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건 Dec 10. 2019

여행이 일상이 되는 공간

[놀먹자 치앙마이:로건 5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창밖 풍경이 마음에 든다. 도이수텝이라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높은 산이 보인다. 장기 여행이라 무리하지 않는다. 저녁에 술도 마시지 않는다. 밤 10시 전후 잠이 드니 일찍 일어날 수 있다.


창 밖 풍경


혼자 만의 시간이다.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을 쓴다. 음악도 듣는다. 모로는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아 아침에만 잠깐 듣는다.


하루 글 한 편 쓴다는 목표를 정하고 왔다. 동기부여가 된다. 마감 압박 대신 적당한 설렘과 긴장이 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뭘 쓰지' 생각하며 일어난다.


가끔 제이가 일찍 일어나긴 하지만 잠에서 덜 깬 상태라 손이 많이 가진 않는다. 물 한 잔과 빵이나 시리얼 같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내어주면 된다.


모로는 분명 정신은 깨어있는 것 같은데, 몸은 자고 있다. 제이가 가끔 모로의 휴대전화를 가져가면 "안 돼" 하며 제지한다.


1~2시간 정도 글을 쓰고 청소를 한다. 매일 청소하면 먼지가 별로 없어 빨리 끝난다. 집안 정리가 끝나면 이제야 모로와 제이가 방에서 나온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전날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 온다. 꽤 맛있는 빵이 우리 돈으로 1천 원 내외라, 부담 없이 사 먹는다.


오전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실내 사이클을 40분 타고, 일립티컬을 15분 탄다. 덤벨, 푸시업, 플랭크 등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마무리한다.


11시쯤 되면 제이가 수영장에 가자고 한다. 첫날에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이제는 신발도 안 신고, 튜브와 물안경, 수건만 챙겨서 간다.


1~2시간 제이와 물놀이를 한다. 놀이만 하면 재미없으니 수영하는 법도 조금씩 가르쳐준다. '음파' 호흡법과 발차기하는 법, 뒤로 누워서 둥둥 뜨는 법 등을 가르쳐줬다. 내 아들답게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학교 선배가 마침 치앙마이에 출장 왔다고 해서 님만해민(한국의 청담동, 혹은 가로수길 같은 곳이다)에서 만났다. 국물이 담백한 시아 어묵국수 먹었다. 설렁탕과 감자탕의 라이트 버전 같다. 깔끔하고 내 입맛에 맞았다.



근처 사루다 카페 갔다. 선배가 귤을 하나 들고 왔다. 나는 제주도에서 7년 정도 살았었다. 이맘때(11월) 노지 귤이 나올 때면 카페든 식당이든 귤을 서비스로 준다. 그런 개념인 줄 알았는데, 귤 모양의 케이크였다.


선배는 건축학과를 나와서 매거진 에디터를 하고, 지금은 매거진 발행, 건축 코디네이팅, 철물점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한다. '소울'을 중시하고 미래 트렌드 변화에 관심이 많은 선배와 함께 이야기를 하니 3시간이 훌쩍 갔다. 즐거운 대화였다. 좋은 에너지 얻었다.


선배와 헤어지고 마야몰 백화점에서 쇼핑했다. 한 달 살기를 하다 보니 보통 여행자라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생필품이 필요하다. 방석, 감자 깎는 칼, 반찬통과 (제이가 무척 좋아하는) 오이 6개를 샀다.


오후 6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제이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제이는 "아빠 우리 코딩은 언제 해요?" 물어본다. 모로가 아빠 오면 코딩시켜준다고 이야기했나 보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사 온 생선과 고기로 저녁 먹었다. 270바트, 약 1만 원인데 확실히 백화점이라 비싸다. 우리 동네에선 120바트, 약 5천 원이면 3인 가족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


설거지와 쓰레기 처리는 내 담당이라 왔다 갔다 하는데 제이가 계속 졸졸 쫓아다닌다. 쓰레기를 비우기 위해 잠깐 밖에 나갔는데, 바람이 불어 현관문이 닫혔다. 자동으로 닫히는 시스템이라 밖에서 문을 두드리니 제이가 뛰어와서 열어주었다.


다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현관을 나섰는데, 이번엔 카드키를 챙겼다. 쓰레기 버리고 돌아왔는데 현관문을 열자 제이가  문 앞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또 문이 잠길까 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었다.



(물론 코딩 때문이지만) 이렇게 나를 찾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오전에는 수영장 가자고 찾고 저녁에는 코딩하자고 찾는다. 인기쟁이 아빠가 됐다. 제이가 태어난 지 만 6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보다 아빠를 많이 찾는다.


그동안 행복을 밖에서만 찾았다. 집 밖에서 사람 만나고, 놀러 다니며 행복을 찾았다. 하루 종일 가족과 있다 보니,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글 쓰고, 운동하고, 친구 만나고, 생필품 쇼핑하고, 아이와 코딩하며 하루를 보낸다. 여행자라면 이런 여유 갖기 힘들다.


치앙마이는 여행이 일상이 되는 공간이다.



로건의 픽

사루다 카페 귤 케이크 (250바트 / 1만원)


감쪽같다. 정말 귤인줄 알았다. 인스트그램용 케이크다. 어떤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귤 같다. 나는 이런 예쁜 케이크 '선사진 후섭취' 좋아한다. (모로와는 정반대다.) 태국 물가에서 최상위 수준이다. 250바트면 우리 동네(치앙마이 대학교 정문)에서 두 끼 먹을 수 있다. 선배가 샀다. 좋은 선배다.




이전 04화 물 안에선 누구나 평등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