한 행동이었다. 향봉 스님에 따르면 그 잘난 서울대 출가자들 중 구족계를 받아 중이 된 후 여적 중노릇하는 스님은 없다. 모두 속세로 돌아가 등따시고 배부른 삶을 살고 있다. 예서 “성철 스님이 깨달은 분인가”까지 나아간다.

향봉 스님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불교신문 편집국장이 되어 부사장까지 올랐다. 오로지 결단과 실행과 노력으로 이룬 삶이었다. 1970년대 초 그는 글 한 줄 써본 적 없지만, 불교신문 사장 영암 스님을 찾아가 담판을 내고, 편집국장 서리가 되어서는, 베테랑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고정칼럼을 맡는다. 실력을 늘리기 위해 매주 1회씩 의무적으로 글을 쓴 것이다.

그리 모은 글로 엮은 에세이집 <사랑하며 용서하며>는 60만부가 팔렸다.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을 보니 향봉 스님의 산문은 고루 매끄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문장을 밀고 가는 특유의 기(氣)와 넉살이 이 점을 상쇄하고 때론 능가한다.

학창 시절엔 학급 반장도 도맡았지만, 싸움도 늘 1등이었다. 내일모레 여든을 앞둔 스님. 지금도 신도 셋이 모이면 향봉 스님의 유별난 성깔을 두고 뒷담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제 갈 날이 가까운 스님의 꼴에서도 “젊어서 지지리도 못생긴 수상쩍은 얼굴이라 숱한 오해를 받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쉬이 이해간다. 기질과 경험이 남다른 스님은 “신도 셋을 단합시켰으니 이 또한 간접 보시”라고 농을 친다.

해발 380m의 가파른 산 위에 자리한 사자암에는 상좌도, 공양주도 없다. 스님 혼자 밥 짓고, 글 짓고, 책 읽고, 거닐며 산다. 스님의 농은 시시껄렁한 농이 아니라 내공이다.
/심보통 2025.9.15

*향봉 스님 처녀작 <사랑하며 용서하며>는 1979년 초판 발간 후 1991년 증보판을 거쳐 33년 만(2024년)에 복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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