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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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주, 일주일간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여행 다녀왔다. 7박 8일, 직장인이 낼 수 있는 비교적 긴 휴가였다. 6살 아들과 함께 했다.
호텔마다 수영장이 있고 바다가 가깝다. 미취학 아동은 물만 있으면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5성급 호텔이 20만 원대로 가성비가 좋다. 음식과 교통이 저렴하다. 마음껏 먹고 마셨다. 어딜 가든 택시로 안전하게 이동했다. 한국 사람이 많아 여기가 가평 펜션인지 외국인지 헷갈리는 점만 빼고는 괜찮은 여행지다. 아이 동반 여행의 좋은 조건을 갖췄다.
베트남은 10년 전에도 가봤다. 호찌민에서 시작해 나짱까지 가는 남부 종단 여행이었다. 긴 일정이었는데 크게 준비한 건 없었다. 가이드북 하나면 충분했다. 공항에 내려서 어떻게 시내에 가는지, 호찌민에서 여행자 버스는 어떻게 예약하는지, 괜찮은 숙소는 어디에 있는지, 가이드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특히 지도가 유용했다. 여행지 주요 위치에 대한 상세 지도가 있었고, 이 지도에는 관광명소, 맛집, 추천 숙소의 위치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시계에 부착된 나침반과 함께 지도 속 명소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10년 후, 베트남으로 가는 항공기에서 가이드북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에 내려서도 물론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하나에 5천 원도 하지 않는 유심칩을 사서 바꿔 끼웠다. 구글맵에 접속해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daum에서 ‘다낭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을 검색했다. 무거운 책 대신 스마트폰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여행자가 가이드북을 가져가지 않는 이유
여행자들이 가이드북에 기대하는 정보는 크게 4가지다. 1) 여행지 정보 2) 지도 3) 식당 4) 숙소. 이를 스마트폰이 주는 정보와 비교해보자.
우선 지도부터 살펴보면, 국내 여행은 카카오맵와 네이버 지도가, 해외여행은 구글 맵스(Google maps)와 시티맵투고(City map to go) 등의 지도 앱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한다. GPS 위치 추적으로 내가 어디 있는지, 내 근처에 어떤 관광 명소와 맛집이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구글 맵스의 진가는 해외에서 발휘된다. 타기 어렵다는 버스도 구글 맵스의 대중교통 검색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동남아에서 택시 기사들이 빙 둘러가는 사기를 치려해도, 구글 맵스를 켜는 순간 나쁘게 먹은 마음을 멈춘다.
식당 정보와 숙소 정보를 제공하는 앱들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익스피디아(Expidia), 호텔스닷컴(Hotels.com) 등의 앱은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비교적 솔직한 후기 정보를 제공한다. 여행자는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이 앱에서 직접 숙소와 식당을 예약한다. 가이드북을 보고 따로 검색하거나 연락해서 예약하는 방식에 비해 훨씬 간단하다.
특히 식당과 숙소는 생존 주기가 짧다. 가이드북에서 괜찮다고 소개한 식당이나 숙소가 아예 없어지거나, 초심을 잃고 좋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들도 많다. 여행 가이드북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또한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아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확한 최신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자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여행지 정보는 아직 가이드북이 역할을 하고 있는 영역이다. 지도와 식당, 숙소 등은 최신의 정보가 중요하지만 여행지는 최신 정보보다는 정확하고 정제된 정보가 중요하다. 여행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은 책을 살펴본다. 정보 중심의 여행 가이드북보다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철학 등을 다양하게 담은 책,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에 대한 수요가 높다.
최근엔 여행지 정보까지 제공해주는 앱이 등장했다. 해외여행 가이드 앱 ‘트리플(triple)’이다. 트리플은 ‘컨시어지’(안내원) 같은 서비스다. 한국인 여행자가 해외 여행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과 맥락에 맞는 정보를, 쿡쿡 옆구리 찌르듯이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여행 가이드북 등에 소개된 유명한 맛집 정보도 있지만, 그 근처에 현지인이 가는 숨은 맛집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식이다. 위치 기반이기 때문에 정확하고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여행객들이 방문한 맛집이나 명소 등에 대한 후기는 현재까지 9만 개 이상 모았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오사카의 맛집들은 후기만 수백 개씩 붙을 정도다. 사용자 데이터와 트리플이 직접 편집ㆍ제작하는 정보, 포털ㆍ블로그ㆍ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외부 플랫폼에 있는 다양한 여행 정보 등을 분석해 사용자에게 가장 좋은 정보를 추천해준다.
