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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 Oct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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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렇다.

오늘 나는 뭔가에 홀린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하우스푸어인 내가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한순간에 결제할리가 없으니까.


10월의 첫날,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머리와 허리를 바닥에 쿵! 부딪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때 출혈도 골절도 없었지만 어쩌면 머리 어딘가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2년 전 이사하고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10분도 못 걷고 누워있어야 했던 그것이 원인이 된 걸까.

어쩌면 더 먼 먼 옛날, 내가 태어날 때 이미 나는 오늘 같은 날은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오늘로 돌아오자면 그렇다. 나는 오늘 덜컥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고 거금을 지불하며 PT를 받기로 계약했다. 200만 원을 지불함으로써 나는 그곳에서 7개월간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고 37회의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나는 돈을 내고 내년 5월까지 나 스스로를 그곳에 묶어버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찬바람 불면 콧물부터 흐르고, 일교차가 커지면 아침저녁으로 재채기를 달고 살았다. 오래 달리기는 만년 꼴찌였고 오후 4, 5시만 되면 소파에 늘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도 학교 끝나면 집부터 와서 낮잠부터 잤다. 밥도 느리게 먹어서 같이 먹기 시작해도 항상 꼴찌로 먹고 그나마도 반 가까이 남기기 일쑤였다. 그나마도 혼자가 되면서 귀찮아서 대충 해 먹고 말거나 점심은 잘 건너뛰기도 한다. 그야말로 난 내가 건강하고 힘이 넘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지난해, 우연히 수영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성인 신기초반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중간에 쉬고 어쩌고 하여 우여곡절 끝에 자유형을 하고 평형에 들어갔을 때 사건이 일어났다. 팔을 내뻗어 물을 가르는 순간 뚜두둑하고 어깨에서 소리가 나더니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딱히 뭐다라고 하긴 어려웠던 것 같은데, 그냥 근육, 인대 손상이었던듯하다.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그냥 수영을 쉬라는 말을 들었다. 도수치료도 몇 번 받았지만 어깨는 팔을 멀리 내뻗을 때마다 아직도 찌르르 통증이 온다.


그래도 수영을 좀 다녔다고, 그동안 도파민이 어느 정도 분비되었나 보다. 같이 사는 사람이 나보고 요즘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내가 신경질 적이고 기운 없어 보인다고 몇 번 걱정하는 소리를 했다. 나도 안다. 요즘 참 계절적인 원인까지 겹쳐서 우울하고 기운이 없다. 그래서 결국 나의 무의식은 이 돌아온 10월에 사고를 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10월에 우연히 시작한 몇몇일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우들이 있었다. 지금 같이 사는 사람도 10월에 만났고, 10월에 가톨릭 예비신자로 등록해서 결국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또 10월에 내 인생에 다시없을 덕질과 글쓰기를 시작하게 해 준 게임을 만났다. 10월은 그러고 보면 참... 나에게는 특별한 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부터 PT를 받기로 했다. 1시간 반동안 상담을 했고, 예상도 했지만 역시나 내 몸은 좀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수준이다. 인바디에도 보이는 것처럼 체지방률 30퍼센트가 넘는, 비만보다 위험하다는 마른 비만이고, 기초 대사량이 1000을 간신히 넘는 저질체력이다. 사진을 찍으면 확연히 보이는 어깨 불균형과 골반 불균형... 허리와 목은 원래 아프다가 요즘은 오른쪽 무릎까지 자꾸 아파와서 이러다 진짜 일찍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위기감이 되어 내 마음속에 불안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영업하시는 분은 그 불안을 잘 건드렸고 나는 거기 홀라당 넘어간 것이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200만 원으로 나중에 2천만 원, 2억 원의 병원비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그러려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겠지. 지금은 운동에 대해서는 너무 초보라 어린이집 다닐 수준이지만 기왕 이렇게 시작한 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지. 이 운동이 내가 지치거나 질리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운동도 공부해야 하는 거겠지? 여러 운동과 동작을 외우고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가면서 해야 하는 거겠지. 금요일 만나기로 했지만 설레고 떨리고 좀 무섭다. 정말 이런 피트니스센터에서 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A부터 Z까지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당장 어떤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pt선생님에게 전화로 "운동화는 뭘 신어야 하나요?" 물어봤더니 황당해하셨지만, 아마 그분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또 나는 나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나를 데려가려 하나보다.


이번에는 꼭 건강해지고 싶다.


오늘이 그 첫 번째 새로운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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