이번 편은 ‘여행 가이드북의 종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잡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북을 본다. 하지만 예전만큼 여행의 필수품은 아니다. 여행 가이드북이 했던 많은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신한다.
10년도 더 전엔 여행 중 음악을 듣기 위해 CD 플레이어와 CD를 챙기곤 했다. 이제 CD 플레이어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에 담긴 MP3 파일을 듣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듣는다.
CD가 영원히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CD 음질을 좋아하는 사람은 CD 플레이어를 챙긴다. 없어지지 않는다고 위상이 유지되진 않는다. 여행하면서 여행 가이드북 챙기는 건, CD 플레이어 챙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브런치 검색으로 여행하는 사람들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에는 여행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온다. 여행 다녀와서 쓴 후기가 대부분이다. 브런치의 여행 후기는 기존 블로그의 여행기와 다른 느낌을 준다.
블로그의 여행기가 사진 중심이고 정보 중심이라면, 브런치의 여행기는 글 중심이고 감상 중심이다. 여행지 다녀와서 느낀 점을 다소 호흡이 긴 글로 옮긴다. 굳이 블로그를 쓰지 않고 브런치를 찾는 사람들은, 여행에서 본인만이 느낀 감상을 글로 남긴다.
블로그 여행기는 포화 상태다. 대부분 비슷한 곳을 찾고 비슷한 정보를 남긴다. 포털에 ‘다낭 맛집’을 검색해서 가면 90% 이상이 한국사람이다. 똑같은 곳에 가고 똑같은 가상을 남긴다.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려는 여행자는 지루함을 느낀다.
브런치와 기존 블로그의 차이점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다양한 감각’을 글로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브런치를 찾는다. 기존 블로그와 다른 여행기가 올라오자, 브런치에서 여행기를 검색하는 유저도 늘고 있다.
감상 중심의 여행기, 남들과 똑같은 곳이 아닌 색다른 곳에 대한 여행기 수요가 늘면서, 브런치 여행기를 참고해 일정을 짜는 사람들도 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에 그치지 않고, 감상하고 감각하고 공감하는 여행, 더 나아가 새로운 영감을 찾는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브런치에서는 일본, 특히 도쿄에 대한 여행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독자들도 도쿄 여행기를 많이 찾는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만의 시각으로 도쿄를 해석한 여행기다. 츠타야 서점 방문기는 소셜 미디어에서 4500회 이상 공유됐다. 단순히 여행지 정보가 아니다. 여행자의 전문성이 잘 살린, 관점이 담긴 탐방기다.
브런치 여행기는 여행 가이드북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의 미래는?
가이드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시도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독립 출판에 두각을 보이고 있는 텀블벅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올라 쿠바 가이드북 출간’ 프로젝트의 진행자는 2011년부터 매년 여행으로 쿠바를 찾았다. 쿠바의 매력에 빠져 자주 찾으면서, 다른 여행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자신만 알고 있는 정보를 혼자만 알고 있기 아쉬워 책을 내기로 했다.
‘현재 한국 서점에는 ‘쿠바’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단독 가이드북이 없다. 유명한 해외 가이드북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초보 여행자의 시선에서 기본정보부터 아주 세세하게 다룬 가이드도 없다. 구글만 믿고 여행을 떠나기엔, 쿠바의 인터넷은 아직까지 매우 제한적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다. 현재 제대로 된 쿠바 가이드북이 없다. 인터넷이 불안정한 쿠바 특성상 오프라인 매체가 꼭 필요한 지역이다. 1쇄는 1000부만 인쇄할 계획으로 펀딩을 받았다. 목표했던 300만 원을 200% 초과 달성해 608만 원 펀딩 받았다.
‘직접 만드는 여행 가이드북’ 프로젝트는 특별한 나만의 책을 만든다. 여행을 준비하고, 경험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여행자가 직접 한 권에 담을 수 있도록 구성한 '참여형 가이드북'이다.
여행에 떠나기 전 준비한 자료들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책은 빈 공간이 대부분이며, 이를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런 가이드북이 왜 필요한가 반문할 수 있지만, 388만 원이나 펀딩 받았다.
두꺼운 가이드북보다는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들만 미리 정리한 얇은 가이드북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것이다. 정보를 스스로 찾고, 이를 정리해 나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여행자의 니즈도 잘 파악했다. 최근 20대 여행자를 중심으로 PDF 파일로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어 가곤 한다. 이런 트렌트를 반영했다.
도발적인 제목이었지만, 가이드북이 영원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정보는 스마트폰이 다 담아내고 있지만, 책만이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경험과 질감이다. 여행 가이드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